저문 강에 삽을 씻고 창비시선 16
정희성 지음 / 창비 / 1978년 11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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시를 읽던 고등학생이 밥을 먹으며 살다
[시를 노래하는 시 4] 정희성, 《저문 강에 삽을 씻고》

 


- 책이름 : 저문 강에 삽을 씻고
- 글 : 정희성
- 펴낸곳 : 창작과비평사 (1978.11.1.)
- 책값 : 7000원

 


 (1) 시를 읽던 고등학생이


 정희성 님이 시집 《저문 강에 삽을 씻고》를 내놓던 때에는 할아버지 나이가 아니었어요. 이제, 제 나이 서른여덟에 《저문 강에 삽을 씻고》를 다시 넘기며 돌아보면, 정희성 님은 할아버지입니다.

 

 1978년 처음 태어난 《저문 강에 삽을 씻고》를 제가 처음 읽던 해는 1993년입니다. 이 시집을 다시 들추는 서른여덟이 된 올해는 2012년입니다. 시집 하나를 두고 제 나이는 얼추 스무 살을 먹습니다.

 

 처음 《저문 강에 삽을 씻고》를 헌책방에서 만나 읽을 때에는 깔끔함을 느끼고, 텁텁하면서도 맛깔스러움을 느꼈어요. 그때, 그러니까 1993년 어느 날 헌책방에서 이 시집을 만나면서 ‘이 시집이 새책방에도 있으리라’고는 생각하지 못했습니다. 있을까 없을까 고개를 갸우뚱했습니다. 어쩌면 사라지지는 않았는지 몰라, 하고 생각하다가는, 애써 새책방까지 다시 가야 하나 싶어, 여기에서 이렇게 만났으니 즐겁게 읽자고 생각했습니다. 고등학교 3학년이던 나는 문학 참고서에 이름이 없고, 대입시험 문제로 정희성 님 시를 다룰 일이 없겠다고 여기면서도 이 시집을 읽고 싶었습니다. 널리 알려진, 아니 ‘대중가요’처럼 널리 알려진 시인이 아닌, 낯선 이름인 정희성 님이었으나, 고등학생한테는 누구나 낯선 시인이 아니겠느냐 생각했어요.

 

 씁쓰레하면서도 깊이 스며드는 보리맛 같은 시를 두 손이 새까매지도록 고개숙여 읽다가 값을 치르고 집으로 돌아갔습니다. 집으로 돌아가는 길은 버스로 40분 남짓인데, 이 길을 두 손 꽁꽁 어는 찬바람 고스란히 맞으면서 두 시간 넘게 걸어서 갔어요. 시집 하나 쥐면서, 시집 하나에 머리를 폭 박으면서, 헌책방에서 다 읽은 시를 집으로 돌아가는 길에 다시 읽으면서.


.. 비무장지대의 모든 산들이 / 일제히 무장을 하고 나선 / 칠흑의 밤이었네 / 적인 듯 싶기에 쏘았지 / 힘없이 쓰러지데, 허전하게 / 불빛을 비추자 그것은 그러나 / 사람이 아니고 짐승이었어 / 나는 똑똑히 확인했네 / 불빛 속에 떨고 있는 네 다리를. // 노루라거니 사슴이라거니 / 좋아 날뛰는 병사들 틈에서 / 대대장의 큰 손이 불쑥 나타나더니 / 수고했노라고 악수를 청하며 / 그런 식으로 하면 적을 잡을 수 있다고 / 친구여, 그가 나를 위로하였지 / 알겠노라고, 알겠노라고 대답하면서 / 나는 똑똑히 확인했네 / 불빛 속에 떨고 있는 네 다리를. // 참 알 수 없네 / 확인된 것은 짐승의 다리가 아닐세 / 네 다리는 살아서 / 죽음의 어두운 허공을 휘저으며 / 나의 살의를, 대대장의 살의를 / 우리 모두의 뿌리 깊은 살의를 / 입증하는 것일까 / 죽어가던 그 짐승의 마지막 눈초리가 / 탄환처럼 완강히 내 가슴에 박혀 있네 ..  (그 짐승의 마지막 눈초리가)


 고등학생으로서는 군대에서 총을 쏘아 짐승을 잡는 일을 모를 테지만, 나는 그무렵 이 시를 읽으면서 내 염통이 끊어지는구나 하고 느꼈습니다. 그리고, 고등학교를 마치고 몇 해 뒤인 1995년 겨울, 강원도 양구 멧골짝 깊디깊은 데로 끌려갑니다. 나도 이 시에 나오듯 군인이 되었어요.

