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너에게 닿기를 3
시이나 카루호 지음 / 대원씨아이(만화) / 2007년 11월
평점 :
구판절판
앞으로 빛날 나날
[만화책 즐겨읽기 93] 시이나 카루호, 《너에게 닿기를 (3)》
아이들은 앞으로 빛날 목숨이겠지요. 나 또한 어린 나날을 보낼 때에 내 어버이가 나를 바라보며 앞으로 빛날 목숨으로 여겨 곱게 보살피셨기에 두 아이를 함께 낳아 살아갈 수 있겠지요.
아이들은 틀림없이 앞으로 빛날 목숨입니다. 그런데, 아이들은 앞으로뿐 아니라 바로 오늘도 빛나는 목숨입니다. 오늘은 오늘대로 빛나면서 앞으로 새롭게 빛날 목숨이에요.
아이들과 살아가는 어른은 한창 빛나는 목숨입니다. 그리고, 한 살 열 살 나이를 먹어 늙은 몸이 될 때에는, 이처럼 늙은 몸뚱이가 되면서 빛나는 목숨이에요. 어느 누구도 섣불리 겪거나 누릴 수 없는 늙은 빛줄기를 뽐내는 목숨이 돼요.
- “난 형제가 없는데, 부럽다.” “넌, 그 말이 걸려?” ‘웃음소리. 복닥복닥한 방. 너무 좋아하는 친구들. 내가, 같이 있어도 되는 거지?’ (14∼15쪽)
- “모, 모두 같이 웃고 떠들고 엄청 재밌거든. 너도 있으면 더 재밌을 것 같아서.” “자전거 타고 날아갈게. 기다려!” (19쪽)
아이들한테 어린 나날은 한 번뿐입니다. 푸름이한테 푸른 나날은 한 번뿐입니다. 젊은이한테 젊은 나날이란 한 번뿐입니다. 여기에, 나이든 사람들 서른 마흔 쉰 예순 일흔이라는 나이 또한 한 번뿐이에요.
열다섯 살 아름다운 나이가 되듯 스물다섯과 마흔다섯과 일흔다섯은 참으로 아름다운 오직 한 번 있는 나이입니다. 언제나 한 번 누릴 수 있는 나이요, 한 번 보내면 다시 돌아오지 않는 날이에요.
- ‘내가 모르는 카제하야다. 어떤 중학생이었을까? 연습 많이 하는 연습벌레였을까?’ “한번 보고 싶다.” “아, 이제 곧 체육대회잖아! 아마 카제하야 소프트볼 경깅 나갈걸?” “아 맞다.” ‘그렇구나. 난, 앞으로의 모습을 볼 수 있는 거야! 이제부턴. 모두와 사진을 찍어서 남기기도 하고 수많은 일을 함께할 수 있어!’ (21∼22쪽)
- “오늘 정말 재밌었어.” “그래, 재밌었어.” “앞으로도 이런 날은 아주아주 많을 거야!” “응!” ‘친구들과 함께한 토요일 밤은 내 자신이 거기 있다는 게 믿겨지지 않을 만큼 가슴이 두근거리고 그러면서도 편안하고 모두가 함께 웃는 정말 즐거운 시간이었다.’ (37∼38쪽)
나는 언제부터 내 나이를 느꼈는지 잘 모릅니다. 아주 어린 나날부터 내 나이를 생각하며 살았는지, 나이를 제법 먹은 뒤 내 나이를 곱씹었는지 잘 모릅니다.
그저 내가 떠올리기로는, 퍽 어리던 국민학생 때에도 ‘내 올해는 오직 한 번’이라고 여겼어요. 아쉬울 일을 남기지 말자고 여겼어요. 마음껏 놀고 신나게 뛰며 즐거이 어울렸어요.
누가 가르쳐 주었을까요. 어디에서 읽었을까요. 집에서 보던 텔레비전으로 듣고 알았을까요.
아마 나는 무척 신나게 뛰노는 한편 홀로 고요히 생각에 잠기던 때도 꽤 있었으리라 느낍니다. 집으로 돌아가는 길이건 학교로 가는 길이건 으레 혼자서 걸었어요. 우리 동네에는 우리 학교 다니는 아이들이 참 많았으나 다들 두 정류장 길을 버스 타며 다녔어요. 나는 두 정류장 길을 비가 오건 눈이 오건 덥건 춥건 그냥 걸었어요. 날씨를 느끼고 철을 받아들이면서 걸었어요.
안개 낀 날은 안개가 끼어 좋습니다. 바람이 몰아치는 날은 바람이 몰아쳐서 좋아요. 햇볕 쨍쨍 쬐는 날에는 햇볕이 쨍쨍 내리쬐니 좋아요.
