색깔을 만드는 아기고양이 웅진 세계그림책 30
마틴 프로벤슨.앨리스 프로벤슨 그림, 마거릿 와이즈 브라운 글, 양희진 옮김 / 웅진주니어 / 2002년 7월
평점 :
절판


 

 고운 빛 이루는 아름다운 삶
 [다 함께 즐기는 그림책 116] 마거릿 와이즈 브라운·앨리스 프로벤슨·마틴 프로벤슨, 《색깔을 만드는 아기 고양이》(웅진주니어,2002)

 


 집식구 날마다 복닥이는 모습을 바지런히 사진으로 담은 지 네 해가 지납니다. 옆지기하고 둘이 살던 때에는 한 사람만 덩그러니 찍히는 사진이었으면, 두 해 반 즈음 두 사람이 나란히 찍히는 사진이었고, 이제는 세 사람 줄줄이 찍히는 사진입니다. 날마다 새벽에 사진을 갈무리합니다. 하루 앞서 찍은 사진을 이튿날 새벽에 갈무리합니다. 저녁에는 고단해서 곯아떨어지기 바쁩니다. 새벽에 기지개 켜고 일어나 두 눈에 힘을 주며 사진을 하나하나 살핍니다.

 

 어제 사진을 오늘 갈무리하면서 어제 하루 이렇게 보냈구나 하고 되새깁니다. 참 꿈만 같습니다. 그제 사진을 돌아볼라치면 그제가 몇 주나 몇 달쯤 지난 아득한 옛날 같습니다. 지난주나 지지난주 사진은 아주 머나먼 옛날이로구나 싶고, 한두 달 지난 사진을 살피면 아이나 어른이나 참 많이 달라진 모습이에요. 새삼스레 그리운 예전 이야기입니다.

 

 사진을 한창 들여다보다가 ‘어, 초점이 잘 안 맞은 사진이 뜻밖에 꽤 느낌이 좋은걸.’ 하고 생각합니다. 일부러 초점을 안 맞춘 사진이 아닙니다. 조리개값이랑 셔터빠르기를 모두 수동으로 맞추고 초점 또한 수동으로 맞추는데, 아이들 찍은 사진 가운데 아이들 낯빛이 가장 돋보인다 싶을 때에 ‘초점이 아직 덜 맞았으나 먼저 단추를 누른’ 사진이 있어요. 초점을 다 맞추고 나면 아이들 돋보이는 낯빛이 사그라들까 싶어 먼저 단추를 누르곤 해요. 그런데, 이렇게 찍은 사진이, 몇 초 뒤 초점을 빈틈없이 맞추어 찍은 사진과 함께 놓으면 한결 따사롭거나 무척 살갑거나 퍽 재미있곤 해요. 초점을 빈틈없이 맞추어 찍은 사진은 얼추 보기에 그럴듯하지만, 아이들 낯빛을 하나하나 뜯어 살피면 그닥 재미있지 않아요. 애써 종이로 뽑아서 간직할 만하다 싶은 생각이 들지 않아요.


.. 물감 통에는 색 이름이 적혀 있었어요. 하지만 고양이들은 읽을 줄 모르잖아요. 그러니 물감을 보고 이름을 맞춰야 해요. “그건 아주 쉬워.” 나비가 말했어요. “빨간색은 빨간색, 파란색은 파란색이지.” 제비가 말했어요 ..  (9쪽)


 누구라도 이러하리라 느껴요. 맞춤법이랑 띄어쓰기를 아주 빈틈없이 맞출 뿐 아니라, 온갖 그럴듯하며 멋진 낱말을 잔뜩 골라서 쓴 글이 가장 돋보이거나 즐겁거나 좋다 할 만한 글이 되지 않아요. 글을 쓰는 사람부터 가장 사랑스레 여길 만하며, 가장 좋아하는 이야기를 담아야 참으로 좋다 할 만한 글이에요. 읽는 사람으로서 가슴으로 스며드는 이야기와 삶을 느낄 때에 더없이 좋다 여길 만한 글이에요.

 

 그림 그리는 재주가 뛰어나다 해서 좋다 하는 그림을 낳지 못해요. 사진기 다루는 솜씨가 좋다 하지만 아름답다 싶은 사진을 빚지 못해요. 똑똑하다는 사람이 가장 슬기로운 삶길을 일구지 않아요. 돈이 넉넉하거나 많다는 사람이 가장 알차거나 알뜰살뜰하게 살림을 돌본다고 할 수 없어요.

 

 참다운 삶과 착한 사랑과 고운 꿈을 가장 눈여겨보며 돌봐야지 싶어요. 좋은 이야기와 살가운 생각과 애틋한 마음을 담으며 하루하루 누려야지 싶어요. 어버이한테서 고맙게 물려받은 목숨을 예쁘게 즐겨야지 싶어요.

 

 내 삶은 온통 무지개빛입니다. 흐린 날이랑 궂은 날은 틀림없이 있을 테지요. 그런데, 바로 이 흐린 날이랑 궂은 날이 함께 있기에 내 삶이 그야말로 온통 무지개빛이에요. 흐린 날이 지나면 맑은 날이 찾아듭니다. 궂은 날은 차츰차츰 갭니다. 비가 와서 마른 땅에 물기를 머금도록 도와요. 비가 그쳐 눈부시게 파란 하늘빛을 베풀어요. 눈이 와서 땅은 더욱 포근해요. 눈이 녹아 해맑고 밝은 꽃망울이 하나둘 터져요.