 

 민통선에서 짐승을 쏘아 죽이는 일은 흔합니다. 비무장지대에서는 군인이 아니면 돌아다닐 수 없기에 움직이는 무언가를 보면 흔히 총을 쏩니다. 가끔 신문에 오르내리는 남북 총격 사건도, 가만히 보면 적군이 아니라 먹이를 찾아 돌아다니는 짐승을 쏜 일일 때가 잦습니다. 사람이 다닐 수 없는 곳에 무언가 움직이는 소리가 있고 움직이는 모습을 보니 저도 모르게 떨다가, 잔뜩 움츠리다가, 설마 북녘 군인이라면 나를 쏠지 모르니 먼저 총을 쏘아요. 빵, 빵. 때로는 연사로 놓고 빠바바방.

 

 깊은 밤 부시럭거리는 소리 하나 때문에 총을 쏩니다. 부시럭거리는 소리는 다음 근무자가 컵라면 따숩게 끓여 들고 오다가 돌부리에 넘어지면서 내는 소리일는지 모릅니다. 부시럭거리는 소리는 참말 북녘 군인이 조용히 정찰을 나오다가 방귀를 뀌면서 지레 놀라 낸 소리일는지 모릅니다. 민통선에서는 남북녘 정찰 군인이 한 주에 여러 차례 새벽과 밤마다 오가면서 만나요. 서로 모른 척하기도 하고, 서로 인사하기도 하며, 때로는 서로 총을 쏘기도 합니다.

 

 쏘고 싶지 않은 짐승한테 총을 쏘았어요. 아무런 잘못도 없는 사람한테 총을 쏘았어요. 아, 나는 군대에서 보았어요. 북녘에서 못 살겠다며 두 손 들고 총을 버리며 철책을 넘어오던 우리처럼 앳된 병사를 보며 두려움에 떤 나머지 총을 빠바방 쏘아 죽인 남녘 앳된 병사를.

 

 죽여야지 내가 사니까요. 죽이지 않으면 내가 죽으니까요. 아니 죽여야 내가 산다고 배우잖아요. 죽이지 않으면 내가 죽는다고 초·중·고등학교 열두 해에 걸쳐 배우고, 군대에서 두들겨맞으면서 뿌리깊게 배우잖아요. 먼저 내 목숨을 지켜야 한다잖아요. 어깨동무나 두레나 품앗이를 겪을 일이 스무 살까지 없잖아요. 그리고, 스무 살부터 총을 쥐라 하잖아요. 이웃한테도, 힘이 여린 사람한테도, 짐승한테도, 풀과 꽃과 나무한테도, 마구마구 돌을 던지고 채찍을 휘두르는 일을 서슴지 않아요.

 

 지난 나날 이렇게 살았어요. 경제개발이니 국가보안법이니 간첩단사건이니 무어니 하고 떠들던 지난 나날 이렇게 살았어요. 평화의댐이니 고속도로이니 월남파병이니 방위성금이니 하고 지껄이던 지난 나날 이처럼 살았어요. 골목길이니 가난이니 달동네이니 정부미이니 하고 읊던 지난 나날 이렁저렁 살았어요. 텔레비전이니 프로야구이니 의료보험이니 예방주사이니 하고 외치던 지난 나날 이래저래 살았어요.

 

 서로가 서로를 이웃이자 따뜻한 목숨붙이로 생각하게 이끄는 마음을 빼앗습니다. 배앗기지 않고 빼앗습니다. 잃어버리지 않고 내놓습니다. 따스한 꿈을 내놓고, 너그러운 믿음을 내려놓습니다. 시를 읽던 고등학생이 군인이 되어 열여섯 달이 지나자, 나도 살아남자며 후임병을 온갖 욕지꺼리로 미치게 만들고, 군화발로 대가리를 걷어찼습니다.

 


 (2) 고등학교 졸업장


 한창 대입시험으로 바쁜 동무들 틈바구니에서 정희성 님 시집을 으레 가방에 넣고 다녔습니다. 내 가방에는 릴케 시집이랑 정희성 시집이랑 신동엽 시집이랑 김소월 시집이랑 이육사 시집이랑 문익환 시집이랑 신경림 시집이랑 갈마들었습니다. 외우지는 않았으나 거의 외우다시피 시를 읽었습니다. 대입시험 공부하듯 외우기 싫어, 언제라도 내가 바라는 쪽을 펼쳐 되읽기만 했습니다.

