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치고다씨 이야기 6 - 완결
오자와 마리 지음 / 학산문화사(만화) / 2011년 6월
평점 :
구판절판



 사람을 사랑하는 착한 길
 [만화책 즐겨읽기 60] 오자와 마리, 《이치고다 씨 이야기 (6)》

 


 인터넷을 켜고 인터넷방송을 틀다가 ‘군가산점 토론마당’ 벌이는 모습을 살짝 봅니다. 그야말로 쓸데없는 이야기로 말다툼을 하는구나 싶습니다. 군가산점이라니, 군대살이 한 일이 무엇이 대단하다고 군가산점 노래를 부르려나요. 나라를 지키는 일을 했기에? 나라를 지키는 일은 의무라면서? 의무이자 나라사랑과 나라지키기가 마땅하다면, 이 일을 한 사람이 무슨 혜택이나 선물을 바라지? 혜택이나 선물을 바라면서 의무를 다 하는 사람이 있나? 아이들을 낳아 돌보면서, 이 아이들이 커서 어버이한테 뭔가 혜택을 돌려주거나 선물을 안기기를 바라는가?

 

 그렇지만, 나는 이렇게 생각하지는 않아요. 나는 군대에서 스물여섯 달을 썩는 동안, 이 군대살이가 얼마나 끔찍하고 더러우며 못난데다가 바보스러운지 뼛속 깊이 아로새겼어요. 군인이 된 모든 사람들이 얼마나 멍청하고 엉터리인데다가 쓸개빠진 뻘짓을 하는가 하고 깨달았어요. 게다가 군대는 사람 죽이는 짓을 대놓고 가르칠 뿐 아니라, 사람을 못 죽이면 네가 죽어야 한다고 윽박지를 뿐 아니라 두들겨패거나 욕지꺼리 퍼붓는 데예요. 사내들을 욕바람 주먹바람 미친개바람에 젖어들도록 내몰아요. 그래, 한창 젊은 나이를 이토록 엉터리 짓으로 보내야 하니 서글프고 괴로운 나머지 ‘공무원이 되거나 재벌회사 일꾼이 되는 자리에서 점수를 더 받아야 한다’고 말하려 한다면 말하셔요. 보람이 아닌 생채기이기 때문에 점수를 더 바란다면 점수를 더 달라고 떼를 쓰셔요. 즐거움이 아닌 슬픔이기 때문에 가시내보다 점수를 더 누려야 한다고 생각한다면, 앞으로 혼인해서 딸은 낳지 말고 아들만 낳으셔요.

 

 군대를 마친 사내를 반기는 곳은 한 군데였어요. 막일하는 공사장. 공사장에서는 군대 마친 사내를 좋아해요. 왜냐하면, 한국 군대는 하루가 멀다 하고 삽이랑 곡괭이를 손에 안기어 땅을 파게 시키거든요. 군대 가기 앞서 삽질 한 번 안 하던 범생이나 얌돌이나 도련님이라 하더라도 군대에서는 ‘뭔 녀석이 삽질 하나도 못해?’ 하면서 신나게 얻어터지며 삽질을 몸으로 배워요. 고등학생 때에 교과서로 배우기를, 북녘에서는 ‘천 삽 뜨고 허리 한 번 펴기’를 한다고 했어요. 그런데 남녘 군대에서도 ‘천 삽 뜨고 허리 한 번 펴기’를 해요. 때로는 더 모질어요. ‘만 삽을 뜨는데 허리 한 번 못 펴기’까지 해요. 왜냐하면 이등병 쫄따구일 때에는 ‘이등병 주제에 어디서 허리를 펴?’ 하면서 곧바로 군화발이 날아오더군요. 군화발은 머리로 올라오기도 하고 옆구리나 등허리로 날아오기도 하며, 좀 양반이라면 엉덩이로 날아와요. 공사장 막일판에서는 ‘군대에서 삽질을 어떻게 시키는가’를 아니까, 기술자 아닌 허드렛일 하는 일꾼으로 ‘군대 마친 사내’를 반겨요.

