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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기 곰 비디 ㅣ 비룡소의 그림동화 66
돈 프리먼 글 그림, 이상희 옮김 / 비룡소 / 2001년 8월
평점 :
절판
서로 한식구 되어 살아가기
[다 함께 즐기는 그림책 119] 돈 프리먼, 《아기 곰 비디》(비룡소,2001)
아이한테 그림책을 쥐어 주면서 생각해 봅니다. 이 그림책을 읽는 우리 아이는 이 그림책을 얼마나 좋아할 수 있을까. 우리 아이는 이 그림책을 얼마나 여러 차례 들여다볼 만할까. 아이 스스로 이 그림책을 찾아 읽으려나, 어버이가 애써 내밀어야 비로소 펼쳐 읽으려 하나.
어른인 내가 읽는 책을 곰곰이 돌아봅니다. 나는 내가 장만해서 읽는 이 책을 몇 차례쯤 되읽을 수 있을까. 나는 이 책을 한 번 읽고 나서 오래오래 덮어둘까. 다시 읽는 날이 있을까. 되읽지 않고 한 번 읽어 그친다면 굳이 이 책을 장만해서 읽어야 할 까닭이 있나.
아이한테 물려주겠다는 생각으로 사서 읽는 책은 부질없습니다. 바로 오늘 이곳에서 내 삶을 북돋우는 책만 사서 읽어야 아름답습니다. 아이한테 물려주겠다는 마음으로 사서 입는 옷은 덧없습니다. 아이한테 물려주겠다는 뜻으로 장만하는 아파트나 땅이나 자가용은 값없습니다.
아이들은 사랑을 느낍니다. 아이들은 책이나 지식이나 집이나 돈이나 자가용을 느끼지 않습니다. 사랑을 느끼는 아이들은 사랑으로 살아갑니다. 사랑을 못 느끼는 아이들은 껍데기와 겉치레에 휘둘리면서 나뒹굽니다.
곰곰이 돌이키면, 어버이 스스로 아름다이 살아가는 나날일 때에 아이들 또한 아름다이 꾸리는 삶이 돼요. 어버이 스스로 껍데기와 겉치레에 휘둘리면서 나뒹구니까 아이들 또한 껍데기와 겉치레에 젖어들면서 나뒹굴고 말아요.
.. 비디는 털이 복슬복슬한 장난감 곰돌이예요. 테일러가 주인이지요. 비디랑 테일러는 숨바꼭질을 가장 좋아해요. 가끔 비디는 우뚝 멈춰 섰다가 뒤로 벌렁 넘어지곤 해요. 태엽이 다 풀린 거예요 .. (3∼5쪽)
아이들한테 좋은 모습만 보여주지 않아도 됩니다. 아이들과 살아가는 어버이 스스로 좋은 모습을 보면 돼요. 어버이나 둘레 어른 스스로 좋지 못한 모습으로 살아가면, 이 모습을 아무리 숨기거나 감추려 한다 하더라도 아이들은 언젠가 남김없이 바라보고 느끼며 생각합니다.
아이들한테는 좋은 모습을 보여주려 애쓰지 말아야 해요. 그저 아이들과 좋은 삶을 일구면 돼요. 아이들한테 좋은 그림책을 읽히려 힘쓰지 말아야 해요. 아이들한테 영어를 일찍부터 가르치거나 영어 그림책을 읽히거나 영어 동화책을 읽히겠다고 법석을 떨지 말아야 해요. 아이들은 지식이나 정보가 아닌, 사랑과 믿음을 받아먹는 나날을 누려야 해요.
아이들은 아이 몸을 살찌우는 밥을 골고루 먹어야지, 영양식을 먹을 수 없어요. 아이들은 흙과 바람과 물과 햇살을 듬뿍 머금은 곡식과 열매와 푸성귀를 먹어야지, 값진 바깥밥을 먹을 까닭 없어요.
아이들은 제 어버이랑 놀아야 합니다. 아이들은 보육교사나 놀이지도사랑 놀 까닭이 없어요. 아이들은 동무와 형제랑 놀아야지 놀이공원에서 놀 까닭이 없어요.
