울기엔 좀 애매한 사계절 만화가 열전 1
최규석 글.그림 / 사계절 / 2010년 8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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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만화를 빛내는 알맹이인 사랑이 없으면
 [만화책 즐겨읽기 94] 최규석, 《울기엔 좀 애매한》



 이른아침 어김없이 빨래를 하고 나서 마당에 건 빨랫줄에 걸 무렵, 네 살 아이는 언제나처럼 뽀르르 좇아나옵니다. 아버지가 빨래를 거는 일을 거들다가는 어린 아이 목소리를 문 바깥에서 듣습니다. 응? 뭘까? 우리 시골마을에는 우리 집 말고는 아이가 없는데? 어떤 아이 소리가 갑자기?

 그러고 보니 어제 아침에 이장님 댁 쌀푸대를 나를 때에 어느 아이가 지나가더라는 이야기를 들었습니다. 어느 이웃 어르신 댁에 손주가 놀러왔는지 모릅니다. 아이는 까치발을 하며 문을 엽니다. 두리번두리번하다가 달립니다. 달리다가는 집으로 들어와 아버지 바짓가랑이를 잡아당깁니다. “아버지 빨리 와. 친구한테 같이 가.” “아버지 빨래 널고.”

 이 마을에 놀러온 아이라면 금세 사라질 일이 없으니, 빨래 좀 다 널고 가면 됩니다. 아이는 조바심을 내다가는 저희 아버지가 빨래 안 널면 안 나갈 줄 깨닫고는 바삐 일손을 거듭니다. 아버지는 천천히 빨래를 넙니다. 빨래를 다 널고 방으로 들어가니 “간다며!” 하고 부릅니다. “옷을 갈아입어야 가지.” 옷을 갈아입고 나니 옆지기가 “(둘째) 아기 기저귀 채우고 (같이) 데려가요.” 하고 부릅니다.

 둘째를 안고 첫째가 앞장서며 마을 안쪽으로 걸어갑니다. 아이 소리가 어디서 났나 고개를 갸우뚱하면서 찾아봅니다. 몇 집 없으니 곧 알겠지 하고 생각하며 걷습니다. 아이는 지나가는 집마다 빼꼼 들여다보면서 인사합니다. 이웃 할머니 할아버지가 “오냐, 어디 가니?” 하고 물으면 “안녕하세요. 저기요.” 하고는 통통통 달음박질을 합니다.

 이윽고 아이 소리 나는 집을 찾아냅니다. 멀리서도 아이 소리가 들리고, 아이 모습이 살짝 무너진 돌울 사이로 보입니다. 첫째더러 “저기 있네. 저 집에 있네. 불러 봐.” 아이는 소리 높여 “친구야, 친구야, 나와라.” 하고 부릅니다. 종알종알 소리를 내며 놀던 아이는 고개를 이쪽으로 돌리며 “응? 응?” 합니다. 우리 아이가 돌울에 기대어 저쪽 아이를 부르고, 저쪽 아이도 천천히 다가오며 서로 부릅니다.


- “어, 엄마. 힘들지 않겠어?” “착한 사람 위해서 고생하는 건 안 힘들어, 라고 아즘이 말했어. 그러니까 내가 힘들게 느껴지면 넌 나쁜 사람이라는 거지.” (20쪽)


 소 키우는 집 할아버지네 부산 사는 막내집 아이가 찾아왔답니다. 부산집 막내가 일이 바빠 한동안 아이를 이곳에 맡겼다는군요. 세 살 아이는 엄마도 찾지 않으며 이곳에서 잘만 논다고 합니다. 아하, 그러면 우리 집 첫째한테 동생이구나.

 둘은 이내 말을 섞으며 이리 달리고 저리 뛰면서 놉니다. 아이는 할아버지 댁에 있는 마늘을 놀잇감 삼습니다. 웃대를 자른 마늘을 보니 마늘알 가운데에 솟은 줄기라 할 대가 꼭 수수깡입니다. 그러고 보니, 줄기를 벗긴 심을 일컬어 수수깡이라 하니까, 마늘수수깡이 되겠군요.

