알라딘서재 hnine 님이 '이오덕-권정생 편지책' 뒷이야기를 궁금해 하시기에, 이제 이 글을 걸칩니다. 벌써 여덟 해나 지난 일이지만, 여태껏 그닥 달라지거나 나아진 대목은 하나도 없기에 예전 글을 걸쳐 봅니다. 2003년에 알라딘서재 게시판에는 이 글을 안 올렸군요. (그때에 알라딘서재가 있었나 잘 모르겠습니다) 2003년에 쓴 글이라서, 이 글을 다시 살피니 '올바르지 않은 말법과 말투'가 곳곳에 부여 부끄럽네요 ㅠ.ㅜ 

아무튼 글이 퍽 길고 여럿이며, 이 글은 <오마이뉴스>에 공식으로 올림 기사입니다. 이 기사를 바탕으로 모든 중앙일간지에 후속보도가 이루어졌고, 이 기사가 나간 지 일주일이나 지나서야 비로소 '출고정지'와 '일시품절'을 해서 책이 더 팔리지는 않았으나, 실제로는 1800권쯤 팔린 줄 압니다. 남은 책은 이오덕 선생님 유족한테 책을 돌려주었습니다.



 한길사는 이오덕·권정생 선생님 앞에 사죄해야
 [책읽기가 즐겁다 39] 허락도 없이, 출판계약서도 없이 책을 낸 한길사



 <1>

 지난 2003년 11월 5일 새로운 책이 하나 세상에 나왔습니다. 책은 차근차근 서점에 진열이 되었고 독자들도 한 사람 두 사람 책을 사 보았습니다. 출판사에서는 신문 광고도 냈고, 보도자료도 돌려서 신문사 문화부 기자들은 그 보도자료를 보며 앞다퉈 기사를 썼습니다.

 새로 나온 책은 <살구꽃 봉오리를 보면 눈물이 납니다>라는 책입니다. 이 책은 어린이문학과 교육을 살리고자 온몸을 바친 두 분이 주고받은 편지를 묶은 책입니다. 먼저 한 분은 지난 8월 25일에 돌아가신 이오덕 선생님. 다른 한 분은 이오덕 선생님에게는 둘도 없는 벗인 권정생 선생님입니다.

 이오덕 선생님은 살아 계실 적에도 권정생 선생님과 주고받은 편지를 세상에 내놓아 알리고픈 마음을 품었습니다. 권정생 선생님처럼 깨끗하면서도 착하고 아름답게 살아가는 사람들 삶을 널리 알려 이 땅에서 살아가는 사람들에게 좋은 본보기와 가르침이 되리라는 믿음이 있었거든요.

 하지만 그런 마음을 `생각'으로만 품었지 `실천'으로 옮겨 책으로 펴내지는 않았습니다. 책으로 내기에는 어려운 대목이 많아서입니다. 가난하고 힘겹고 아픈 몸으로 죽음과 몇 번이나 싸우면서 겨우겨우 살아가는 권정생 선생님입니다. 그래서 어떻게 보면 `비참하고 동정이 가는 불쌍한' 모습이 그 편지에 고스란히 담겨 있거든요.

 더구나 세상에 아직 알려지면 안 되는 당신의 지난 삶 이야기가 편지에 들어 있습니다. 그래서 이오덕 선생님도 좋은 뜻만 품었을 뿐 책으로 내는 일은 돌아가시는 날까지도 `허락'은 하지 않은 채였습니다. 다만, 언제라도 권정생 선생님이 "책으로 내도 좋겠어요" 하고 말을 하면 책으로 내도록 `준비'만은 해서 편지를 `한길사'라는 출판사에 맡겨 한번 검토하라고 했을 뿐입니다.


