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게게게의 기타로 5
Mizuki Shigeru 지음, 김문광 옮김 / AK(에이케이)커뮤니케이션즈 / 2010년 3월
평점 :
구판절판
어떤 나라에서 살아가나요
[만화책 즐겨읽기 83] 미즈키 시게루, 《게게게의 기타로 (5)》
내가 살아가는 나라는 내가 사랑하는 나라입니다. 내가 살아가는 집은 내가 사랑하는 집입니다. 나 스스로 좋아서 한국사람으로 태어나지 않았을 수 있으나, 나는 내 꿈과 사랑을 살포시 실어내는 터전으로 느끼며 이 나라에서 태어나 살아가는지 모릅니다. 나 스스로 바라서 어느 어버이 어느 살림집에서 태어나지 않았을 수 있지만, 나는 내 꿈과 사랑을 찬찬히 이루는 보금자리로 누군가를 어버이로 삼으며 태어나 살아가는지 몰라요.
한국사람으로 태어나서 더 기쁘지 않습니다. 프랑스사람으로 태어나서 더 반갑지 않습니다. 몽골사람으로 태어나서 더 즐겁지 않습니다. 살아가면서 웃음과 눈물을 함께 맛봅니다. 살아가면서 밥을 먹고 옷을 입으며 잠을 잡니다. 사랑과 사랑과 사랑으로 어여삐 거듭나는 나날일 수 있어요. 고단하고 고달프며 고되는 나날인데, 이 괴로움이 새삼스러운 사랑이 되어 아리따이 빛날 수 있어요.
누구나 꿈꾸는 대로 삶을 일굽니다. 착하며 예쁘게 꿈을 꾸면서 착하며 예쁘게 삶을 아낄 수 있으면, 착하며 예쁘게 누리는 하루를 맞이합니다. 더 많이 벌어들일 돈과 이름값을 헤아린다면, 틀림없이 더 많이 벌어들일 돈과 이름값에 따라 살아가지만, 그만큼 내 곁에서 떠나거나 사라지는 빛줄기가 있어요.
- “일본에 이런 풍습이 아직도 남아 있단다, 야.” “나도 몰랐어.” “그러게 말야. 그래서 어떡할래? 어떻게든 구해 주지 않으면 네 양심이 가만 있지 않겠지?” “당연하지! 하지만 S촌까지 갈 차비가 없는데.” “걸어가. 두 다린 뒀다 뭐 해.” (6쪽)
- “도로를 건너다 차에 치여 죽은 고양이랑 개들의 망령이 복수를 하고 있었던 거야. 덤프트럭으로 둔갑해서 차를 덮치는 거지.” (58쪽)
대통령 한 사람 힘으로 달라지는 누리가 아닙니다. 정치꾼 한 사람 힘으로 무너지는 마을이 아닙니다. 내가 꿈을 꾸고 네가 꿈을 빚습니다. 내가 사랑을 하고 네가 사랑을 이룹니다. 내가 삶을 짓고 네가 삶을 돌봅니다.
어떻게 살아야 좋을까는 내가 스스로 고릅니다. 어떤 나라에서 살고 싶은가는 내가 스스로 찾습니다. 어떻게 이 길을 걸어갈까 하는 생각은 내가 스스로 길어올립니다. 어떤 길을 어디에서 찾는가 하는 실타래는 내가 손수 풀고 맺습니다.
요즈음은 애써 말하는 사람이 드물지만, 국가보안법이라고 하는 쇠사슬은 바보나 멍텅구리가 만들지 않습니다. 똑똑하고 잘났다 하는 사람들이 똑똑하고 잘났다 하는 아이들을 낳아 똑똑하고 잘났다 하는 대학교에 보내면서 태어납니다. 미국 군대가 한국땅에 들어온 발자취이든, 한겨레가 남북으로 갈라져서 총부리를 들이대야 한 발자국이든, 어디 먼 나라에서 억지로 일으키지 않아요. 똑똑하고 잘난 사람들이 이런 슬픔을 길어올립니다. 똑똑하고 잘난 나머지 똑똑하고 잘난 돈·이름값·힘줄에 얽매여요.
내 밥·옷·집을 스스로 건사하고 스스로 일구며 스스로 다스리는 사람들은 국가보안법이나 4대강사업이나 우주선이나 한미자유무역협정이나 비정규직을 만들지 않습니다. 사랑스러운 밥과 옷과 집을 이루어 나누는 삶을 짓습니다. 밭에 무와 당근과 배추와 시금치를 골고루 심어 일구는 사람이 4대강사업을 할 까닭이 없습니다. 살구나무와 감나무와 오얏나무를 알뜰히 사랑하는 사람이 우주선을 달나라에 쏘려고 큰돈을 바치지 않습니다. 흐르는 냇물을 마시고 흐르는 냇물에 빨래하며 흐르는 냇물에 몸을 씻는 사람이 비정규직 울타리를 세울 일이 없겠지요.