 

 그러니까, 공사장 막일판에 ‘예비군 무늬 박은 야상’을 걸치고 찾아가면 ‘군가산점’을 톡톡이 받아요. 우리 사회에는 군가산점이 틀림없이 있어요. 군인이 되면 길거리에 오줌을 누어도 경범죄로 안 걸려요. 군인과 개는 안 건드린다고 했어요. 군인이 되면 휴가나 외박 나와 술 퍼마시고 떠들어도 말리지 않아요. 군인과 개는 똑같다고 했어요. 군인옷 입고 휴가를 나오면, 아들이나 손자를 군대로 보낸 아주머니나 할머니 가운데 눈시울을 붉히며 만 원짜리 한 장 쥐어 주는 분을 어김없이 만나요. 시외버스를 탈 적에 김밥이나 과자나 물병을 슬그머니 내미는 아줌마나 할머니를 꼭 만나요. 군인옷 입고 헌책방에 갔더니 ‘고생하시네.’ 하면서 책값을 에누리해 주었어요. 우리 사회 곳곳에서는 군인한테 선물을 참 많이 주어요.


- “유미예요?” “아, 응. 어떻게 알았지?” “아버지의 얼굴을 하고 있었으니까요.” (4쪽)
- “배 아파 낳은 어미도 버렸는데, 왜 네가 ……. 지금은 회사 재건만으로도 힘든 시기잖니.” “아버지니까요.” (51쪽)


 나는 군대에서 아주 많은 사람을 아주 짧은 동안 아주 깊이 들여다볼 수 있었어요. 갑자기 하루아침에 온나라 곳곳에서 모인 온갖 사람들을 마주할 수 있었어요. 내무반에는 마흔 남짓 되는 똑같이 생겨먹어야 하는 사내들이 숫내를 징그럽게 풍기면서 팔도 아닌 사도 사투리를 현장중계해요. 이들 군인이 된 젊은 사내들은 ‘힘들며 괴로운 나날’을 꼼짝없이 받아들여야 하는 탓에, 성격이 아주 비뚤어져서 말끝마다 욕지꺼리에 손찌검에 우락부락하고 눈가 찢어진 사람이 꽤 있어요. ‘힘들며 괴로운 나날’에 너무 시달린 끝에, 성격이 아주 말라비틀어져서 겉으로는 웃는 얼굴에 상냥한 말씨인데 갑자기 뒷차기 옆차기 돌려차기 춤을 추는 사람이 퍽 있어요. ‘힘들며 괴로운 나날’에 하루하루 무너지느라 시커멓게 굳은 얼굴인데 말없이 따순 손길을 내미는 사람이 드문드문 있어요. ‘힘들며 괴로운 나날’이지만 겉으로도 속으로도 맑게 웃으며, 숫내 징그러운 내무반에 ‘우리도 언젠가 죽지 않고 집으로 돌아가겠지’ 하는 꿈을 잊지 않도록 이끄는 사람이 한둘쯤 있어요.

 

 나는 다른 사람들은 그닥 떠오르지 않아요. 떠올릴 어림 반푼 어치조차 없겠지요. 내가 떠올리는 사람은 모두들 죽겠다 괴롭다 뭐같다 하는 소리만 가득한 곳에서 이런저런 푸념 한 마디 없이 싱글싱글 웃으면서 ‘야, 얼굴 좀 풀어. 그런다고 국방부 시계가 돌아가는 줄 알아? 저기 하늘 좀 봐. 죽이지 않아? 이런 데 안 왔으면 어디 저런 하늘이나 볼 수 있겠어?’ 하고 이야기하던 사람이에요. 건더기 하나 없이 배춧잎 몇 둥둥 뜬 짜기만 한 된장국을 배춧잎조차 못 받고 멀겋고 짠 국물만 스텐식기에 덩그러니 받을 때에 ‘그래도 우리는 국물이 따뜻하잖아. 우리 뒤에 먹는 애들은 국물조차 다 식을 텐데.’ 하고 이야기하던 사람이에요. 꿈이 있는 사람은 꿈이 없다 하는 곳에서도 꿈을 말하더군요. 꿈이 없는 사람은 꿈이 없다 하는 곳에서 그야말로 바보 얼간이가 되더군요.

 

 가끔가끔, 참말 가끔가끔 군대에서 만나 함께 뒹굴던 사람들을 생각해 봅니다. 그때 그 고약하던 사람들은 어디에서 어떻게 살아갈까. 그때 그 아름답던 사람들은 어디에서 어떻게 지낼까. 고약하던 사람들은 고약한 버릇을 그대로 이을까. 아름답던 사람들은 걱정근심 없이 아름다이 살림을 꾸릴까. 고약한 짓 일삼던 사내들도 좋은 짝을 만나 아이를 낳고 아버지가 되었을까. 아름다운 넋으로 착하게 살려던 사내들도 좋은 짝을 만나 아이를 낳고 아버지가 되었을까. 고약한 사람들은 어떤 아버지가 되었을까. 아름답던 사람들은 어떤 아버지가 되었으려나.