 <2>

 그러는 가운데 이오덕 선생님이 돌아가셨습니다. 이오덕 선생님은 편지가 세상에 공개되는 걸 바라지 않았으나 한길사 김언호 사장은 그 편지 가운데 몇 편을, 이오덕 선생을 기리는 방송에서 공개했습니다. 물론 유족과 권정생 선생님에게 허락을 받지 않은 채였습니다.

 사실 책으로 나온 과정도 문제이지만 여기서도 큰 문제입니다. `한길사'에는 두 분이 주고받은 편지를 `보관'할 권리는 있었지만 `공개'할 권리는 없습니다.

 이오덕 선생님이 돌아가신 뒤 한 달 반쯤 지난 어느 날입니다. 한길사 편집부에서 이오덕 선생님 유족이 사는 충주로 내려와 `이오덕 선생님이 살아계실 때 이러한 책을 내려고 했다'면서 이오덕 선생님과 권정생 선생님이 주고받은 `편지봉투'를 빌려달라고 했답니다.

 하지만 유족은 이오덕 선생님 유언에 그런 책을 내라는 이야기가 없었다며 `편지 내용을 검토해 보고, 이미 (방송에) 공개가 되었으니 할 수 없이 내야 한다면 내겠다'고 일단 한길사 편집부 직원을 돌려보냈다고 합니다.

 하지만 한길사는 원고를 유족에게 보내주지 않았고 더구나 편지봉투 몇 장을 빌려간 뒤로는 아직까지 돌려주지 않고 있다고 합니다. 그러다가 덜컥 책이 나온 것이죠.

 며칠 뒤 이오덕 선생님 방 한쪽 구석에서 `한길사에서 지난날 가제본으로 찍은 편지 원고 사본'을 우연하게 찾아내서 살펴본 유족은, '아무래도 내서는 안 되겠고, 낼 수도 없다'고 생각해 권정생 선생님에게 전화를 드려 "책을 낼 수 없겠다"고 말씀을 드렸고, 권정생 선생님은 그때 "내(권정생)가 죽은 뒤 ◎◎년 뒤에 내면 모르"지만 "그때까지는 내지 말아라"고 말했다 합니다.


 <3>

 그 뒤 11월 10일 이오덕 선생님 유족은 어느 독자로부터 책이 나왔다는 연락을 받고 한길사로 확인했습니다. 이에 한길사 김언호 사장은 유족에게 직접 전화를 걸어 '좋은 책 내는데 무슨 문제가 있느냐'며 '이오덕 선생님이 살아 계실 때 이미 허락을 했다'고 말했다고 합니다.

 그러나 여기에서 문제가 있습니다. "출판을 허락"했다면 틀림없이 `출판계약서'를 씁니다. 하지만 이오덕 선생님이나 권정생 선생님은 유언이든 전화로든 `허락'을 하지 않았으며 `출판계약서' 한 장 쓰지 않았습니다. `출판계약서'를 쓰지 않고서 `허락을 했다'는 말만으로 책을 낼 수가 있을까요?

 기자는 이 대목에서 참과 거짓을 가리고자 한길사 편집부 강옥순 주간과 전화통화를 했고, 이오덕 선생님 유족이 사는 충주에 내려가서 서류와 사실 관계를 알아보았습니다. 비록 간접이지만 이오덕 선생님 아드님인 이정우님 곁에서 권정생 선생님과 전화통화 하는 내용을 옆에서 직접 듣기도 했습니다.

 기자는 한길사에 "출판계약서를 쓰지 않은 까닭"이 무엇인지 물었습니다. 한길사에서는 "이오덕 선생님은 예전에도 한길사에서 책을 내실 때는 출판계약서를 쓰지 않았다"며 "구두로만 계약을 한 뒤 인세가 발생하면 이를 정산해서 지급해 드렸"고, 이렇게 하면 "이오덕 선생님이 받아들였다"고 했습니다.

