책으로 보는 눈 172 : 흙일꾼하고 읽을 책
“나 꼭 (농약) 공중살포를 중지시킬 거예요! 아이들을 위해, 벼를 위해, 흙을 위해, 이것만은 꼭.” 하는 이야기가 일본만화 《나츠코의 술》(학산문화사,2011) 6권 42쪽에 실립니다. 1980년대 끝무렵 일본술 빚는 시골마을 이야기를 다루는 만화책 《나츠코의 술》입니다만, 오늘날 일본은 어떻게 달라졌는지 궁금한데, 여러모로 듣기로는 일본은 한때 ‘헬리콥터로 시골마을 들판에 농약을 뿌리던 일’을 끝없이 밀어붙이다가, 이제는 함부로 섣불리 하지 않는다고 합니다. 그리고, 한국에서는 ‘사람이 타지 않는 헬리콥터로 안전(?)하게 농약을 뿌리는 일’을 ‘친환경’이라는 이름까지 붙여 온나라 곳곳에서 펼친다고 할 뿐 아니라, ‘항공방제’라는 이름으로 더 널리 더 많이 더 자주 합니다.
“(일본에서 1980년대 끝무렵에) 쌀의 연간 생산량 3조 6000억 엔, 그리고 농기계 값이 8000억, 농약값 1800억, 비료 등 그 외 비용을 전부 합치면 1조 엔 이상. 알겠냐 나츠코? 쌀은 생산량의 1/4이 기업의 먹잇감이 되는 거야.” 하는 이야기를 일본만화책으로 읽으며 생각합니다. 한국이라 해서 크게 다르지 않아요. 흙일꾼이 풀약을 쳐야 하고, 농협에서 항공방제를 해 주며, 비료와 볍씨를 사서 쓰도록 하는 얼거리에서는, 정작 흙을 일구는 시골 할매랑 할배는 돈푼 제대로 만지기 어렵습니다. 농협은 해마다 살림을 키우지만, 시골 흙일꾼은 해마다 살림을 줄입니다.
여태 모르고 살다가 항공방제를 알아봅니다. 우리 집 네 식구는 시골마을 한복판에서 살림을 꾸리기에 항공방제를 더 찬찬히 알아봅니다. 아직 논밭은 없고 살림집만 있는 시골살이인데, 앞으로 우리 몫 논밭을 마련해서 어린 두 아이들이 무럭무럭 자라 함께 흙을 일군다 할 때에, 이 흙에 농협 헬리콥터가 ‘사람마저 안 탄 채’ 마구 날아와 농약을 뿌린다 하면, 우리는 어떻게 쌀을 먹고 푸성귀를 먹으며 열매를 먹어야 하나 걱정합니다. 벌써 여러 해 앞서부터 온나라에서 거두는 밤이나 열매는 항공방제를 해서 벌레가 안 먹도록 했답니다. 튼튼하고 좋은 밤을 먹는 일보다, 벌레 안 먹어 잘 팔리는 밤을 거두어 ‘농가소득증대’를 이루어야 한다는 농협과 관청 행정정책으로 항공방제를 한답니다.
우리 마을 어르신들하고 《나츠코의 술》이라는 만화책을 함께 읽으면 좋겠다고 꿈을 꿉니다. 마을 어르신들 아이들은 모두 도시로 떠나 돈벌이를 하느라 바쁘기에 책을 읽지 못하고, 마을 어르신들은 당신 아이들을 키우고 가르치며 흙을 일구느라 바빠 책을 읽지 못하며 살아갑니다. 일흔이나 여든 나이에 글씨가 깨알같은 만화책을 읽으실 수 있을까 모르겠습니다. 돋보기를 쓴들 보일까요. 그래도, 우리 아이들을 생각하고 마을 어르신들을 헤아리며 푸나무와 흙과 냇물을 떠올린다면, 이 만화책을 큼지막하게 복사해서 돌려읽기를 하고 싶어요.
적어도, 사람들이 아무리 바보스럽다 하더라도, 한 가지는 다들 알아요. ‘저농약 곡식’이 ‘농약으로 키운 곡식’보다 비쌉니다. ‘친환경 유기농 곡식’이 ‘저농약 곡식’보다 비쌉니다. 비싸다는 소리란, 제대로 땀을 들여 옳게 지었다는 뜻이요, 사람들 몸에 좋다는 뜻입니다. 값싼 곡식을 먹는 사람들은 주머니를 아끼는 삶이 아니라 몸과 마음과 삶 모두를 갉아먹는 바보짓을 일삼는다는 뜻입니다. 옳은 목소리 외치려면 옳은 값 들여 옳은 밥 먹으며 옳은 일을 해야 합니다. (4344.12.9.쇠.ㅎㄲㅅㄱ)