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내 이름은 윤이에요
헬렌 레코비츠 지음, 박혜수 옮김, 가비 스위앗코스카 그림 / 배동바지 / 2003년 6월
평점 :
품절
내 보금자리를 빛내는 손길은
[다 함께 즐기는 그림책 117] 헬렌 레코비츠·가비 스위앗코스카, 《내 이름은 윤이에요》(배동바지,2003)
어린 나날, 내 어버이가 집을 옮겼던 일을 떠올리지 못합니다. 주민등록초본을 떼어 내 어린 나날 발자국을 살피면 꽤 자주 이곳저곳 옮겼다고 나오는데, 나는 도무지 하나도 떠오르지 않습니다. 그무렵 내 어버이는 어떤 마음으로 이리저리 살림집을 옮기셨을까요. 우리 형은 형이 어린 나날 집을 이리저리 옮기던 일을 떠올릴까요. 형한테는 어린 나날 자꾸 집을 옮기는 일이 어떻다고 느꼈을까요.
만화책이나 동화책을 읽던 어린 나날, 만화책이나 동화책에 나오는 아이들이 ‘집을 자꾸 옮겨 동무를 사귈 수 없다’고 얘기하는 대목에 으레 고개를 갸우뚱했습니다. 새 학교에서 새 동무를 못 사귀나? 새 동네에서 새 동무를 못 만나나? 나라면, 새 학교와 새 동네에서 더 많은 동무를 만나고 사귀면서 ‘옛 동무’랑 ‘새 동무’ 모두하고 어울릴 수 있어 기쁘겠다고 생각했습니다.
돈이 남아돌거나 넘쳐서 집을 자꾸 옮기는 사람이 있을까 궁금합니다. 집을 자꾸 옮겨야 하는 사람은 으레 돈이 없거나 모자라는 사람이기 일쑤입니다. 돈이 없으니 내 집을 마련하지 못합니다. 내 집을 마련하지 못하니 집이나 방을 얻어 지냅니다. 집이나 방을 얻어 지내니 집임자나 방임자가 비우라 할 때에 비워야 합니다.
어버이가 군인이라거나 교사라면, 또 회사 영업부 일꾼이라면, 이래저래 일터를 옮기기 마련이라 살림집까지 옮겨야 하곤 합니다. 교사인 우리 아버지였기에, 우리 식구는 다섯 해마다 집을 옮길 만했어요. 내가 태어난 집은 인천이지만, 아버지 일터는 ‘경기도 국민학교’였거든요.
그러나 우리 집은 늘 그대로이면서 아버지 혼자 경기도 이곳저곳으로 다녔습니다. 새벽에 시외버스를 타고 떠나 늦은 밤에 시외버스로 돌아왔어요.
.. 내 이름은 윤이에요. 나는 한국에서 아주 먼 나라 미국으로 왔어요. 이곳에 살게 된 지 얼마 안 되었을 때의 일입니다. 아빠가 나를 곁으로 불렀습니다. “이제 너는 곧 새 학교에 다니게 될 거야. 그러니 네 이름을 영어로 쓰는 걸 알아두어야 해.” .. (5∼6쪽)
나는 고등학교를 마치고 내 어버이 집을 나오면서 거의 해마다 한두 차례씩 집을 옮겼습니다. 어릴 적 만화책이랑 동화책을 읽으며 생각하던 그대로 내 삶에서 이루어집니다. 새 살림자리 찾아 옮기려 하면, 새 동네를 생각하고 새 동네를 돌아다녀야 합니다. 복덕방을 드나들고 온갖 집을 두루 구경합니다. 이러는 한편으로 옛 살림자리 짐을 꾸립니다. 일은 일대로 날마다 똑같이 해야 하고 토요일이나 일요일을 맞이하면 더 바쁘게 움직여야 하니까, 몸뚱이는 하나이면서 여러 가지 일을 한꺼번에 치릅니다. 살림자리 한 차례 옮기자면 그저 죽어납니다.