 

 고등학교 큰문 앞에서 나눠 주는 학원 광고종이 뒷자리에 정희성 님 시 〈친구여 네가 시를 쓸 때〉를 옮겨적습니다. 따분한 수업이 이어지는 동안 종이비행기를 접어 슬그머니 앞으로 던집니다.


.. 친구여, 네가 非詩的이라고 부르는 / 바로 그곳에 뜨겁게 으스러진 나의 / 삶이 있고, 굶주린 식구가 있고 / 노동이 있고 / 그리고 억센 팔뚝뿐이다 / 삽과 망치뿐이다 // 아니다 친구여, 너의 正義가 사는 곳 / 이 푸른 하늘 아래 / 뜨거운 태양이 있고, 땅이 있고 / 너와 나 그리고 / 햇빛 뒤에 패어진 그늘도 있다 // 친구여, 내 말이 마음에 들지 않겠지 / 침묵 뒤의 소란이, / 정신 뒤의 육체가 / 우정 뒤의 敵意가, / 마음에 들지 않겠지 // 마음에 들지 않어라 / 한때는 너와 내가 만나 / 詩를 말하고 인생을 논하고 / 政治를 말하고 自由를 말했지만 / 친구여, 30을 넘어 이제는 / 나이보다 더 많은 것이 / 우리를 가로막는구나 // 친구여, 네가 詩를 쓸 때 / 나는 굶는 식구를 생각했고 / 네가 詩를 쓸 때 / 나는 죽음을 생각했다 / 네가 天國이라고 부르는 곳에서 / 나는 죽음 뒤에 오는 것을 생각하며 / 네가 내민 손수건을 눈에 대고 / 울며 너더러 개새끼라 했구나 / 내게 너더러 개새끼라 했구나 .. (친구여 네가 시를 쓸 때)


 종이비행기로 뒷통수를 맞은 동무가 깜짝 놀랍니다. 누구야, 하듯 뒤를 홱 돌아보다가 이녁 밑에 떨어진 종이비행기를 보고는 얼른 줍습니다. 교과서를 책상에 세우고는 천천히 폅니다. 함께 문학책을 읽으며 문학이야기 꽃피우던 동무는 “마음에 들지 않어라”랑 “내가 너더러 개새끼라 했구나” 하는 대목 때문에 이 시를 적어서 보냈다고 여깁니다. 피식 웃으면서 손으로 주먹질을 합니다. 나도 따라합니다. 칠판에 붙어 끝없이 판서를 해대는 교사는 뒤에서 뭔 일이 일어나는지 모릅니다.

 

 나는 고등학생으로서 대입시험에 목매달아야 하는 내가 마음에 들지 않습니다. 왜 이 학교를 벗어나지 않는지, 고등학교 졸업장을 꼭 가져야 하는지 못마땅합니다. 못마땅한데 털지 못합니다. 털지 않는다고 할까요. 고등학교를 그만두어 중학교 졸업장으로 살아갈 나를 어림하면서 나한테 손가락질을 할 사람들 화살을 못 견디리라 생각하고 맙니다.

 

 참으로 모를 일이지요. 뒷날 누가 나더러 ‘개새끼’ 소리를 읊건 말건, 나를 보며 ‘너 참 마음에 들지 않는 놈팽이’라 손가락질하든 말든 얼마나 대수로운가요. 내가 올곧게 살아간다면 올곧게 살아가니 아무렇지 않습니다. 내가 바보스레 살아간다면 바보스레 살아가니까 아무렇지 않아요.

 

 나는 내 사랑을 아끼며 살아가면 돼요. 나는 내 마음을 돌보며 살아가면 돼요. 내 사랑으로 내 동무를 좋아하고, 내 마음으로 내 살붙이를 좋아하면 즐거워요.

 

 어쩌면, 나는 학교에서 지식을 배우고 정보를 얻으면서 막상 사랑을 배우지 못하고 믿음을 얻지 못했기 때문인지 몰라요. 어쩌면, 나는 학교라는 핑계를 대면서 나 스스로 내 가슴에서 사랑을 불사르지 않았고 내 마음밭에 믿음씨앗 심지 않았기 때문인지 몰라요.

 

 사랑과 마음을 잃는다면 제가 저로서 살아가는 뜻이 없어요.

 

 이리하여, 나는 어릴 적부터 한 가지를 다짐했습니다. 따분한 수업을 견디며 종이접기를 하다가 새삼스레 단단히 다짐합니다. 올바르지 않은 일자리에서 아늑하게 돈받으며 살지 않겠노라. 돈 못 벌고 굶더라도 올바른 곳에서 일하겠노라.

