눈코입 담은 그림
네 살 첫째 아이 그림에 처음으로 ‘눈코입 담은 얼굴’이 나타납니다. 아이는 제 얼굴이랑 동생 얼굴이랑 어머니 얼굴이랑 아버지 얼굴을 그립니다. 아이가 바라보며 느끼는 삶결 그대로 그림에 담습니다.
누가 시킨들 그림을 그리지 않습니다. 누가 느끼라 한들 느낄 수 없습니다. 아이가 느끼는 결 그대로 아이가 그리고 싶을 때에 그립니다. 아이한테 아버지인 나는 아이가 무엇을 보고 느끼며 살아가도록 길을 천천히 열면서 나란히 손을 잡는 길동무인가 헤아려 봅니다. 나다운 삶, 아버지다운 삶, 사람다운 삶, 목숨다운 삶, 곰곰이 돌이킵니다.
아이가 담은 그림 아래쪽에 날짜를 적습니다. 아이가 앞으로 스무 살이 되어 이 그림을 본다면, 서른 살이나 마흔 살이 되어 아이 어린 나날 그림을 본다면, 아이가 어버이 되어 제 아이를 낳고 제 아이랑 함께 이 그림을 본다면, 그때에 어떤 이야기꽃을 피울 수 있을까요. (4344.12.2.쇠.ㅎㄲㅅㄱ)