방랑 소년 10
시무라 타카코 지음 / 학산문화사(만화) / 2011년 9월
평점 :
절판




 따뜻한 꿈을 보살피며 살아갑니다
 [만화책 즐겨읽기 87] 시무라 타카코, 《방랑소년 (10)》



 얼마 앞서 면내에 자전거를 타고 다녀오면서 온도계 하나 장만했습니다. 집 바깥벽에 걸 온도계입니다. 온도계를 둘 더 장만해서 그늘진 바깥벽이랑 집안 온도를 함께 따지며 적으면 어떨까 하고 헤아립니다. 날씨를 알리는 방송이나 소식하고 우리 살림집 온도는 다르거든요.

 요 며칠 날이 포근합니다. 다른 곳도 날이 포근하다 하는데, 다른 곳은 얼마나 포근한지 잘 모르겠습니다. 우리 살림집 온도를 본다면, 밤에는 14도였습니다. 아침에 동이 틀 무렵 17도쯤 되더니, 해가 멧마루로 올라서는 아홉 시 반 무렵에는 22도입니다.

 다른 곳에서는 영 도 밑으로 한참 내려가던 날, 우리 집 바깥은 4도였어요. 집안은 보일러를 돌리지 않아도 17도가 이어졌고, 한밤에 16도인 적이 있습니다. 남녘이라 따뜻하구나 싶으면서, 날이 또 포근하니까 좀 사라진다 싶던 파리가 다시 살아납니다.

 마을 어르신들 모두 흙을 일구는 시골마을에서 우리 집만 보일러를 ‘자주’ 돌린다고 느낍니다. 우리 집은 아이들을 씻겨야 하니 보일러를 ‘자주’ 돌립니다. 지난 한 달 사이 보일러 기름을 얼마나 썼나 살피니 100리터를 썼습니다. 앞으로 십이월과 일월에 기름을 얼마나 쓰나 모르겠는데, 이대로 간다면 가을겨울에는 다달이 백 리터를 쓰는 꼴이 될 수 있구나 싶어요. 올여름까지 살던 충청북도 음성 멧골집에서는 가을겨울에 다달이 삼백 리터 기름을 썼어요.

 우리가 깊이 잠든 때에만 이웃집에서 보일러를 돌리는지 모르지만, 이웃집에서 보일러 돌리는 소리는 좀처럼 못 듣습니다. 밤과 새벽에 쉬를 누러 바깥으로 나오면서 아직 한 번도 보일러 소리를 못 들었어요. 어쩌면 전기장판을 쓰시며 기름을 아끼느라 보일러 소리를 못 듣는달 수 있겠지요.

 포근한 터전에서 처음 살아가면서 날씨를 곰곰이 헤아립니다. 나는 이제껏 가을겨울 포근한 데에서 살았던 적이 없습니다. 십이월이 코앞이지만, 나는 전라남도 고흥 시골마을에서 반바지와 반소매를 입습니다. 한낮에는 땀을 흘립니다. 아직 기름보일러를 쓰지만, 밑돈을 마련하면 우리 살림집에 햇볕판을 달아 햇볕힘으로 물을 끓여 따순 물을 쓰고 싶어요.


- “그거 벗어 봐, 가발. 머리를 기르면 좋을 텐데.” “나도 사실은 기르고 싶어.” “보브 컷 정도는 괜찮지 않을까? 이그! 넌 왜 여자로 태어나지 않은 거야?” (11∼13쪽)


 날이 포근하니까 저녁에 둘째 오줌기저귀를 찬물로 빨고 헹구어도 손이 시리지 않습니다. 외려 시원하다고 느낍니다. 포근한 날씨는 하늘이 내리는 더할 나위 없는 선물이라고 새삼스레 느낍니다. 매서운 날씨 또한 하늘이 내리는 더없이 고마운 선물이에요. 추위를 느끼면서 내 몸과 내 살붙이 몸과 내 이웃 몸을 돌아보거든요.