 

 정희성 님 《저문 강에 삽을 씻고》를 스무 해 동안 보듬으며 가만히 되씹습니다. 그래, 나는 올바른 일을 하면서 내 살림을 예쁘게 건사하겠노라. 나는 올바른 일을 하면서 우리 식구들뿐 아니라 우리 동무들 즐거이 마실와서 좋은 사랑 나누어 받을 수 있는 집숲을 이루겠노라. 내가 믿는 가장 올바른 꿈을 글 한 줄에 담아 책으로 엮어, 이 책을 팔아 벌어들이는 돈으로 집숲을 마련하겠노라.

 


 (3) 밥을 먹으면 되지


 고등학교를 그만두나 마나 망설이던 아이는 대입시험에 붙습니다. 처음 원서를 내민 대학교는 떨어졌으나 두 번째 쓴 대학교는 붙습니다. 세 번째 원서는 돌아보지 않습니다. 두 번째 학교로 갑니다.

 

 두 번째 학교에 들어가서 첫 날을 보내며 술을 얻어 마십니다. 이때부터 대학교 문턱을 밟는 날이면 온몸을 어찌저찌 가누기 힘들 만큼 술을 얻어 마십니다. 대학생인 선배는 돈이 어디에서 나기에 이렇게 후배한테 술을 사 줄 수 있을까, 나는 한 해를 더 견디어 대학교 2학년 학생이 되면 후배한테 술을 사 줄 수 있으려나, 생각하며 넋을 잃지 않으려고 머리를 다잡습니다. 하나둘 나가떨어져도 끝까지 버팁니다. 넋을 잃은 동무를 어깨동무하거나 업습니다. 속을 게우는 동무들 등을 두들깁니다. 찬물로 얼굴을 씻어 주고, 찬물로 옷을 헹구어 줍니다.


.. 흐르는 것이 물뿐이랴 / 우리가 저와 같아서 / 강변에 나가 삽을 씻으며 / 거기 슬픔도 퍼다 버린다 / 일이 끝나 저물어 / 스스로 깊어가는 강을 보며 / 쭈그려 앉아 담배나 피우고 / 나는 돌아갈 뿐이다 / 삽자루에 맡긴 한 생애가 / 이렇게 저물고, 저물어서 / 샛강바닥 썩은 물에 / 달이 뜨는구나 / 우리가 저와 같아서 / 흐르는 물에 삽을 씻고 / 먹을 것 없는 사람들의 마을로 / 다시 어두워 돌아가야 한다 ..  (저문 강에 삽을 씻고)


 날이면 날마다 술자리를 빛내는 선배들을 만나면서, 앞으로 무엇을 하며 먹고살아야 하는가 생각에 젖습니다. 앞으로 무슨 일을 하며 살아야 하기에, 이렇게 술을 들이부어야 하느냐 생각에 잠깁니다.

 

 인천에서 서울 오른쪽 귀퉁이에 붙은 대학교를 오가자니 아주 벅찹니다. 술자리는 으레 새벽을 넘기는데, 나는 저녁 여덟 시 오십오 분에 떠나는 ‘인천 가는 막차 앞에 있는 차’를 타야, 비로소 마을버스를 갈아타서 밤 한 시 조금 못 되어 집으로 돌아갈 수 있습니다. 그런데, 서울에서 나고 자란 선배들은, 또 시골에서 나고 자라 서울에 있는 대학교를 다니는 선배들은, 그리고 서울에서 나고 자라며 학교랑 학원이랑 집만 오가던 동무들은, 겨우 술자리가 무르익는다 싶은 여덟 시 오십 분쯤 자리에서 일어나 전철역으로 달음박질하려는 나를 내버려두지 않습니다. 붙들어 앉힙니다.

 

 이러다가 저녁 열 시가 되고 열한 시가 되면 ‘서울에 있는 저희들 집’으로 하나둘 돌아갑니다. 나는 갈 데가 없습니다. 시골에서 서울로 온 선배가 자취방에 같이 가자면 같이 가지만, 술로 떡이 된 선배가 도무지 일어날 낌새가 없으면 학과방이나 동아리방에서 신문종이 덮어쓰고 잡니다. 잠들기 앞서 가방에서 책을 꺼내어 읽습니다. 어스름하게 동이 트는 새벽에 일어나 어젯밤 읽던 책을 더 읽습니다. 새벽녘 학생회관을 어슬렁어슬렁 돌아다니면서 ‘헌종이 모으는 통’을 뒤져 ‘다른 학과방에서 버린 낡은 책과 신문과 잡지’를 줍습니다. 아침이 되어 첫 강의를 하기 앞서까지 낡은 책과 신문과 잡지를 읽습니다. 8교시 강의가 끝나기 무섭게 이루어지는 술자리에 끌려다니자면 도서관이고 학교 앞 사회과학책방이고 헌책방이고 나들이하기 어렵습니다. 그래도, 이듬날 새벽 헌종이 모으는 통을 뒤지며 낡은 책 한 권 건질 수 있으면 좋았습니다.

