기름과 글쓰기
인천에서 옆지기와 만나 함께 살아가면서 옆지기가 “시골에서 살자.” 하고 이야기했을 때에 “우리가 갈 만한 시골은 없으리라.” 하고만 대꾸했다. 막상 우리가 예쁘게 살아갈 시골을 찾아볼 엄두를 내지 않았다. 여러 해에 걸쳐 옆지기한테서 말을 듣고 내 발자국을 더듬어 본다. “우리가 갈 만한 시골이 없다”기보다 “우리가 살아갈 시골을 생각하지 않고 바라지 않으며 꿈꾸지 않으니 느끼거나 찾거나 알지 못했을” 뿐이라고 깨닫는다.
지난여름 인천을 떠나 충청도 멧골자락으로 옮기면서 “시골에서는 기름을 쓸 수밖에 없어요. 기름으로 불을 때야 해요.” 하는 말밖에 못했다. 그렇지만, 참말 기름을 비싼값 치러 장만한 다음 방에 넣을 불로 때야 할까. 나무를 해서 방바닥에 불을 넣을 수는 없는가. 기름도 나무도 아닌 다른 땔감을 마련하거나 찾을 수는 없는가. 나 스스로 생각하고 바라며 꿈꾼다면 틀림없이 찾으리라. 나부터 더 좋아하면서 파고든다면 모를 수 없고 못 찾을 수 없으리라.
나와 옆지기와 두 아이가 예쁘게 살아갈 보금자리가 되도록 일구자고 생각하고 바라며 꿈꾼다면, 나는 참말 이 집 살림꾼이 될 수 있다. 그러나, 나는 참 아직 멀고 모자라다. 그러니까, 어떻게 살아야 좋을까 하는 대목을 옳게 느끼거나 헤아리거나 살피지 못한다.
밥찌꺼기 그러모아 쏟은 자리를 이레 만인가 겨우 땅을 파서 흙으로 덮는다. 왜 나는 처음부터 구덩이를 파서 묻을 생각을 하지 않았는가. 아니, 생각조차 없었고, 스스로 무언지 모를 일에 쫓기듯 애먼 데에 바쁘며 엉뚱하게 힘을 쏟았겠지. 오늘 하루 할 일을 곰곰이 생각하면서 잠들어야 한다. 이듬날 하루 할 일을 가만히 꿈꾸면서 잠들어야 한다. 아침에 일어나서 집식구랑 하루 동안 어떤 삶을 누릴까 하는 이야기를 조곤조곤 나누어야 한다. 이제부터 천천히 걷자. 물골내기와 울쌓기를 돌아보자. 도서관 책들 곰팡이 먹지 않는 길을 헤아리자. 집에서 스스로 책꽂이를 짜든 누군가한테 맡겨서 짜든, 그저 책을 때려꽂는 책꽂이가 아니라, 우리 아이들이 기쁘게 누릴 만한 책꽂이가 되도록 생각하자. 집에 들일 옷장은 어떤 크기 어떤 나무일 때에 오래오래 사랑할 만한가를 살피자. 부엌에 놓을 부엌상은 어떤 크기 어떤 길이 어떤 높이로 마련하면 좋을까를 가늠하자. 아이가 아침에 깨어나 저녁에 잠들 때까지 함께 무슨 놀이를 누리면서 지낼까를 곱씹자. 글쓰기로 살아가려 하는 나라면, 나는 어떤 글을 내 기쁨과 웃음을 담아 내 삶을 빛내는 길을 걸으려 하는가를 참말 똑똑히 다스리자. (4344.11.21.달.ㅎㄲㅅㄱ)