 두 아이는 한참 떠들고 웃으면서 놀더니, 할머니가 앉아서 마늘 까는 자리에 저희도 꼭같이 앉아 손가락으로 마늘을 벗깁니다. 그래, 너희가 시골에서 하루를 머물든 한 해를 살든, 시골에서는 시골사람이 일하듯 시골아이로 놀겠구나.

 할아버지는 나한테 “자네 술 한잔 하겠는가? 안주는 김치밖에 없네.” 하고 말씀합니다. 나는 할아버지하고 섬돌이랑 섬돌 옆 걸상에 앉아 김치랑 술 한잔을 하며 아이들을 바라보고 사진을 찍습니다. 햇살이 따사롭게 들어오는 섬돌 둘레에서 다섯 사람이 이리저리 앉거나 뛰거나 하면서 어우러집니다. 우리 집 대문은 연 채 나왔지만 그리 걱정스럽지 않습니다. 대문으로는 바람이 들어오고 햇살이 찾아오겠지요. 대문으로는 유채 심은 논자락을 달리던 바람이 들어오고, 억새 한들거리는 논둑을 비추던 햇살이 슬그머니 스며들 테지요.


- “사장님, 빠는 이상한 데 아니죠?” “왜? 한 번 데리고 가 줘?” “아, 아뇨. 뭐 하는 덴가 궁금해서요.” “그냥 얘기하면서 술 먹는 데지 뭐. 저런 데 댕기지 마. 어린 놈이 비싼 술집 맛 들이면 돈 못 모아.” “저런 데 안 가도 못 모아요.” (43쪽)


 아침을 아직 안 들었는데 찰랑찰랑 넘치도록 따라 주신 다섯 잔을 잇달아 마시니 어질어질합니다. 마늘을 막 심을 무렵에는 비가 없어 근심이더니, 마늘을 심고 나니 비가 너무 잦아 다시 근심이라는 이야기를 듣습니다. 곰곰이 생각합니다. 올 늦가을과 이른겨울은 날씨가 너무 고약합니다. 그렇지만 올 늦가을과 이른겨울만 얄궂은 날씨가 아닙니다. 벌써 꽤 된 이야기입니다. 날씨는 나날이 고약해집니다.

 도시사람은 날씨가 고약해지건 말건 아랑곳하지 않습니다. 도시사람은 이 나라 흙이며 햇볕이며 바람이며 물이며 푸나무며 시들시들 죽음길을 달리더라도 돈벌이 삶자락을 놓지 않습니다. 도시사람은 자연이 무너지거나 흔들려도 아파트 재개발을 멈추지 않습니다. 도시사람은 한여름 갑자기 어마어마한 비가 여러 날 끊이지 않고 쏟아지더라도 자동차를 끝없이 새로 만들고 새로 장만하며 새로운 고속도로를 또 뚫습니다. 도시사람은 아이들 학원 걱정을 합니다. 도시사람은 실업자 걱정을 합니다. 도시사람은 한미자유무역협정 걱정을 합니다. 도시사람은 4대강 막삽질 걱정을 합니다.

 쌀 걱정 보리 걱정 시금치 걱정 무 걱정 배추 걱정을 하는 도시사람은 아주 드뭅니다. 걱정을 하면서 삶을 바꾸거나 고치는 도시사람은 찾아볼 길이 없습니다. 대입시험이나 중·고등학교 중간시험이나 기말시험 걱정을 하는 도시 푸름이만 있을 뿐, 시골마을에 할머니랑 할아버지만 남는 일을 걱정하지 않습니다. 돈을 더 벌어 으리으리한 집 하나 마련한다면 시골 사는 할머니랑 할아버지를 모실 수 있는 듯 생각합니다.

