환영
김이설 지음 / 자음과모음(이룸) / 2011년 6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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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두 아이 아줌마가 쓴 소설 읽기
 [책읽기 삶읽기 93] 김이설, 《환영》(자음과모음,2011)

 


 전라남도 고흥에서 처음 맞이하는 겨울은 따스합니다. 겨울이 이렇게 따스할 수 있구나 하고 생각하며 고맙습니다. 물이 꽁꽁 언다든지 눈이 펑펑 내려 하루에도 몇 차례씩 눈을 쓰느라 바쁘지 않아 고맙습니다. 올 사월까지 길가 눈을 쓰느라 손이 안 시린 날이 없었어요. 자가용 없이 걸어다니거나 자전거를 타거나 시골버스 타는 우리한테는 찻길 눈쓸기를 할 까닭이 없지만, 택배 일꾼이 오가거나 웃집 사람들이 자동차 타고 오갈 때를 걱정하니까, 찻길 눈쓸기를 할밖에 없습니다.

 

 하루에 서너 차례 한두 시간 눈을 쓸면 코·귀·손·낯 얼마나 시린지. 그러나 이보다 눈쓸기를 하느라 집일할 겨를이 더 빠듯한 일이 고단합니다. 그나마 올 사월까지는 첫째 아이랑 옆지기 세 식구 살림이었기에 첫째 아이 빨래는 그닥 많지 않았어요. 다만, 이무렵 우리 멧골집 물이 언 나머지, 멧길 타고 올라가는 웃집에서 날마다 물을 길어다 쓰고 빨래랑 설거지도 웃집에서 했어요. 다섯 달 동안.

 

 지나고 보면 아득한 일이요, 지나고 생각하면 꿈 같은 일이며, 지나고 돌아보면 어쩜 그렇게 살아갈 수 있었나 싶습니다. 아마 어떻게든 살아내는 하루요, 힘들며 고단하다지만 어디부터 샘솟는지 모를 새 기운을 끌어내 견디는 나날인지 모릅니다.

 

 올여름까지 지낸 멧골집하고 견주면 따스한 겨울이지만, 고흥 시골마을 겨울도 겨울이라는 이름에 걸맞게 바람은 드세면서 차갑습니다. 아침에 똥을 눈 둘째 갓난쟁이 기저귀를 빨래하고 밤새 나온 오줌기저귀를 빨래해서 마당가 후박나무 빨래줄에 너는데, 손가락이 꽁꽁 업니다. 빨래줄에서 바람에 나부끼는 기저귀들은 금세 업니다. 아침이니까 이렇게 얼지만, 차츰 따뜻해지는 낮햇살을 받으면 스르르 녹으며 바로 마르겠지요. 어제도 그제도 그끄제도 이러했어요. 이른아침에는 빨래들이 죄다 얼어붙다가 낮하고 가까우면 스르르 녹으며 빨리 말라요. 낮에 빨래 한 차례 더 하면 해가 저 멧등성이에 가까울 무렵 다 마르고, 해가 떨어지기 앞서 빨래 한 차례 더 해서 어른들 두툼한 옷가지 물 안 떨어지게끔 말려서 방으로 들이면 잠자리에 들어 이듬날 일어날 무렵이면 보송보송 마릅니다.


.. 쌓인 눈을 잔뜩 퍼먹으면 이 갈증이 가라앉을까 … 거주하는 사람이 없어 버스 정류장 하나 없는 이곳까지 찾아오는 사람들이 궁금했다. 이런 풍경 속에서 밥을 먹고 차를 마시고 혹은 몇 시간 뒤엉켜 관계를 하는 데 돈을 쓰는 사람들은 어떤 사람들일까 … 일당 사만 원짜리가 한 시간에 십만 원도 벌 수 있었다 … 좋은 일인가. 생전 처음 보는 사내 앞에서 옷을 벗고 받는 돈이었다 … 시원한 에어컨 바람을 쐬며 뜨듯한 국물을 먹는 사람들은 풍요로워 보였다 … 주인 내외는 나 같은 아줌마는 없었다며 일당백이라며 추켜세웠다. 사람 하나 더 쓰자고, 이대로는 일 못 하겠다고 뻗대지 않게 하려는 수였다 ..  (10, 16, 59, 81, 113, 168쪽)


 두 아이와 살아가는 나날이란, 두 아이와 살아가지 않고서야 모릅니다. 세 아이와 살아가는 나날이라면 세 아이와 살아가지 않고서야 모를 테지요. 네 아이와 살아간다든지 다섯 아이와 살아가는 나날도 그래요. 이처럼 살아내지 않고서야 알 턱이 없어요.