 

 삶이 힘들다 싶으면, 일이 고되다 싶으면, 자꾸자꾸 옛일을 되새깁니다. ‘야, 얼굴 좀 풀어. 나이도 젊은 게 뭐 벌써 얼굴에 주름살이야.’ 그래, 군대에 끌려가는 사내는 기껏해야 열아홉 살부터 스물두엇 사이. 나이 좀 먹으면 스물서넛에서 스물여섯 사이. 열아홉에 이등병이 되든 스물여섯에 이등병이 되든, 누구라도 한창 젊을 때에 들어와서 썩는 군대인데, 썩어도 준치인지 모르겠으나, 한 사람 삶에서 그야말로 앳되며 파릇파릇할 나이에 시커먼 죽음구렁텅이에서 ‘사람 죽이기 재주’를 몸에 익혀야 한다지만, 빙그레 웃으며 착한 꿈을 잊지 말아야지요. 서른일곱에서 서른여덟로 접어드는 2011년 섣달 깊은 밤, 네 식구와 함께 조용하며 예쁜 무지개꿈을 꾸어야지요. 나부터 아름다운 아버지로 살아가고, 아름다운 옆지기로 지내며, 아름다운 넋으로 일을 해야지요.


- “할아버지께 갖다 드리려고 했는데.” “남은 걸 갖다 드리는 건 실례란다.” “하지만 할아버지는 초밥을 좋아하세요.” “초밥은 누구나 좋아해.” “저 혼자 먹을 수 있어도, 하나도 안 기뻐요.” “먹어도, 라고 해야지.” “할아버지도 먹고 싶을 거라고 생각했는데.” “어른에겐 드신다고 하는 거야.” “아빠는 뭐든 혼자서 잘하시지만 할아버진 내가 없으면.” “유미, 할아버지도 아직 뭐든 혼자 하실 수 있어.” “엄마도, 아빠도, 할아버지도, 내가 필요없구나.” “뭐?” “학교 갈게요.” “유미?” (55∼57쪽)


 좋은 곳에서 살림을 꾸릴 수 있대서 사람을 사랑하는 착한 길을 걸을 수 있지는 않습니다. 궂은 곳에서 살림을 꾸리더라도 사람을 사랑하는 착한 길을 걸을 수 있어요. 좋은 곳에서는 좋은 곳대로 좋은 꿈으로 사람을 사랑하는 착한 길을 걷고, 궂은 곳에서는 궂은 곳대로 좋은 꿈을 알뜰히 건사하며 사람을 사랑하는 착한 길을 걸을 노릇이에요.

 

 먼길을 가야 한대서 길가 흐드러진 들꽃을 못 본 척하며 지나갈 까닭 없어요. 천천히 누리며 걸어가면 돼요. 고단한 곳에서 몇 해 썩어야 하니까 얼굴 찌푸리고 나도 ‘그들처럼 똑같이 욕지꺼리 입에 주워담는 얼간이’로 나뒹굴어야 하지 않아요. 나는 여기에서도 나이고 저기에서도 나예요. 나는 좋은 자리에서도 나요 궂은 자리에서도 나예요. 나는 번들거리는 옷을 입어도 나요 허름한 옷을 입어도 나예요.

 

 돈있는 어버이가 나를 낳고, 번쩍거리는 자가용 모는 어버이가 나를 낳으며, 아파트 몇 채쯤 굴리는 어버이가 나를 낳아야, 내 삶이 좋을 수 없어요. 어느 어버이가 어떠한 삶터에서 어떠한 살림을 꾸리며 나를 낳든, 나는 나 스스로 좋은 웃음빛을 흩뿌리면서 착하게 살아갈 수 있어요. 오자와 마리 님 만화책 《이치고다 씨 이야기》(학산문화사,2011) 6권은 바로 이러한 이야기를 들려주면서 모든 이야기를 마무리지어요.


- “취직하면 우스이 이온 뒤에 kiss라는 크레디트가 들어가는 거잖아. 하지만 무대는 달라.” “그럼 난 무대를 선택할지도 몰라.” “뭐?” “얼마 전에 해 보고 안 건데, 무대 일이 정말 재미있더라고.” (76쪽)


 돈을 더 번대서 더 좋은 삶일 수 없어요. 돈을 덜 번대서 더 나쁜 삶일 수 없어요. 하는 일마다 벼랑에서 떨어지는 느낌이니까 더 괴로운 삶일 수 없어요. 하는 일마다 술술 풀리니까 더 나은 삶일 수 없어요.