 씨앗 하나 심는 길을 헤아리지 못하는 도시사람입니다. 나무 한 그루 심는 꿈을 돌아보지 못하는 도시사람입니다. 아이들이 마음껏 흙을 박차면서 나무를 타고 오르며 열매를 따서 먹는 어여쁜 집숲을 깨닫지 못하는 도시사람입니다.


- “나 같으면 대학이고 뭐고 벌써 때려치우고 공장 갔다. 대학 나와야 만화 그릴 수 있는 것도 아니잖아.” “그렇지. 근데 한 번 놓치면 다시 여기로 못 올 거 같은, 그런 거 있잖냐. 미안하다.” “아니, 형한테 꼭 그러란 건 아니고. 나도 곧 취업 나갈 거니까. 그냥 형 보면, 나한테 꿈이 없는 게 참 다행스럽달까.” (81∼82쪽)


 최규석 님 만화책 《울기엔 좀 애매한》(사계절,2010)을 읽습니다. 책이름처럼 참말 울기에는 좀 어설픈 이야기를 다룹니다. 울기에 좀 어설픈 이야기는 만화로 담기에도 좀 어설프구나 싶습니다. 만화로 담기에도 좀 어설프구나 싶은 이야기는, 여느 글로 담든 사진으로 담든 더없이 어설플밖에 없기도 하겠습니다.

 만화를 그리려는 꿈을 안는 아이들이건, 만화를 가르치려는 일을 하는 어른들이건, 서로 어슷비슷합니다. 아이들이나 어른들이나 만화를 그리지 못합니다. 입시경쟁을 하고 돈벌이를 할 뿐입니다. 만화에 담을 넋이나 사랑을 살피지 못합니다. 만화로 빛내는 꿈이나 믿음을 나누지 못합니다.

 삶이란, 그저 눈물나는 하루입니다. 삶이란, 참말 웃음꽃 피어나는 나날입니다. 눈물과 웃음이 얼크러지면서 삶이 이루어집니다. 눈물과 웃음을 고루 버무리면서 삶을 일굽니다.

 곰곰이 돌아보면, 만화쟁이가 되려 하는 아이들이건 글쟁이가 되려 하는 아이들이건 사진쟁이가 되려 하는 아이들이건 다 비슷비슷하겠지요. 어디로 가야 좋을까를 찾지 못하는 채, 멀뚱멀뚱 대학바라기를 할밖에 없겠지요. 아이들을 낳아 함께 살아가는 어른들부터 꿈이 없어요. 아이들을 맡아 가르친다는 초·중·고등학교 교사부터 꿈이 없어요. 아이들이 늘 마주하는 이웃 어른들부터 꿈이 없어요.

 버스를 타고 지하철을 타는 어른들이, 서울 한복판에서 까만 양복 그럴듯하게 빼입으며 바삐 돌아다니는 어른들이, 까만 자가용을 모는 어른들이, 아니 어느 어른들한테서 아이들이 꿈을 느끼거나 만나거나 깨우칠 만한가요.

 아이들 잘못이 없다 할 수 없습니다만, 아이들 탓이라 내몰 수 없습니다. 꿈을 그리지 못한다면 만화가 될 수 없고, 사랑을 그리려 땀흘리지 못한다면 만화라는 이름이 붙지 않아요.


- “그러니까 말이야. 나처럼 똑똑한 사람도 대학에 가는 것 말고는 생각할 수가 없더라고. 다른 걸 볼 기회가 없었어. 대학에 가면 뭘 하는지도 몰랐지만 대학에 안 가면 어떻게 되는 건지 아무도 가르쳐 주질 않았어. 그냥 겁만 줘.” (129쪽)


 한국말로 옮기는 일본 만화가 무척 많습니다. 한국사람이 읽는 만화책 가운데 거의 모두 일본 만화라 해도 될 만큼, 일본 만화가 아주 많이 나옵니다. 이들 일본 만화는 한국말로 나오는 숫자와 부피도 많지만, 퍽 재미있기까지 합니다. 재미있는데다가 알차거나 아름답기까지 합니다.