 

 어림은 해 보겠지요. 아이 하나와 살아가면서 두 아이 살림살이를 어림해 보겠지요. 두 아이와 살아가면서 세 아이랑 네 아이 살림살이를 어림해 볼 테지요.

 

 우리 집 첫째는 돌이 지나고부터 낮에 기저귀를 풀며 오줌 누이기를 시켰습니다. 두 달 즈음 이곳저곳 스스로 못 참고 오줌이나 똥을 누며 집일이 잔뜩 늘어났지만, 이렇게 뒷치레를 하면서 아이는 스스로 오줌가리기와 똥가리기를 익혔어요. 아이는 제 어머니 아버지하고 하루 내내 함께 붙어서 살아가고, 제 어버이를 지켜보고, 제 집식구를 바라보면서 제 삶과 버릇과 꿈을 가다듬습니다.

 

 세 살에 아직 낮기저귀를 못 떼고, 너덧 살에 아직 밤기저귀를 못 떼며, 대여섯 살까지 기저귀를 채운다면, 이 기저귀도 종이기저귀라면, 이 아이가 어떤 어버이하고 어떤 삶을 꾸리는가 곰곰이 생각해 봅니다. 이 아이는 이 아이대로, 이 아이 어버이는 이 아이 어버이대로 얼마나 즐겁거나 신나거나 기쁘거나 좋거나 아름답다 할 만한 삶을 일구는가 가만히 헤아려 봅니다.

 

 우리 집 아이들을 바라봅니다. 우리 집 두 아이를 바라보고, 이 두 아이와 같이 먹고 자며 일어나는 옆지기를 바라봅니다. 우리들은 무슨 꿈을 키우면서 무슨 이야기를 꽃피우는 사람일까요. 우리들은 이 작은 보금자리를 어떻게 돌보면서 우리들 마음결을 어찌저찌 보살필 수 있을까요.


.. 자기는 나쁜 사장이 아니라고 강조했다. 앙연히 줘야 할 돈인데 왜 제가 생색을 내는 것인지 모를 일이었다 … 남은 반찬만 갖다 버릴 것이 아니라, 필요 없는 식구도 갖다 버렸으면 싶었다 … 나는 내 안의 화를 어떻게 다스려야 하는지 몰랐다 … 내가 들어오지 않았는데도 불을 끄고 잤단 말이지 … 엄마는 어디서 살아? 뭐 하고 살아? 자식이 어떻게 사는지 궁금하기는 해? 이런 걸 물어 보려면 어떡해야 하는지 나는 방법을 몰랐다 … 몇 년 만에 만난 모녀 사이인데, 할 말이 참 없었다. 하고 싶은 말들보다는 하지 말아야 할 말들만 자꾸 떠올랐기 때문이었다 ..  (26, 46, 97, 104, 143, 170쪽)


 김이설 님 소설 《환영》(자음과모음,2011)을 읽습니다. 두 아이와 옆지기하고 살아가는 김이설 님이 써낸 소설을 읽습니다. 김이설 님은 어떤 삶을 스스로 돌보고 두 아이와 일구며 옆지기랑 사랑하면서 소설을 쓸까요. 김이설 님 소설에는 김이설 님 삶이 어떻게 스며들어 빛날까요.

 

 《환영》을 펼쳐 차근차근 읽는 동안 ‘오늘 두 아이 아버지로 살아가는 내가 중학생 때부터 읽은 소설을 쓴 어른’은 누구였는가 생각합니다. 1970∼80년대에 나온 한국소설은, 1950∼60년대에 나온 한국소설은, 또 1930∼40년대에 나온 한국소설은 으레 ‘어떤 삶을 어디에서 어떻게 일구는 어른’이 썼는가 곱씹습니다.

 

 이 나라에서 아줌마가 소설을 쓴 지는 얼마나 되었을까요. 이 나라에서 아줌마가 아줌마 눈길과 생각과 삶과 마음과 사랑과 믿음과 꿈으로 소설을 써서 내놓은 지는 얼마나 되었으려나요.