.. 처음으로 혼자가 된 비디는 책을 보며 즐거워 했어요. “왜 아무도 나한테 이런 얘기를 안 해 줬을까?” 비디는 속상해서 중얼거렸어요 .. (10∼11쪽)
둘레에서 명작이라고 손꼽는 그림책을 장만해서 읽습니다. 아이한테 명작 그림책이라 일컫는 작품을 슬그머니 내밀어 봅니다. 아이는 명작이라 하는 작품에는 그리 눈길을 보내지 않습니다. 아이는 아이한테 즐겁거나 좋거나 재미나거나 신나는 그림책을 들여다봅니다. 그림책보다는 함께 뒹굴 어버이를 더 좋아합니다. 노래를 부르고 춤을 추며 달리기를 할 ‘놀이 어버이’를 반깁니다.
한참 놀고 나서 땀을 식히고 다리와 몸을 쉬면서 들여다보는 책입니다. 뛰놀고, 밥먹고, 책도 읽고, 노래도 부르고, 꾸벅꾸벅 졸며 뗑강이나 억지도 쓰고, 또 먹고, 씻고, 뒹굴고, 어지르고, 꾸중을 듣다가는 또 놀면서 하루를 보냅니다.
앞으로도 이 아이는 이렇게 살아가겠지요. 제 하루를 온통 제 것으로 삼아 저한테 즐거우며 좋을 일거리와 놀잇감을 누리겠지요.
그러니까, 어버이나 어른은 아이들한테 좋은 마당 하나 깔아 주는 사람이랄 수 있습니다. 그러나, 적잖은 어버이나 어른은 아이들한테 좋은 마당 하나 깔아 주지 못합니다. 좋은 마당 깔지 못하는 어버이나 어른을 탓하거나 손가락질하거나 못마땅해 하는 아이가 있습니다. 좋은 마당 없는 데에서 놀랍도록 좋은 마당을 새로 일구거나 마련하는 아이가 있습니다.
가만히 들여다보면, 어른한테는 아이라 할 테지만, 이 아이는 무럭무럭 자라서 푸름이로 우뚝 서고, 곧이어 젊은이로 튼튼하게 서요. 젊은이로 튼튼하게 선 아이는 어느새 스스로 어른입니다. 스스로 어른이 되어 스스로 좋은 마당을 일구어요.
.. “이 동굴에서 잘 지내려면 뭔가 더 있어야 될 것 같은데……. 그게 뭘까? 아, 알았다!” 비디는 곧장 밖으로 나가 눈 덮인 언덕을 총총걸음으로 내려갔어요. 테일러와 함께 살던 집으로 갔지요 .. (22∼23쪽)
돈 프리먼 님 그림책 《아기 곰 비디》(비룡소,2001)를 읽습니다. 아기 곰 비디는 인형 곰 비디입니다. 인형 곰은 어린이 테일러랑 한집에서 살았습니다. 어린이 테일러가 제 어버이랑 집을 비우고 어디 멀리 놀러갔을 때에 인형이자 아기 곰인 비디는 작은 집을 뛰쳐나옵니다. 스스로 제 삶을 찾아 길을 떠납니다. 그러나 아직 아기요 인형인 비디인 탓에 그만 태엽이 다 돼요. 태엽이 다 되니 발랑 나자빠져요.
.. “그래, 나에겐 네가 필요해. 그런데 테일러 너한테는 누가 필요해?” 비디가 테일러에게 물었어요 .. (43쪽)
비디한테는 따순 손길이 있어야 합니다. 어쩌면 비디는 언제까지나 따순 손길을 받아야 합니다. 그런데, 어린이 테일러도 이와 마찬가지예요. 테일러는 어린이일 때에도 어른이 된 다음에도, 둘레 사람들한테 따순 손길을 나눌 뿐 아니라, 테일러 스스로 이웃한테서 따순 손길을 받아야지요. 사랑을 받는 아이가 되면서 사랑을 주는 아이입니다. 어른한테서 배우는 아이요, 어른을 가르치는 아이예요.
아니, 가르치고 배운다는 말은 그닥 알맞지 않아요. 함께 살아간다고 해야지요. 함께 살아가면서 서로를 돕고 서로를 사랑하며 서로를 고마이 여겨요.
비디와 테일러는 한식구입니다. 비디와 테일러는 서로를 사랑합니다. 서로서로 고맙습니다. 서로서로 즐겁습니다. 날마다 눈을 마주하고 노상 마음을 나눕니다. 한식구라면 마땅히 사랑이 오갈 노릇이요, 한식구인 만큼 꿈과 이야기를 보드라이 나누겠지요. 함께 살아가면서 좋은 나와 너와 우리입니다. (4344.12.25.해.ㅎㄲㅅㄱ)
― 아기 곰 비디 (돈 프리먼 글·그림,이상희 옮김,비룡소 펴냄,2001.8.2./6500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