 포근한 날씨를 누리면서 우리 이웃집 할머니 할아버지 삶을 헤아립니다. 벌써 나흘째, 우리 집 돌울과 맞닿은 마늘밭에 비닐을 씌우는 두 어르신은 허리가 아주 꺾인 모습으로 밭을 돌봅니다. 두 어르신은 이렇게 온삶을 바쳐 일하며 아이들을 사랑했을 테고 아이들을 가르쳤을 테며 아이들을 서울로 보냈겠지요. 두 어르신네 아이들은 서울에서 ‘엄마 아빠가 돌본 마늘’을 받겠지요. ‘엄마 아빠가 시골에서 돌본 마늘’을 어떤 마음으로 먹을까요.

 어제 새벽 이장님이 마을 방송을 합니다. 마을 방송은 으레 새벽 여섯 시나 여섯 시 반에 합니다. 시골에서 새벽 여섯 시는 모두들 논일 밭일 들일을 한창 하는 때예요. 가만히 귀를 기울여 마을 방송을 듣자니, 풍양면 농협에서 쌀을 사들이는 값을 읽어 주시는데, 80킬로그램 한 가마에 나락 품종에 따라 사만이천 원부터 사만칠천 원까지 한답니다. 무농약 친환경으로 키운 품종은 오만이천 원에서 육만칠천 원까지 한답니다. 그런데 농협에서 사들이는 품종은 일반쌀 세 가지, 무농약 친환경 쌀 두 가지뿐입니다. 농협에서 판 볍씨로 심어 거둔 품종이 아니면 농협에 쌀을 팔 수 없는 듯합니다. 마을 어르신께 여쭈니, 농협에서 파는 볍씨는 세 해를 심지 못한다고 합니다. 첫 해 거둔 볍씨를 갈무리해서 이듬해에 한 번 더 심을 수 있으나, 이듬해에 거둔 볍씨를 갈무리해서 다시 심으면 벼가 잘 안 되고 병이 들거나 작다고 해요. 그래서 다들 해마다 볍씨를 새로 사서 심는답니다.

 궁금한 나머지 충청남도 홍성 풀무학교생협에 전화를 걸어 여쭙니다. 우리는 풀무학교생협 단골논을 여러 해 하면서 쌀을 받거든요. 풀무학교에서는 풀무학교에서 심어 거둔 볍씨를 갈무리해서 그대로 심는다는군요. 어느 품종인지 미처 여쭈지 못했으니 다음에 여쭐 텐데, 풀무학교는 농협에 팔지 않고 몸소 사람들하고 고리를 이으니까, 유전자 건드린 품종을 굳이 안 쓰리라 생각합니다.


- “남자 중에도 그런 사람 있잖아. 요시노는 남자로 오해받기 위해 남자 옷을 입어? 그렇다면 그건 단순한 변장이네.” “넌 말을 그런 식으로밖에 못하겠니?” “솔직히 말하라면서? 예전에는 훨씬 당당했어. 입고 싶은 옷을 입는 것 같아서 근사했는데. 지금은 여자로 있는 게 싫을 뿐인 것 같아.” (42∼43쪽)


 농약과 비료를 안 치는 쌀을 거둔다 할 때에, 이 쌀을 볍씨로 갈무리해서 이듬해에 다시 쓰는 일만 헤아렸지, 이 볍씨를 이듬해나 이 다음해에 못 쓰리라 생각한 적이 없습니다. 여태껏 이런 일은 한 번도 생각하지 못했어요. 그러니까, 나라(정부, 농협)에서 밝히는 ‘친환경 무농약’ 쌀이라 하더라도 농약과 비료를 안 쓰고 애써 거두기는 했지만, 볍씨 품종은 ‘유전자를 건드린 쌀알’입니다. 유전자를 건드린 볍씨 품종이라면 ‘구태여 농약과 비료를 안 써서 거둘’ 까닭이 있을까 궁금합니다.

 옆지기가 이야기할 때에 제대로 대꾸하지 못하던 생각 하나 떠오릅니다. 옆지기가 이야기하는 소리를 들으며 나로서는 곰곰이 생각하지 못하던 일이라 마냥 듣기만 했어요. 옆지기는 ‘나 스스로 심어서 거두지 않으면서, 유기농 곡식을 사다 먹는 일이, 참으로 내 몸을 살찌우는가?’ 하고 물었습니다.