 

 1970년대에 소설을 쓰는 아줌마라면 어떤 삶을 일구었을까요. 1950년대에 소설을 쓰는 아줌마라면 어떤 꿈을 꾸었을까요. 1930년대에 소설을 쓰는 아줌마는 있었을까요.


.. 왜 만날 나만 돈을 내놨을까 … 떡이 되도록 취한 남자가 할 수 있는 일이란 뻔했다 … 아버지는 자식들을 괴롭히지 않았다. 대상은 오로지 엄마였다 … 뭘 봐요. 돈 없다는 사람 처음 봅니까? ..  (106, 108, 163쪽)


 문학·문학성·문학정신이란 무엇인가 잘 모르겠습니다. 그저, 삶·삶빛·살림살이를 생각하고 싶습니다. 백 사람이면 아흔아홉 사람이 아니라 백 사람 모두 도시에서 살아가려 하는 오늘날, 만 사람이면 겨우 한두 사람 시골에서 살까 말까 한 요즈음, 한국문학과 한국소설에서 담아내며 나눌 이야기라면 어떠한 삶 어떠한 꿈 어떠한 빛깔이 될까를 생각하고 싶습니다.

 

 우리 집 네 살 아이는 아침에 일어나기 무섭게 신나게 뛰고 달리며 노래하고 춤춥니다. 쉴 사이 없이 종알거리고 떠들며 꽁알꽁알합니다. 이 아이한테 어떤 밥을 먹여야 좋을까 생각합니다. 이 아이랑 밥을 먹고 나서 무슨 놀이를 즐길까 생각합니다. 이 아이를 놀게 하면서 어버이는 무슨 일을 붙잡으면 좋을까 생각합니다. 바깥은 바람이 찬데 집에서든 밖에서든 치마만 입겠다는 이 아이를 어찌 달래야 좋을까 생각합니다.


.. 예쁘고 좋은 걸 보면 아이부터 생각났다 … 하루가 너무 길었다. 아이의 살냄새가 그리웠다 … 희망이 있다는 사실이 희망이었다 … 넘어지지는 않았지만, 첫 한 발짝 떼는 일이 엄두가 나지 않았다. 하지만 앞으로 나아가야 했다 ..  (15, 22, 30, 187쪽)


 소설책 《환영》을 덮습니다. 꿈을 꾸는 꿈으로 살아가는 실마리에서 빛을 살그머니 붙잡으며 눈물꽃 피우는 사람 하루살이를 떠올립니다. 왕백숙집 아줌마가 이럭저럭 눈물겹게 모은 돈으로 ‘버스 정류장 하나 없’다 싶은 깊은 시골마을에 작은 보금자리랑 논밭을 마련해 보았다면 얼마나 좋을까 꿈꿉니다. ‘하루에 버스 몇 대 겨우 지나가는’ 시골마을에 조그마한 살림집이랑 논밭을 장만해 볼 수 있으면 얼마나 좋을까 꿈꿉니다. 더는 물가에 얽히지 않으면서 시원한 샘물을 마시며 꿈을 꾸는 꿈으로 살림을 돌볼 수 있는 앞날이 보인다면 얼마나 좋을까 거듭 꿈을 꿉니다. 못난쟁이투성이 살붙이라 하지만 돈을 벌어 돈을 쓰고 돈으로 꾸리는 살림에서 벗어나 사랑을 벌어 사랑을 나누는 살림을 헤아릴 수 있으면, 이리하여 그림자 같은 나날이 아니요, 서로 반가운 이야기꽃 피우는 나날이라면, 더없이 좋을 텐데 하고 꿈꿉니다.

 

 글을 읽으며 “엄마한테 전화를 받다”라든지 “엄마한테 들었다” 같은 말투가 자주 보입니다. 이때에는 ‘-한테’가 아니라 ‘-한테서’ 토씨를 붙여, “엄마한테서 전화를 받다”와 “엄마한테서 들었다”처럼 적어야 올발라요. 제가 읽은 책은 5쇄인데 모두 ‘-한테’로만 나왔기에, 이 소설을 읽을 분들을 생각해서 군말 한 마디 붙입니다. (4344.12.26.달.ㅎㄲㅅㄱ)


― 환영 (김이설 글,자음과모음 펴냄,2011.6.17./1만 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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