동생 안는 아이와 책읽기
옆지기와 나는 처음 혼인을 하던 때부터 이제껏 따로 떨어져 지낸 나날이 손가락으로 꼽을 만큼 몹시 적다. 내가 혼자 살아가던 날에는 내 나름대로 혼자 헌책방마실을 하면서 내 삶을 다스리는 길을 익혔고, 둘이 살아가던 날부터는 내 어수룩한 삶틀을 하나하나 깨면서 옆지기 말을 받아들이며 배운다. 따로 어떤 회사에 몸담을 생각이 없던 나인 만큼, 앞으로 살아갈 날을 헤아릴 때에 내 아름다운 나날을 내 삶을 살찌우는 길을 걷고 싶다. 돈을 더 벌어 내 꿈이나 뜻을 이룰 만한 책을 널리 펴내는 돈을 마련할 수 있겠지만, 돈을 적게 벌면서 내 꿈이나 뜻을 내 삶에서 이루며 천천히 쓴 글로 조그맣게 여밀 수 있다. 무엇보다 굳이 책으로 여미지 않더라도 날마다 즐거이 누리는 이야기를 빚을 수 있다.
첫째 아이를 낳고부터 집에서 보내는 겨를이 훨씬 늘어난다. 여섯 달 남짓 한글학회에서 일하며 새벽에 집을 나서서 저녁에 집으로 돌아오곤 했다만, 돈벌이로 삶을 바꾸었기 때문이 아니다. 옆지기 어머님이랑 옆지기 어린 동생이랑 함께 살 집을 얻어 지내려 했기에, 이렇게 하면 옆지기랑 아이랑 집에서 함께 지낼 수 있고, 이렇게 하자니 인천에서는 달삯을 제법 치르는 집을 얻어야 했다. 옆지기 어머님하고 옆지기 어린 동생이 오지 않는 바람에 우리 식구는 아침저녁으로 힘들게 만나는 여섯 달 남짓을 보내야 했는데, 이런 나날을 보낸 다음에는 두 번 다시 식구들이 떨어서 지내야 하는 일을 하면 안 되겠다고 깊이 깨달았다. 돈을 번다며 식구들이 뿔뿔이 흩어져서 하루를 거의 다 보내고 나서, 지친 몸으로 겨우 얼굴을 본다면, 이때에 무슨 이야기와 무슨 사랑과 무슨 꿈이 피어날 만할까. 날마다 새롭게 자라는 아이 모습을 바라보지 못할 뿐 아니라, 날마다 새로이 무르익는 옆지기 삶을 헤아리지 못한다면, 돈을 조금 쥔다 한들 어떤 보람이 있을까.
아버지랑 어머니가 늘 함께 지내듯, 첫째 아이는 동생이랑 노상 함께 지낸다. 아직 여섯 달짜리 갓난쟁이인 터라 첫째 아이 놀이동무가 되기 힘들지만, 한 해만 지나도 좋은 놀이동무가 될 테고, 두 해가 지나면 살가운 놀이벗이 되겠지. 시골마을에서 서로 돕고 아끼는 좋은 삶지기가 되리라.
네 살 아이가 한 살 아이를 껴안고 논다. 첫째 아이가 아버지 등을 타고 놀고 난 뒤에 가끔 한 살 아이를 첫째 아이 등에 업혀 본다. 너도 아버지 등에 업혔으면 동생도 업어 봐, 동생은 못 업으면서 아버지한테 업히려고만 하지 마.
첫째 아이가 유아원이나 유치원이나 어린이집 같은 데를 다닌다면 무엇을 배울까. 이 아이는 유아원이나 유치원이나 어린이집 같은 데에서 어떤 동무를 사귀고 어떤 말을 익히며 어떤 이야기를 나눌까.
어버이로서 내가 아이한테 따사로우며 좋은 말을 물려준다고는 느끼지 못한다. 조금 더 사랑스레 다가서지 못하고, 한결 너그러이 감싸지 못한다고 느낀다. 나부터 새로 배우며 살아갈 사람이니 어쩔 수 없는 노릇은 아니다. 나부터 이 삶을 예쁘게 즐기면서 곱게 사랑할 때에 아이는 시나브로 따사로우며 좋은 말로 따사로우며 좋은 넋을 북돋우리라.
사랑스레 껴안아야지. 싱그럽게 어루만져야지. 해맑게 보살펴야지. 내 삶이고 네 삶이며 우리 삶인걸. 내 집이고 네 집이며 우리 집인걸. 내 보금자리이고 네 보금자리이며 우리 보금자리인걸. 아침까지 새근새근 잠들고, 아침에 일어나면 동생이랑 어머니 아버지랑 또 즐겁게 뛰놀자. 차갑게 바뀌는 바람 시원하게 맞으면서 파란 빛깔 하늘과 볼그스름 물드는 멧자락을 얼싸안자. (4344.11.21.달.ㅎㄲㅅㄱ)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