산들보라 빈책 쥐기
산들보라가 볼펜 쥐기를 꽤나 좋아한다. 연필을 주어도 빛깔연필을 주어도 한두 번 만지작거리다가 내려놓거나 던진다. 꼭 제 아버지가 쥐어 빈책에 끄적거리는 볼펜을 빼앗으려고 기어온다. 산들보라가 드디어 제 아버지 자그마한 빈책이랑 빈책에 꽂은 볼펜을 다 함께 움켜쥔다. 휘휘 흔든다. 꼬물꼬물 만지작거린다. 좋니? 즐겁니? 재미있니? 옛날 사람들은, 아니 옛날이라 할 수 없을 너희 할아버지 할머니 무렵 때만 하더라도, 너만 한 아이는 논둑이나 밭둑에 놓고 흙땅을 신나게 기어다니도록 했겠지. 그때에 너만한 아이는 흙을 쥐고 풀을 쥐며 꽃을 쥐고 나무를 쓰다듬곤 했겠지. 풀벌레를 쥐고 벌나비를 쥐며 호미와 낫을 쥐곤 했겠지. (4344.12.31.흙.ㅎㄲㅅㄱ)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