- “어딜 뛰어들려고. 여긴 태평양 한가운데야. 뛰어들어 봤자 상어의 먹이가 될 뿐이라구! 마침 잘 됐잖아. 같이 재물이 돼서 사죄해.” “그럴 작정으로 배에 타신 거 아니었습니까?” “내가 미쳤냐! 마을 놈들이 돌을 던지며 쫓아오는 통에 귀찮아서 배 안에 숨었던 거지.” “그러다 깜빡 잠이 든 거군요.” “생쥐인간, 이 태평양 한가운데서 버둥대 봤자 소용없어. 얌전히 같이 재물이 되러 가자구. 너도 잘못했다며?” (29쪽)
- “보아 하니 저 꼬마가 편지를 보낸 녀석인가 보네.” “만나 보면 알겠지, 뭐.” “배도 고파 죽겠구만. 야, 꼬마! 기타로 님이 오셨다.” “어, 생쥐인간이네.” “뭐야, 이놈이 건방지게. 배기가스 넘실대는 도쿄에서 네 녀석들의 고통을 구해 주려고 일부러 찾아왔건만.” “그래, 알아! 어려도 알 건 다 안단 말야. 청어알에 감주 한 잔 대접할게.” “이제 보니 착한 녀석이구나. 꼭 도와줄게.” “생쥐인간, 온몸이 가렵다더니?” “덕분에 싹 날아갔어. 이히히히히.” (127쪽)
대학교 때문에 나라가 흔들린다고는 느끼지 않습니다. 생각없이 대학교를 세우고, 생각없이 대학교를 꾸리며, 생각없이 대학시험을 치르도록 해서, 생각없는 대학생으로 젊은 나날을 내팽개치도록 하니까 나라가 흔들립니다.
나라가 흔들리는 까닭은 나라를 이루는 사람들 하나하나 제 삶자리에서 흔들리기 때문입니다. 삶길을 모르는 사람들로 이루어진 나라는 삶길을 모르는 정부를 세우고 삶길을 모르는 공무원이 뽑혀 삶길을 모르는 행정정책이 되풀이되도록 몰아붙입다.
이를테면, 공무원시험은 공무원을 뽑는 시험이 아닙니다. 공무원은 이 나라 여느 사람들을 돕는 일꾼이 아닙니다. 공무원이 세워서 꾸리는 행정 정책은 돈을 다루어 돈을 버는 일입니다. 착하게 이웃사랑을 나누는 사람들이 착하게 이웃사랑을 펼치는 꿈을 담아 공무원시험 문제를 내지 않습니다. 대학교 입학시험도 이와 마찬가지입니다. 학교에서 치르는 쪽지시험이든 학기말시험이든 똑같습니다. 모든 시험은 돈을 다루어 돈을 버는 데에 눈길을 맞춥니다. 초등학교 아이들마저 치르도록 하는 학력평가라는 시험은 착한 삶이나 참다운 삶이나 아름다운 삶하고 동떨어집니다. 이 아이들이 돈을 얼마나 잘 다루고 돈을 얼마나 잘 벌어들일 만한가를 따지는 굴레입니다.
이 나라 어버이 가운데 아이들이 시험을 치르지 않도록 보살피거나 보듬는 분이 드물어요. 아이들이 착하게 살도록 손을 내밀거나 아이들이 참답게 자라도록 어깨동무를 하거나 아이들이 아름다이 살도록 온몸을 바치는 어버이가 너무 드뭅니다.
어버이 스스로 착한 나라, 착한 마을, 착한 보금자리를 꿈꾸지 못해요. 어버이 스스로 착한 삶과 착한 살림을 바라지 않아요. 어버이 스스로 조그마한 나무씨앗 하나 고맙게 건사해서 즐거이 흙에 묻을 수 있을 때에, 아이들 또한 조그마한 나무씨앗 하나 고맙게 돌보면서 천천히 뿌리내리고 싹을 트며 줄기를 올리는 나무를 껴안습니다. 나무 한 그루 돈으로 사들이는 어버이 곁에서는 나무 한 그루 돈으로 재는 아이들이 자랍니다.
- “안 되겠어, 엄마! 나 요괴 우체통에 편지 보내 볼래.” “얘가, 그런 게 무슨 소용이 되니.” “엄마, 아무것도 모르는구나.” …… “앗! 역시 왔어. 나막신 소리야! 역시 기타로는 진짜로 있었던 거야!” (49쪽)
- “시험에서 빵점이나 받는 녀석은 쓰레기야.” “칫, 빵점 몇 번 받는다고 죽냐.” “흥, 시험성적이 나쁘면 아무 학교도 못 간다는 걸 알아야지. 학교만이 아냐. 사회에 나가도 시험은 잔뜩 있다구.” “넌 시험만 잘 보면 다 되는 줄 아는데, 내가 보기엔 네가 더 바보야.” “흥, 지금 세상은 시험점수만 좋으면 장관도 될 수 있다네.” “정말 짜증나네, 이 녀석.” “친구라서 충구해 준 거야, 이 돌대가리야.” “뭐가 어째, 이 범생이 자식!” (144쪽)
우리 집 아이들을 바라보면서 날마다 느낍니다. 어버이로서 착한 길을 걸을 때에는 아이들이 착한 길을 함께 걷습니다. 어버이로서 못난 길을 걸을 때에는 아이들 또한 못난 길을 나란히 걷습니다. 때로는 아이들이 어버이를 거스르며 못난 길은 싫다고 다른 길로 빠져나가곤 해요. 이때에 모자란 어버이인 나는 아이를 윽박지르거나 다그치겠지요. 왜 어버이 말을 듣지 않느냐고, 왜 어버이 말대로 하지 않느냐며 나무라겠지요. 그렇지만, 어버이 스스로 착하거나 참답거나 아름다이 살아가지 않는데, 아이들만 착하거나 참답거나 아름다우라 바랄 수 없어요. 어버이 스스로 돈바라기이면서 아이들이 돈바라기를 못마땅해 할 때에 꾸짖는대서 무언가 달라질 일이 없어요.