 

 내 마음에 사랑씨를 심어 사랑꽃을 피우고 사랑열매를 맺는 사랑나무 자라지 않는다면 내 삶이 좋을 수 없어요.

 

 아름다이 꾸릴 내 삶이에요. 참다이 누릴 내 삶이에요. 착하게 가꿀 내 삶이에요.

 

 나는 나를 좋아하고, 나를 좋아하듯 내 옆지기를 만나며, 내 옆지기를 만나듯, 내 아이들하고 얼크러져요. 나는 나를 가꾸고, 나를 나꾸듯 내 옆지기를 어루만지며, 내 옆지기를 어루만지듯 내 아이들을 보살펴요.


- “난 아카리가 같이 기뻐해 주길 바랐는데. 솔직히 무모한 것 같기도 하고. 아카리 말이 옳은 말이긴 한데.” “하지만 이온에겐 재능이 있어. 난 옷 같은 건 신경도 안 썼는데, 이온이 옷을 잔뜩 만들어 준 덕분에 지금은 멋내는 걸 좋아하게 됐잖아. 이온은 옷으로 사람을 행복하게 만들어. 이온의 옷에서는 ‘입는다’는 것 이상의 의미가 느껴져. 그건 내가 보증할게. 그러니까 하고 싶은 건 뭐든 다 해 봐.” “응, 고마워.” “이온은 하면 할 수 있는 사람이잖아.” “고맙다. 왠지 용기가 생겼어.”  (87∼91쪽)


 대한민국에서 군대가 있기 때문에 군대에 아마 100조 원이 넘는 돈을 해마다 들이리라 봅니다. 국방비로 잡힌 돈보다 훨씬 어마어마하게 큰 돈이 군대로 쏠려요. 대한민국에서 군대가 있대서 평화를 지킨다거나 누리지 않아요. 군대가 있기에 평화를 지키면서 사랑이 꽃피우지 않아요. 군대가 있으니까 평화도 사랑도 꿈도 없어요.

 

 대한민국에서 군대를 없앨 수 있으면, 해마다 100조 원에 이르는 돈을 시골마을 예쁘게 지키면서 대한민국 자연을 곱게 돌보는 데에 들일 수 있어요. 이렇게 하면 애써 도시로 몰려들며 악다구니처럼 돈벌이에 불을 켤 까닭이 없어요. 네 식구 두 세대를 넘어 열 식구 세 세대가 한 집에 모여서 살더라도 누구나 오천 평이나 만 평쯤 되는 흙땅을 얻어 스스로 일구고 스스로 얻으며 스스로 누리는 고운 살림을 돌볼 수 있어요. 군대 없는 나라에는 평화가 있고, 군대 잊은 나라에는 사랑이 있어요. 젊은 사내들이 한창 꽃피우는 나이에 ‘사람 죽이는 짓’에 시달리거나 휩쓸리면서 바보가 되지 않고, 바로 이때에 흙을 아끼고 사랑하는 삶을 누린다면, 이 나라는 참으로 아름답고 따사로운 터전이 되겠지요.

 

 젊은 사내는 사람 죽이는 짓을 배운다며 이태를 군대에서 썩으면 안 돼요. 젊은 사내는 고운 옆지기를 만나 사랑을 꽃피우면서 예쁜 아이들을 낳아 둘이 함께 아이들을 착하게 보살피며 살아야 해요. 돈벌이에 파묻혀서는 안 돼요. 삶짓기에 온힘을 바쳐야 해요. 군가산점에 목매달면 안 돼요. 아이들 맑고 밝은 눈빛을 물끄러미 바라보며 애틋하게 사랑할 수 있어야 해요. 우리는 서로 착하게 어깨동무할 좋은 벗이에요. (4344.12.25.해.ㅎㄲㅅㄱ)


― 이치고다 씨 이야기 6 (오자와 마리 글·그림,정효진 옮김,학산문화사 펴냄,2011.6.25./4200원)

 

(겉그림 또 안 긁어 놓았네... -_-;;;;)


댓글(0) 먼댓글(0) 좋아요(0)
좋아요
북마크하기찜하기 thankstoThanksTo