- “무시하는 거라면 두 번 다시 입지 않을 거야.” (90쪽)


 시무라 다카코 님 만화책 《방랑소년》(학산문화사,2011) 10권째 읽습니다. 1권에서 10권으로 오는 동안 만화책에 나오는 사람들 숫자가 부쩍 늡니다. 띄엄띄엄 읽는다면 뒷권으로 갈수록 늘어나는 사람들 이름이 헷갈릴 만하구나 싶어요. 여러 달에 한 권 옮겨지니까, 꼬박꼬박 챙겨 읽으면서도 이름이 자꾸 헷갈립니다. 앞 이야기도 좀 헷갈려요.

 1권부터 9권까지 어떤 줄거리로 흘렀는가를 가만히 헤아립니다. 《방랑소년》에 나오는 아이들은 처음에는 초등학생이었고, 이제는 중학생입니다. 머잖아 고등학생이 될 테지요. 그리고, 《방랑소년》 앞권에 나온 ‘내 뿌리와 줏대대로 살아가는 어른’들처럼, 이 《방랑소년》 아이들도 저희 삶길을 찾아서 씩씩하게 걸어가겠지요.


- “음, 그러니까, 난 남자친구를 사귀는 게 처음이었잖아. 처음이었어.” “그건, 나도야.” “그래서 슈이치한테서 고백받았을 때 기뻤어. 난 여태 고백받아 본 적이 없거든.” “안나가? 그렇게 귀여운데?” “그, 그런 소리를 잘도 한다! 난 항상 사람들이 무서워한다고 할까.” (195∼196쪽)


 《방랑소년》 아이들은 아직 헤맵니다. 헤맬 수밖에 없다 할는지 모르나, 이 《방랑소년》 아이들은 부딪히고 깨지고 울고 웃고 싸우고 마음을 풀면서 천천히 자랍니다. 천천히 꿈을 꿉니다. 천천히 제 삶을 사랑합니다. 천천히 맞서고, 천천히 어깨동무하며, 천천히 얽히다가, 천천히 두 팔을 벌립니다.

 갠 날이 있기에 흐린 날이 있어요. 궂은 날이 있으니 맑은 날이 있어요. 따순 날에 이어 추운 날입니다. 추운 날을 씻는 따순 날이에요.

 씨앗은 난로로 덥힐 수 없습니다. 씨앗은 오직 씨앗이 깃든 흙 품에서 햇살과 바람과 물과 짐승과 푸나무 주검이 삭은 거름 기운으로 살아갑니다. 따스한 흙 품에서 따스한 기운 받아들이는 씨앗으로 뿌리를 내려요.

 비닐집에서 푸성귀를 키우면 아주 추운 겨울에도 푸성귀를 먹겠지요. 맨땅에서 푸성귀를 키우면 한겨울에는 푸성귀를 맛보기 힘들겠지요. 그러나, 날이 포근한 데에서는 비닐집이 없어도 맨땅에서 푸성귀를 얻어요. 날이 추운 데라면 한겨울에는 ‘포근하던 가을까지 갈무리해서 말린 푸성귀’를 끓여서 먹어요.

 날에 따라, 곳에 따라, 철에 따라, 터에 따라, 사람들 살아가는 매무새는 저마다 다릅니다. 시래기를 만들어야 하는 곳에서는 시래기국이 맛납니다. 무를 흙에 박고서 어느 때이든 파서 먹을 수 있는 곳에서는 무국이 맛납니다.

 《방랑소년》 아이들은 제 삶길을 제 결대로 찾으려고 애씁니다. 눈치를 보는 삶길이 아니에요. 남들 뒤꽁무니를 좇는 삶길이 아니에요. 돈을 더 벌거나 이름값 더 누리려는 삶길이 아니에요. 저마다 가장 사랑하면서 아낄 삶길을 찾아요. 저마다 더없이 좋아하면서 보듬을 삶길을 살펴요.

 따뜻한 곳에서 따뜻한 마음으로 살아갑니다. 추운 곳에서 따뜻한 꿈을 보살피며 살아갑니다. (4344.11.28.달.ㅎㄲㅅㄱ)


― 방랑소년 10 (시무라 타카코 글·그림,설은미 옮김,학산문화사 펴냄,2011.9.25./4200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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