시골신문 책읽기
지난 월요일 면사무소 다녀오는 길에 면사무소 일꾼한테 한 마디 여쭈었다. ‘이면지 상자’에 담긴 철지난 신문 가져가도 되느냐고. 얼마든지 가져가서 보시라 하기에, 전라남도에서 나오는 일간지와 주간지에다가 농어민신문까지 열 몇 가지를 챙긴다. 집으로 돌아와 하나씩 펼친다. 한두 가지 지역신문은 이름을 들었으나 다른 열 가지에 이르는 신문은 이름을 처음 듣는다. 인천에서 살던 때에도 ‘나고 자란 인천’이라지만 이름 낯선 지역신문이 제법 많았다. 충청북도 음성 멧골집에서 지내던 지난 한 해에도 이름이 도무지 가까워지지 못한 지역신문이 참 많았다. 그렇다고 이들 지역신문에 광고라도 많이 실리지 않는다. 참말 누가 이 지역신문을 읽을까.
30분이 채 안 되어 지역신문을 다 넘긴다. 넘기기는 하지만 읽을 만한 글이 눈에 뜨이지 않는다. 문득 깨닫는다. 광고 얼마 없는 지역신문이기는 한데, 마치 ‘관보’와 같다는 느낌이다. 그렇구나. 이렇게 지역 군·읍·면 행사와 소식은 빼곡하게 실으니까, 지역 군청·읍사무소·면사무소에서는 신문값 내면서 받겠구나. 그렇지만 정작 면사무소에서조차 겉봉투를 안 뜯은 채 이면지 상자에 차곡차곡 쌓겠구나. 시골 면에까지 헌 종이 모으러 다니는 사람이 있을까 궁금한데, 그야말로 ‘읽으라’ 하는 신문이 아니라 ‘돈을 버는 구멍을 찾으려’ 하는 신문이구나.
그나마 농어민신문은 조금 읽을거리가 보인다. 농민신문은 조금 찬찬히 읽는다. 이 두 가지 신문에는 한미자유무역협정과 얽혀 시골마을에 어떤 피해가 오는가를 표를 그려 밝혀 준다. 곡식과 푸성귀와 뭍고기와 물고기와 얽혀 한미자유무역협정을 맺으면 시골마을은 어떻게 되는가를 어림할 수 있는 자료가 실린다.
문득 궁금하지만 애써 찾아볼 마음은 없다. 서울에서 나오는 중앙일간지에는 한미자유무역협정과 얽혀 어떤 글이 실릴까. 자동차라든지 공산품을 미국에 더 많이 팔아 나라살림 북돋울 수 있다는 글이 실릴까. 시골마을 사람들 삶이 어떻게 되는가를 낱낱이 파헤치거나 살피는 글이 실릴까. 서울이나 크고작은 도시에서 살아가는 사람들은 중앙일간지라는 신문을 읽으면서 한미자유무역협정이 참말 이 나라에 어떻게 파고들거나 이 나라 삶자락을 어느 만큼 뒤집는가를 헤아릴 수 있는가.
지난 한 주, 우리 시골마을 면사무소 일꾼들 책상맡에 인문책이 잔뜩 놓였다. 갑작스레 무슨 일인가 궁금했는데, 면사무소 일꾼 가운데 어느 분이 ‘창고 갈무리를 하다가 몇 해 앞서 문화부에서 받은 우수교양도서를 꺼내어 올려놓았다’고 한다. 곧, 서울(중앙 행정기관)에서 뽑은 우수교양도서가 시골마을 면사무소로 들어올 때에 어떻게 되는가를 보여주는 셈이다. 서울(중앙)에서는 온 나라에 문화와 복지와 예술을 퍼뜨린다(보급)고 하면서 목돈 들여 우수교양도서를 뽑아 장만해서 이렇게 두루 보낼 텐데, 책을 둘 자리부터 없고, 책을 읽을 사람 또한 없다. 사람은 나면 서울로 보내도록 하는 나라정책이요 나라살림인데, 우수교양도서를 뽑아 장만해서 시골로 보낸들 누가 읽을 수 있을까. 그냥 서울에서 책 신나게 만들고, 그냥 서울과 큰도시 학교로 책을 보내며, 그냥 서울과 큰도시에 도서관 수십 군데 더 짓는 일이 낫겠다. (4344.12.1.나무.ㅎㄲㅅㄱ)