그런데 살림자리를 옮기면서 고된 삶을 잊습니다. 옛 자리는 옛 자리대로 아련하게 그립니다. 새 자리는 새 자리대로 새 모습을 마음껏 누립니다.
그러나 살림자리를 옮길 때마다 살림짐이 불어납니다. 살림짐은 집을 옮기며 하나도 버릴 수 없는 책들이랑 책꽂이. 한 해 두 해 흐르며 살림자리 새로 옮길 때마다 등골이 휩니다. 온몸이 후줄근합니다. 짐을 꾸리면서 여러 달 머리가 돌고, 짐을 풀면서 여러 달 머리가 어질합니다.
슬슬 집옮기기에 진절머리가 납니다. 아니, 몸이 버티지 못합니다. 이제는 두 번 다시 옮기지 않을 곳에 뿌리내리고 싶습니다. 뿌리내리려는 마음으로 한 번 두 번 세 번, 바야흐로 네 번째 집을 옮겨 전라남도 고흥으로 옵니다.
.. 나는 새로운 방법 같은 건 배우고 싶지 않았습니다. 내가 태어나 자란 한국으로 돌아가고 싶었어요. 나는 그냥 미국이 싫었습니다. 여기서는 모든 게 달랐거든요. 그렇지만 아빠는 내게 연필을 건네면서 눈짓으로 “내 말대로 해.”라고 했습니다 .. (8쪽)
어릴 적에는 집을 안 옮기며 한 동네에서 열 몇 해를 살며 푸름이 나이를 보냈기에 집옮기기가 어떤 일인지를 살갗으로 깨닫지 못했습니다. 나이들어 제금나고서는 언제나 집옮기기를 치르며 한 곳에서 느긋하게 네 철을 누리지 못하다 보니 뿌리박기가 얼마나 기쁘고 고마운가를 살갗으로 느끼고 싶어 애탔습니다.
우리 집 둘째는 집옮기기를 한 차례만 겪습니다. 우리 집 첫째는 한 번 두 번 세 번 겪습니다. 고흥집으로 옮길 때에는 외할아버지 짐차에서 함께 짐을 내려 옮기겠다며 고 작은 몸과 고 작은 손으로 상자들을 척척 나르기까지 했습니다. 새해에 다섯 살이 된 첫째 아이는 나중에 무럭무럭 자란 뒤에도 저 네 살 적 이삿짐 나르던 일을 떠올릴 수 있을까요. 아이 눈길과 눈높이에서는 이삿짐 나르기가 어떠한 일이었을까요. 동네에서 가까이 옮긴 살림자리가 아니라, 인천에서 충청북도로, 충청북도에서 전라남도로 옮긴 살림자리입니다. 옛자리로 마실할 일이 아예 없다시피 합니다. 새 자리로 오면 그예 새 자리에서만 살아갑니다. 옛 보금자리에서 보내던 나날을 첫째 아이는 얼마나 되새기면서 마음밭에 따사로이 보듬을까요.
.. 나는 새가 되고 싶었어요. 훨훨 날아서, 날아서 한국으로 돌아가고 싶었습니다. 나의 둥지로 돌아가 조그만 갈색 날개에 머리를 폭 파묻고 있으려고요 .. (18쪽)
헬렌 레코비츠 님이 글을 쓰고, 가비 스위앗코스카 님이 그림을 그린 그림책 《내 이름은 윤이에요》(배동바지,2003)를 읽습니다. 《내 이름은 윤이에요》에 나오는 아이 윤은 윤이네 어버이를 따라 한국에서 미국으로 살림자리를 옮깁니다. 한국에서 미국으로 살림자리를 옮긴 만큼, 윤이네 어버이는 한국으로 돌아갈 생각을 안 하겠지요. 앞으로 오래오래 미국에서 살아갈 꿈을 품겠지요.