.. 온 세상이 갈색으로 물들더니 해가 지고 저녁이 되었어요. 밤이 깊어 가면서 색들은 포근한 어둠 속으로 사라지기 시작했어요. 색깔들이 모두 사라진 밤, 나비와 제비도 깊은 잠 속에 빠져들었어요. 나비와 제비는 꿈을 꾸었어요. 정말 멋진 꿈이었어요. 하나, 둘, 셋을 세면 빨간 장미 나무가 새하얗게 바뀌었죠 ..  (22∼23쪽)


 마거릿 와이즈 브라운 님 글에, 앨리스 프로벤슨 님과 마틴 프로벤슨 님 그림이 얼크러진 그림책 《색깔을 만드는 아기 고양이》(웅진주니어,2002)를 읽으며 생각합니다. 누구한테나 무지개빛 삶이에요. 누구나 제 삶을 아리따운 무지개빛으로 빚어요. 누구라도 온삶을 온갖 무지개빛으로 나날이 새롭게 그려요.

 

 고운 삶인 줄 느끼는 사람이 있고, 고운 삶인 줄 못 느끼는 사람이 있어요. 고운 삶을 어여삐 북돋우면서 사랑씨앗 심는 사람이 있고, 고운 삶을 어여삐 돌볼 줄 몰라 사랑씨앗을 잊거나 묵히는 사람이 있어요.

 

 솜씨 빼어나다는 사람만 무지개빛을 이루지 않아요. 재주 좋은 사람만 무지개빛이 환하지 않아요. 저마다 다른 무지개빛이에요. 저마다 곱고 기쁜 무지개빛이에요. 저마다 반가이 맞아들여 기쁘게 드리우는 무지개빛이에요.

 

 《플란다스의 개》에 나오는 ‘네로’는 나무판에 숯으로 그림을 그리든, 손가락으로 하늘과 땅에 그림을 그리든, 언제나 가슴속으로 피어나는 예쁜 무지개빛을 담았어요. 물감을 종이에 풀어서 그린다 해서 무지개빛이지 않아요. 값진 종이에 값진 붓을 놀려 값진 물감으로 빛깔을 선보인대서 아름답거나 훌륭하지 않아요.

 

 더 나은 사랑이 없듯, 더 나은 글이나 더 나은 노래나 더 나은 그림이란 없어요. 따사로이 품는 사랑이에요. 작다 크다 가르지 못하는 사랑이에요. 하늘빛은 하늘빛이요 바다빛은 바다빛이며 풀빛은 풀빛입니다.


.. 갑자기 나비가 깨어나고 제비도 깨어났어요. 아침이었어요. 둘은 침대에서 나와 새날을 맞이했어요. 아침 햇살이 눈부시게 밝았어요. 나비와 제비는 신이 나서 이리저리 뛰어다녔어요. 폴짝폴짝 뛰어다니다가 나비와 제비는 물감통을 엎지르고 말았어요. 물감들이 흘러나와 모두 섞였어요 ..  (28∼29쪽)


 그나저나, 그림책 《색깔을 만드는 아기 고양이》는 번역글이 그닥 아름답지 못합니다. 이를테면, “풀밭처럼 푸른 녹색(18쪽)”이란 무엇일까요. 이 그림책이 2002년에 처음 나왔다지만, 꾸준히 새 판을 찍는 만큼 ‘綠色’이라는 일본 빛이름은 털어야 합니다. 아니, 2002년에 펴낼 때부터 이런 빛이름은 걸렀어야지요. ‘녹색’이란 낱말을 그대로 쓰고 싶다 하더라도 “푸른 녹색”은 말이 안 되는 겹말입니다. “풀밭처럼 푸른 빛깔”이라고 적어야 올발라요.

 

 “염소처럼 지혜로운 갈색(19쪽)”도 못마땅합니다. 아이들한테 ‘褐色’이 왜 ‘갈색’인지 어떻게 이야기할 수 있나 헤아려 보셔요. ‘갈색’ 또한 우리 빛이름이 될 수 없어요. 한국사람은 ‘밤빛’이나 ‘흙빛’이나 ‘도토리빛’을 이야기해야 걸맞습니다.

 

 그러고 보면, 이 그림책에서는 ‘빛깔’을 말하지 않아요. 오로지 ‘色깔’만 말합니다. 조금 더 살핀다면, 한 번 더 들여다본다면, 다시금 곱씹는다면, 하얀빛·까만빛·노란빛·붉은빛·파란빛처럼 ‘빛’을 이야기하면서, 이 빛이 우리 가슴과 꿈과 사랑과 이야기와 삶에 어떻게 스며들면서 아름다운가 하는 생각을 나눌 수 있어요. 고운 빛 이루는 아름다운 삶입니다. (4344.12.26.달.ㅎㄲㅅㄱ)


― 색깔을 만드는 아기 고양이 (마거릿 와이즈 브라운 글,앨리스 프로벤슨·마틴 프로벤슨 그림,양희진 옮김,웅진주니어 펴냄,2002.7.30./8500원)

 

(최종규 . 201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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