알량한 말 바로잡기
 (1570) 음식

 

.. “‘밥 먹으러 와’라고 해도 안 오더니, 그렇구나. 레이는 나와 히나가 만든 음식보다, 컵라면이 더 맛있는 거구나.” “어쩐지, 쇼크다, 언니. 히나는 주먹밥도 열심히 만들었는데.” ..  《우미노 치카/서현아 옮김-3월의 라이온》(시리얼,2009) 72쪽

 

 “맛있는 거구나”는 “맛있구나”나 “맛있나 보구나”로 다듬습니다. “쇼크(shock)다”는 “놀랍다”나 “마음이 아프다”나 “서운하다”나 “쓸쓸하다”로 손볼 수 있고, ‘열심(熱心)히’는 ‘힘껏’이나 ‘애써서’나 ‘바지런히’로 손봅니다.

 

 음식(飮食)
  (1) 사람이 먹을 수 있도록 만든, 밥이나 국 따위의 물건
   - 음식을 장만하다 / 음식을 차리다 / 음식을 먹다 / 음식이 입에 맞다 /
     그는 부인의 음식 솜씨를 사람들에게 자랑했다
  (2) = 음식물
 음식물(飮食物) : 사람이 먹고 마시는 것을 통틀어 이르는 말

 

 나와 히나가 만든 음식보다
→ 나와 히나가 만든 밥보다
→ 나와 히나가 만든 먹을거리보다

 

 국어사전에서 ‘밥’이라는 낱말을 찾아보면 다섯 가지 뜻풀이가 달립니다. 이 가운데 세 가지는 먹는 무엇을 가리킵니다. 먼저, 첫째 ‘밥’ 풀이는 “쌀, 보리 따위의 곡식을 씻어서 솥 따위의 용기에 넣고 물을 알맞게 부어, 낟알이 풀어지지 않고 물기가 잦아들게 끓여 익힌 음식.”이라 나옵니다. 둘째 ‘밥’ 풀이는 “끼니로 먹는 음식.”이라 나와요. 셋째 ‘밥’ 풀이는 “동물의 먹이.”라 나와요.

 

 ‘밥’이라는 낱말을 풀이하면서 ‘음식’이라는 낱말을 씁니다. 거꾸로, ‘음식’이라는 한자말을 국어사전에서 찾아보면, “밥 같은 물건”이라고 풀이해요.

 

 이는 곧 “밥 = 음식”이요 “음식 = 밥”인 셈이에요.

 

 어릴 적부터 어른들이 쓰는 ‘음식’이라는 한자말이 입에 걸렸습니다. 내가 무슨 ‘국민학생 우리 말 지킴이’라서 이 한자말이 입에 걸리지는 않았어요. 어른들이 한국말 ‘밥’이랑 한자말 ‘음식’을 쓰는 자리를 오래도록 가만히 지켜보며 두 낱말을 바꾸어 넣어 보는데, 어느 자리나 서로 똑같아요. 두 낱말은 다른 무언가를 가리키지 않아요. 두 낱말은 똑같은 한 가지를 가리켜요.

 

 “제사 음식”하고 “제사 밥”은 같아요. “식은 밥”이랑 “식은 음식”은 같아요.

 

 그런데 사람들 말씀씀이는 나날이 ‘밥’은 작은 테두리를 일컫고, ‘음식’은 큰 테두리를 일컫는다고 여겨요. 이리하여, 국어사전 말풀이에서도 ‘음식’은 “밥이나 국 따위 물건”이라고 풀이하면서 밥이며 국이며 여러 가지를 아우르는 낱말로 다룹니다.

 

 그러면, ‘밥 (2)’로 풀이한 “끼니로 먹는 음식”은 어떻게 헤아려야 좋을까 궁금합니다. 끼니로 먹는 무언가라면 ‘그릇에 담은 쌀알 모둠’만 가리키지 않아요. 쌀알을 모두어 담은 그릇뿐 아니라, 나물을 무친 접시랑 국을 담은 그릇에 있는 모든 먹을거리를 가리켜요.

 

 간추려 말하면 이렇습니다. 사람들은 한자말 ‘음식’을 넓은 테두리로 살피는 낱말로 여겨 버릇하고, 한국말 ‘밥’은 작은 테두리로 살피곤 하지만, 이렇게 살피는 몸가짐은 아주 잘못되었어요. 올바르지 않아요.

 

 음식을 장만하다 → 밥을 장만하다 / 먹을거리를 장만하다
 음식을 차리다 → 밥을 차리다 / 먹을거리를 차리다
 음식을 먹다 → 밥을 먹다 / 무언가를 먼다
 음식이 입에 맞다 → 밥이 입에 맞다

 

 “음식 문화”나 “식문화”라는 말마디는 한국사람 한국 말투로는 걸맞지 않다고 느껴요. “밥문화”로 적어야 걸맞다고 느껴요. “서양 음식”이나 “한국 음식”처럼 으레 쓰는데, “서양 밥”이나 “서양 먹을거리”, 그리고 “한국 밥”이나 “한국 먹을거리”로 쓸 줄 아는 매무새를 북돋아야지 싶어요.

 

 나는 한국사람이니 한국말을 씁니다. 나는 한국사람으로서 한국글을 써요. 나는 한국사람답게 한국밥을 먹고 한국옷을 입습니다.

 

 조금 더 헤아리면, “밥문화” 같은 말마디는 “밥삶”처럼 손질할 수 있습니다. 밥을 먹는 문화란 밥을 먹는 삶이거든요. 말 문화라 할 때에도 말삶이라 할 수 있어요. 책을 즐기는 사람은 책삶이요, 노래를 즐기는 사람은 노래삶이에요.

 

 음식 솜씨 → 밥솜씨
 음식맛 → 밥맛
 음식점 → 밥집
 …

 

 ‘밥내음’이나 ‘밥솜씨’ 같은 낱말은 얼마든지 한 낱말로 삼아서 쓸 만하리라 생각합니다. ‘밥그릇’이나 ‘밥일’ 또한 한 낱말로 쓰면 넉넉해요.

 

 또 어떤 ‘밥말’ 써 볼 만할까요. ‘집밥’이랑 ‘바깥밥’을 쓸 수 있을까요. 요사이는 ‘도시락밥’과 ‘학교밥’을 써 볼 수 있겠지요. ‘밥때’가 있고 ‘밥터’도 쓸 만해요. 옷차림처럼 ‘밥차림’을 생각하면 즐겁고, 밥을 잘 먹는 사람을 가리켜 ‘밥꾼’이라는 이름을 붙일 만해요. (4345.1.7.흙.ㅎㄲㅅㄱ)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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