꿈에서 책을 읽다

 


 꿈에서 어느 헌책방을 찾아갔다. 책을 여러 권 산다. 이 책들을 신나게 읽는다. 퍽 골이 아플 만한 책인데 제법 술술 읽힌다. 그나저나, 꿈에서 헌책방을 다니고 책을 읽는 나는 고등학교 3학년. 나는 책을 읽는 즐거움과 아름다움에 사로잡히면서 대학입시라는 굴레에 진저리를 친다. 이 즐겁고 아름다운 책이 있는데, 왜 부질없고 쓸모없는 시험문제를 달달 외우며 내 머리를 괴롭혀야 하느냐고 생각한다. 이윽고 나는 학교에 가지 않는다. 집에는 어머니와 아버지가 안 계시고 형만 있다. 형은 내가 학교에 안 가는 일을 나무라거나 탓하지 않는다. 학교에 가라고 등을 밀지 않는다. 말이 없는 형은 내가 하고픈 대로 하란다. 이렇게 여러 날 집에서 책읽기만 하다가 자전거를 타고 모처럼 학교에 찾아가 본다. 훤한 낮에 자전거로 바람을 가르며 내가 다니던 고등학교로 찾아간다. 모두들 대학시험을 치르려고 건물에서 바깥으로 나올 생각을 않는다. 넓은 운동장에는 개미 한 마리 보이지 않는다. 나는 운동장 구석 등나무 걸상에 앉아 책을 읽는다. 이렇게 몇 시간 햇살과 바람을 누리면서 책을 읽다가 다시 자전거를 타고 집으로 돌아간다. 꿈에서 마음속으로 생각한다. ‘고등학교란 참 바보스럽단 말이지. 어떻게 이런 데에서 하루하루 끔찍하게 나를 못살게 굴며 버틸 수 있었을까. 아, 홀가분하다. 좋다.’ 이러다가 잠을 퍼뜩 깬다. 머리가 띵하다. 이게 무슨 꿈인가. 내가 늘 품던 생각이 꿈에서 나타났을까. 내가 누리고프던 지난날 바람이 이 나이가 되어 꿈에서 그려지는가. 곰곰이 돌이킨다. 나는 고등학교를 몹시 애타게 그만두고 싶었다. 나는 중학교부터 아주 애끓도록 집어치우고 싶었다. 삶도 사랑도 사람도 없는 중학교와 고등학교는 나를 미치게 내몰았다. 꿈을 키우지 않는 학교요, 꿈을 짓밟는 학교이며, 꿈하고 동떨어진 학교이다. 나는 학교옷 예쁘장하게 차려입으며 뒷골목에서 담배를 태우는 아이들뿐 아니라, 학교옷 말끔히 갖춰입으며 학원에 앉아 문제집이나 참고서를 뒤적이는 아이들 모두 불쌍하다고 느낀다. 무엇을 하고 싶은 아이들일까. 무슨 길을 걸으며 어떤 삶을 누리고픈 아이들일까. 학교는 아이들한테 어떤 배움터·꿈터·삶터·사랑터 노릇을 하는가. 꿈에서 책을 읽고 자전거를 타는 내 몸과 마음은 홀가분하다. 그렇지만, 나 혼자만 홀가분하게 살아간다고 느끼니 슬펐다. 이 모진 울타리를 스스로 박차고 뛰쳐나오며 ‘내 삶’을 즐기려 하는 동무를 만나지 못해 안타깝고 서글펐다. 쉬를 누고 물을 마신다. 어제부터 읽는 동시집 《삼베치마》를 생각한다. 《삼베치마》도 참 아름다운 글이지만, 《어머니 사시는 그 나라에는》만큼 빛나지는 않는다. 《삼베치마》는 권정생 할아버지가 아주 젊은 날 처음 시쓰기를 하며 당신 꿈을 사랑하려던 조그마한 일기장 같다. 감자떡 먹는 식구들 이야기는 《삼베치마》를 쓰던 젊은 날 적바림하셨구나. (4344.12.27.불.ㅎㄲㅅㄱ)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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