 

 고등학생 때 읽던 《저문 강에 삽을 씻고》를 들고 와서 새삼스레 들추기도 합니다. 선배들은 뭔 시집을 읽느냐고 구경 좀 하자고 하면서, 어느 누구도 정희성이라는 이름을 알아보지 못합니다. 내가 다닌 학과가 네덜란드말을 배우는 학과라서 모른다고는 느끼지 않습니다. 내가 다닌 학과를 일찌감치 마친 그럭저럭 이름난(이제는 많이 이름난) 선배가 둘 있었으니까요. 하나는 노래하는 권진원이요, 둘은 소설쓰는 김남일.

 

 술에 절어 아침 강의에도 못 일어나는 선배와 동무를 바라보면서 아침햇살 쬐며 시집을 읽습니다. ‘개새끼들!’이라는 싯말을 빙긋 웃으면서 속으로 외칩니다. 잠에서 깨지 못하는 사람들이 어지른 쓰레기를 치웁니다. 비질을 하고 걸레질을 합니다. 하는 김에 이웃 학과방(스웨던말 학과방과 포르투갈말 학과방과 이탈리아말 학과방)을 함께 치웁니다. 골마루도 슬쩍 걸레질합니다. 학교 건물을 청소하는 아저씨와 아주머니하고 인사합니다. 청소하는 대학생은 보기 힘들다며, 우리 학과와 이웃 학과 사람들이 어지른 쓰레기를 흘깃 보다가는 커다란 비닐봉지를 건네줍니다.

 

 기지개를 켜고 머리를 감습니다. 학생회관 뒷간 세면대에 머리를 박고 복복 비빕니다. 머리를 감고 낯을 씻어도 한뎃잠을 잔 티가 난다지만, 나는 나대로 새날을 새롭게 맞이하고 싶습니다. 새로운 기운이란 늘 내 몸에 깃든 채 내가 깨우기를 기다릴 테니, 나는 내 마음을 믿으며 사랑하고 싶어요.

 

 나를 돌아보며 시를 읽습니다. 내 마음밭에서 곱게 잠자며 내 목소리를 기다리는 시를 읽습니다. 빛이 넘치는 곳에서는 빛을 모른다 하고, 어두움 가득한 데에서는 빛을 애타게 바란다고 하는데, 나는 잘 모르겠습니다.

 

 빛이 있는 곳에서도 빛을 느끼겠는걸요. 어두운 데에서도 어두움을 느끼겠는걸요.

 

 나는 시를 읽고 싶어서 문학참고서 아닌 시집을 사서 읽었어요. 나는 내가 아직 모르는 내 앞길을 배우고 싶어서 어찌 되든 고등학교를 마쳤고, 어찌저찌 대학교까지 가 보았어요. 그런데, 스무 살까지 살아내며 찾아간 대학교에서는 그저 부어라 마셔라 죽어라 하는 술놀이 빼고는 떠오르지 않아요. 어두운 데에서도 어둠과 빛이 있다지만, 나는 착하게 살아갈 곳에서 착하게 노래부르고 싶어요.

 

 밥을 먹으면 되잖아요. 비싼 밥이나 값싼 밥이 아니라 밥을 먹으면 되잖아요.

 

 다섯 학기까지만 다니고 대학교 졸업장은 내려놓았어요. 나는 고등학교 졸업장으로 살아가자고 다짐했어요. 아니, 고등학교 졸업장을 쓸 일은 없을 테니까, 나는 아무 졸업장 없는 사람으로 살자고 생각했어요.

 

 좋아요. 나는 《저문 강에 삽을 씻고》를 만난 1993년부터 두 아이와 옆지기랑 살아가는 2012년까지 밥을 맛나게 먹는걸요.

 

 좋아요. 나는 앞으로도 밥을 즐거이 먹을 테고, 우리 아이들도 오래오래 밥을 기쁘게 먹을 테니까요.

 

 사랑을 먹고 밥을 먹어요. 믿음을 먹고 밥을 먹어요. 웃음과 눈물을 먹으면서 밥을 먹어요. (4333.8.8.불./4336.7.20.해./4345.1.1.해.ㅎㄲㅅㄱ)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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