아이 윤은 미국에서 살고 싶었을까요. 아이 윤은 미국에서 살아야 할까요. 아이 윤은 왜 한국말 나누던 한국 동무들하고 떨어져야 할까요. 아이 윤은 이제껏 듣지도 말하지도 배우지도 못한 미국사람 말을 새로 듣고 쓰며 배워야 할까요.
그림책 《내 이름은 윤이에요》를 여러 차례 읽으면서 살피는데, 윤이네 어버이가 윤이한테 ‘자, 우리 이제 새 살림자리로 옮겨서 살아간다.’ 하고 이야기해 주지 않았습니다. 윤이네 어버이는 당신들 생각대로만 살림자리를 옮깁니다. 옮기고 나서 아이하고 더 살가이, 더 따스히, 더 포근히, 더 사랑스레 이야기를 나누지도 않습니다. 한국에서 미국으로 옮긴 살림자리란, 그야말로 ‘이름이든 돈이든 무엇이든’ 더 많이 벌거나 얻으려고 힘쓰려는 일이니, 이제 아이하고 느긋하게 이야기할 겨를은 좀처럼 없겠지요.
윤이네 어버이는 왜 미국으로 살림자리를 옮겨야 했을까요. 아이 윤이랑 어떻게 무엇을 하며 살아가고 싶기에 미국으로 살림자리를 옮겼을까요. 아이 윤은 미국에서 무슨 꿈을 어떻게 꾸어야 좋을까요. 이제 갓 초등학교에 들어간 아이가 스스로 꿈을 찾기를 바라나요. 이 어리디어린 아이라 하더라도 스스로 생각할 줄 아니까, 새 살림자리에서 저 스스로 살아날 길을 찾으라는 뜻일까요.
.. 교실로 돌아가자 선생님은 우리에게 더 많은 글씨 연습 시험지들을 주었습니다. 나는 YOON이라고 쓰기 싫었어요. 그래서 대신 CUPCAKE라고 써 넣었습니다 .. (22쪽)
내 보금자리를 빛내는 손길은 내 손길입니다. 어느 누구도 내 보금자리를 빛내 주지 않습니다. 어른이 되든 아이가 되든, 내 보금자리는 내 손길로 보듬습니다. 나 스스로 찾고 나 스스로 누립니다. 나 스스로 돌보고 나 스스로 사랑합니다.
어린 윤은 어린 윤 나름대로 삶길을 찾습니다. 힘들게 부딪히고 슬프게 울면서 천천히 윤이 길을 찾아요.
윤은 길을 잃을 수 있었겠지요. 윤은 길을 버릴 수 있었겠지요. 윤은 길을 모를 수 있었겠지요. 고맙게도 새 터에서 좋은 새 이웃과 동무를 하나둘 만나면서 비로소 웃음을 찾습니다. 그러나, 참말 윤은 길을 잃을 수 있었어요. 어쩌면, 윤이처럼 어버이들 생각만으로 한국을 떠나 미국으로 옮긴 집안 아이들 가운데 적잖은 아이들은 길을 잃거나 버리거나 모르는 채 떠돌다가 사라졌겠지요. 아니, 한 곳에서 오래오래 뿌리박으며 지내는 집안 아이들조차 길을 못 찾거나 못 보거나 못 느끼면서 떠돌다가 사라지기도 해요.
집안에 사랑이라는 따스함이 없으면 아이들은 길을 잃습니다. 아이들이 길을 잃는 집안이라면 어른들도 길을 헤맵니다. 보금자리에 꿈이라는 맑은 빛이 없으면 아이들은 싱그러움을 잃습니다. 아이들이 싱그러움을 잃는 보금자리라면 어른들도 싱그러움을 잃어요.
한겨레 수많은 윤들이 맑은 웃음과 밝은 빛을 곱게 건사하면서 예쁘게 살아갈 수 있기를 비손합니다. (4345.1.6.쇠.ㅎㄲㅅㄱ)
― 내 이름은 윤이에요 (헬렌 레코비츠 글,가비 스위앗코스카 그림,박혜수 옮김,배동바지 펴냄,2003.6.10./9000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