거의 아무도 걷지 않는 길을 혼자 걸으며 내 하루를 돌아봅니다. 거의 아무도 마주치지 않는 길을 홀로 거닐며 내 오늘을 되새깁니다. 집이나 학교나 동네에서는 개구쟁이 노릇이지만, 이렇게 하루에 두 차례 혼자 보내는 겨를을 누리면서 내 나이 내 삶 내 길 내 앞날 내 꿈 내 사랑을 돌아볼 수 있었구나 싶어요.
- ‘긴장했다! 방금 진짜로 긴장했었어! 그나저나 요즘 계속 긴장하고 있는 것 같아.’ (111쪽)
- ‘쿠루미가 너무 예뻐서 부러웠고, 그래서 나도 예뻐지고 싶다고 생각하게 된 것이다.’ (120쪽)
나는 중학생이던 나날 세 해를 거의 떠올리지 못합니다. 나는 중학생이던 나날을 내 머리와 마음에서 지우기로 생각하며 세 해를 보냈습니다. 너무 끔찍하고 모질며 슬픈 나이가 중학생이라고 느껴, 이러한 곳에서 세 해를 썩힌다는 일이 괴롭고 아팠습니다. 열넷 열다섯 열여섯이라는 나이라지만, 나한테 열넷도 열다섯도 열여섯도 거의 어떠한 일도 잘 떠오르지 않습니다. 드문드문 떠올리는 일은 있으나, 나한테 중학생은 ‘예비 입시 고등학생’으로 이름표가 붙는 나이였어요. 내 둘레 어디에서도 예쁜 열네 살이라든지 어여쁜 열다섯 살이라든지 아름다운 열여섯 살이라고 이야기해 주지 않았어요.
상업잡지라 하지만, 《하이틴》이라든지 《주니어》라든지 하는 잡지에서 열넷∼열여섯을 살짝살짝 곱다시 보여주곤 했어요. 김수정 님이 빚은 만화 《홍실이》나 《자투리반의 덧니들》이나 《소금자 블루스》나 《오달자의 봄》에서 겨우겨우 빛나는 푸른 이야기를 살필 수 있었어요.
우리 집 두 아이가 열네 살이 되면, 열다섯 살을 보내면, 열여섯 살을 맞이하면, 이때에도 우리 아이들은 아무런 빛도 꿈도 사랑도 이야기도 실타래도 이루지 못하면서 제 푸른 나날을 잊으려 해야 할까요. 우리 아이들 또래 동무들은 중학교라는 데에서 무슨 빛을 볼 수 있고 무슨 빛을 누릴 수 있으며 무슨 빛을 펼칠 수 있나요.
- ‘그렇구나. 카제하야도 긴장을 하는구나. 카제하야도 똑같은 생각을 하기도 하나 봐.’ (162∼163쪽)
- ‘카제하야한테 특별한 사람이 생긴다고? 그걸 내가 돕는 거야?’ “윽, 미안해. 아무래도 난 안 될 것 같아! 나한텐 도저히 무리야!” (176∼180쪽)
시이나 카루호 님 만화책 《너에게 닿기를》(대원씨아이,2007) 3권을 읽습니다. 바로 어제까지, 아니 바로 오늘까지도 빛날 일이 없던 아이들이라 하지만, 이제부터 예쁘게 빛나면 되는 나날이라는 이야기를 읽습니다.
그래요. 중학교를 다니며 빛을 보지 못했다면, 중학교를 마치면서 빛을 보면 돼요. 고등학교를 마치는 때까지 또 빛을 못 보고 만다면, 고등학교를 마치면서 빛을 보면 돼요. 대학교에 간다든지 회사살이를 해야 한다든지, 또 뭐를 해야 한다면서 빛을 보기 힘들다면, 이러저러한 굴레와 수렁에서 빠져나오고 나서 빛을 보면 되겠지요.
앞으로 빛날 삶이니까요. 가만히 보면, 이제까지 곱게 빛나는 삶이었으나 둘레에서 어느 누구도 이 빛을 느끼거나 깨닫거나 아끼지 못했을 뿐이니까요. 맑게 빛나는 푸른 꿈이지만, 이토록 빛나는 푸른 꿈을 둘레에서 감추거나 숨기거나 가린 나머지, 나 스스로 못 느끼거나 못 깨달았을 뿐이니까요.
아이들은 누구나 예쁘기 때문에, 아이들이 빚는 사랑은 예쁩니다. 어른이 된 사람도 누구나 예쁘니, 어른이 된 사람들이 이루려는 사랑 또한 예쁩니다. 예쁘지 않은 사람이 있던가요. 예쁘지 않은 꽃이나 예쁘지 않은 나무나 예쁘지 않은 풀이나 예쁘지 않은 햇살이 있던가요. (4345.1.2.달.ㅎㄲㅅㄱ)
― 너에게 닿기를 3 (시이나 카루호 글·그림,서수진 옮김,대원씨아이 펴냄,2007.11.15./4200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