 모든 일본 만화가 재미있거나 알차거나 아름답다고는 느끼지 않습니다. 그런데, 드문드문 태어나는 한국 만화 가운데 재미있거나 알차거나 아름답다고 느낄 만한 작품이 몹시 드물구나 싶어요. 짜임새 있거나 줄거리가 돋보이거나 그림이 놀라운 한국 만화는 좀처럼 찾아보지 못합니다.

 한국이라는 나라에서 태어나 살아가는 하루하루가 그닥 재미나지 못하기 때문일까요. 한국이라는 나라에서는 아름다운 일이 너무 적기 때문인가요. 한국에서는 참다운 솜씨나 재주를 북돋우지 않기 때문이려나요.

 일본이라서 재미난 나라라고 느끼지 않습니다. 일본이라서 아름다운 일이 많다고 느끼지 않습니다. 일본이라서 참다운 솜씨나 재주를 북돋운다고는 느끼지 않습니다.

 《울기엔 좀 애매한》을 덮고 나서 한숨을 쉽니다. 만화쟁이 스스로 그리 재미나다고 느끼지 못한 이녁 삶을 만화책으로 담자니, 재미나다고 느끼기에도 어설프고, 눈물나다고 하기에도 어설프며, 웃을 만하다고 하기에도 어설픕니다. 이래저래 어설픕니다. 그림도 어설프고 줄거리도 어설프며 이야기도 어설픕니다.

 어쩌면, 한국에서 태어나 살아가는 모든 목숨들은 ‘어설픈 길’로 내몰리니, 어설픈 만화 아니고는 못 그린다 할 테지요. 어설픈 학교, 어설픈 어버이, 어설픈 교사, 어설픈 대학교, 어설픈 정부, 어설픈 대기업, 어설픈 지하철, 어설픈 만화책 …….

 《공룡 둘리에 대한 슬픈 오마주》부터 최규석 님 만화를 찬찬히 돌아보면, 아직까지 최규석 님 만화에서 사랑을 느낄 수 없습니다. 남다르다 싶은 길을 걸으려 애쓰고, 만화로 빛줄기 하나 붙잡으며 돌보려고 힘쓴다고는 느끼지만, 막상 만화 하나에 사랑을 담으려는 손길은 느끼기 어렵습니다.

 김수정 님이 《아기 공룡 둘리》를 비롯해 《소금자 블루스》나 《1남4녀 막순이》나 《아리아리 동동》이나 《쩔그렁쩔그렁 요요》나 《일곱 개의 숟가락》이나 《홍실이》나 《오달자의 봄》 같은 모든 만화를 그리면서 담은 한 가지는 오직 사랑이었습니다. 다른 무엇이 아닌 사랑을 담고 사랑을 실어 사랑을 꽃피우려 했어요. 최규석 님은 김수정 님 만화에서 빛나는 사랑씨앗을 느끼지 못하면서 패러디만을 한다면, 아니 사랑씨앗 없이 패러디만을 했다면, 이러한 마음밭으로는 《울기엔 좀 애매한》 또한 최규석 님이 보낸 지난 한삶을 요모조모 되짚는 남다른 만화 작품 하나로 선보일 수는 있으나, 애틋하게 웃고 울며 떠들 만한 살가운 이야기보따리로는 뿌리내릴 수 없습니다. 글쟁이가 왜 사랑을 글로 쓰고, 사진쟁이가 왜 사랑을 사진으로 담으며, 만화쟁이가 왜 사랑을 만화로 빛내는가를 두 손과 두 다리로 느끼면서 만화길을 걸어가면 고맙겠습니다. (4344.12.4.해.ㅎㄲㅅㄱ)


― 울기엔 좀 애매한 (최규석 글·그림,사계절 펴냄,2010.8.5./13800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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