이런저런 일로 지친 날, 라면 끓여 아이한테 내주면 아이는 라면 맛에 익숙해지며 라면을 바랍니다. 이런저런 일을 알맞게 다스리면서 어버이 사랑을 살가이 담아 밥 한 그릇 차려서 내놓으면 아이는 사랑 어린 밥을 맛나게 즐깁니다. 감자 한 알 삶아서 내놓을 수 있어요. 감자 한 알 채 썰어 맛나게 지지거나 볶거나 튀길 수 있어요. 감자 한 알 국으로 펄펄 끓여 내놓을 수 있어요. 감자 한 알 신나게 갈아 지짐이 하나 내놓을 수 있어요. 감자를 굵게 썰어 감자밥 한 그릇 내놓을 수 있어요.
생각하면서 차리는 밥을 먹는 아이들은 생각밥을 먹습니다. 사랑을 고이 싣는 밥을 먹는 아이들은 사랑밥을 먹습니다. 온마음 듬뿍 쏟아 지은 밥을 먹는 아이들은 마음밥을 먹습니다. 아름다운 꿈을 한 올 두 올 찬찬히 풀며 지은 밥을 먹는 아이들은 꿈밥을 먹어요.
- “다들 물러나거라. 지금의 시합 결과대로 기타로의 승리다. 여우의 명예를 걸고 한 약속을 지키지 않으면 인간들에게 비웃음을 사게 된다! 이나리 님처럼 정일품 신으로 추앙받을 수 있도록 수행들 하라.” “예이.” “예잇.” “보거라, 기타로. 인간들의 공사는 중지할 수 없다고 하는데, 더 이상 우리 영역을 침범하지 않도록 할 수 있겠느냐. 또한, 전쟁이 끝난 후로 이나리 신께 유부를 바치는 인간들이 줄어 우리 요호족은 분노하고 있느니라. 앞으로 매일 전국의 이나리대명신께 유부가 끊이지 않을 것, 이 두 가지를 약속하겠다면 인간들의 지하주차장 건설을 허럭하마.” “고맙습니다. 그런 조건이면 인간들을 납득시킬 수 있을 거예요.” (234∼235쪽)
- 영감한테서 여러 가지 사정을 듣고 본래는 선량한 사람이었다는 것을 알았다. 나라가 그렇게 심술궂게 만들었던 것이다. 기타로는 관청 사람한테 사정을 얘기해 좋은 집을 지어 주었다. 그러자 할아버지는 본래의 선량한 할아버지로 돌아왔다고 한다. (268쪽)
미즈키 시게루 님 만화책 《게게게의 기타로》(AK커뮤니케이션즈,2010) 5권을 읽으면서 곰곰이 생각합니다. 나는 어떤 나라에서 살아가는가 하고 하나하나 되돌아봅니다. 나는 어떤 나라에서 살고 싶었으며, 어릴 적부터 오늘에 이르기까지 내가 발디딘 이 나라가 어떻게 흐르면 좋겠다고 느꼈는가를 되짚습니다. 내가 살고 싶은 나라를 이루도록 어떤 땀을 흘리고, 내가 살아가려는 나라를 꽃피우도록 어떤 사랑을 심는가를 되새깁니다.
온갖 요괴가 춤을 추는 만화 《게게게의 기타로》라 할 텐데, 《게게게의 기타로》에 나오는 요괴는 그냥 요괴일 수 없습니다. 사람들 생각이 빚는 목숨덩어리인 요괴입니다. 사람들 마음이 일으키는 목숨붙이인 요괴입니다.
착한 마음은 착한 요괴를 낳습니다. 얄궂은 마음은 얄궂은 요괴를 부릅니다. 따스한 꿈은 따스한 씨앗이 되어 따스한 나무가 자라도록 이끕니다. 어두운 꿍꿍이는 어두운 쓰레기가 되어 땅속에 묻어도 썩지 않으면서 몹쓸 다툼과 싸움을 불러들입니다. (4344.12.12.달.ㅎㄲㅅㄱ)
― 게게게의 기타로 5 (미즈키 시게루 글·그림,김문광 옮김,AK커뮤니케이션즈 펴냄,2010.3.15./8000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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