 하지만 유족은 "아버님(이오덕 선생님)은 아주 꼼꼼하신 분"이라면서 "당신이 전화통화를 누구하고 하고 무슨 말을 했는가까지도 수첩이나 일기에 적는 분"이고 "글 하나를 선집에 실을 때도 출판동의서를 받는 분"이라고 했습니다.

 기자도 실제 이오덕 선생님 유고 뭉치에서 `출판계약서'와 `출판동의서' 뭉치를 보았으며, 그 출판계약서 가운데에는 한길사 것도 있었습니다.

 한길사에서는 1997~1998년 사이에 이오덕 선생님이 편지모음을 책으로 내는 일을 `허락'했다고 말했습니다. 하지만 이오덕 선생님은 2003년 8월까지도 `완전동의'를 하지 않았기에 책이 나올 수 없었습니다.

 이오덕 선생님은 `한길사 출판'을 `완전동의'하지 않았기 때문에 편지 원고는 한길사로 보내 `책을 낼 준비는 해 두라'고 했겠지만 `편지봉투'는 한길사 쪽에 주지 않았던 것입니다.

 이오덕 선생님 책 관련 저작권과 사용권은 아드님인 이정우님에게 정식 승계되어 있습니다. 그렇기에 비록 이오덕 선생님이 `구두로 허락'을 했다고는 하지만 `출판계약서'나 `출판동의서'가 없는 상태에서 책을 내는 일은 문제가 있습니다.

 한길사에서는 "(아드님이 아닌) 제3자에게 이오덕 선생님이 출판권을 일임했다"고 말했고 그 분의 허락을 받았다고 했지만 그 내역을 알아보니 `일임'이 아니라 `고문 상담'이었습니다.


 <4>

 한길사 김언호 사장은 11월 12일 충주로 내려와서 이오덕 선생님 유족을 만납니다. 내려오기 앞서 펴낸 책을 `판매중지'를 시키겠다고 했습니다. 하지만 14일까지도 판매중지는 이루어지지 않습니다. 더구나 이미 낸 책과 관련된 `출판계약서' 한 장도 가지고 오지 않았습니다.

 한길사에서는 모두 3000권을 찍었고 이중 1200권이 시중에 깔렸다고 밝혔습니다. 하지만 시중에 깔린 책에 대한 판매중지는 이뤄지지 않았고 현재 이 책은 서점에서 계속 판매되고 있습니다.

 상황을 알아보고자 11월 15일 토요일에는 교보문고를 찾아갔고, 다른 도매상과 소매상에서는 책이 어떻게 되어 있는지 확인했습니다. 또 17일 아침에 교보문고 북마스터에게 전화를 걸어 출고 상황과 출고 문제를 확인했습니다.

 결과는 "출판사로 주문하면 책이 들어올 수도 있다"입니다. 다른 도매상에는 아직 재고가 있기에 그곳에서 받아서 팔 수도 있는 상황입니다. 여러 가지 정황과 형편을 헤아려 본다면 한길사에서는 `판매중지'를 하지 않았고 `출고정지'만 시켰을 뿐입니다.

 이와 관련 한길사 강옥순 주간은 14일 <오마이뉴스> 편집부와의 통화에서 "이미 서점에 깔린 책은 (현실적으로) 어떻게 할 수 없지 않느냐. 다만 (유족과 권정생 선생의) 허락을 받기 전까지는 더 이상의 책은 출고하지 않기로 했다"고 밝혔습니다.

 하지만 권정생 선생과 유족쪽은 "독자에게 팔린 책 한 권까지도 카드 결재를 하나하나 확인해서 모두 회수해서 유족이 수긍할 수 있는 상황과 근거 아래 폐기처분하라"고 말하고 있습니다. 출판사쪽에서는 실질로는 `출고정지'만을 한 상태이며, 도소매상에 `판매 중단' 통지문만 보내도 시중에 깔린 1200권이 더는 팔리지 않도록 막을 수 있었습니다. 하지만 그 일을 안 한 것으로 확인했습니다.


 <5>

 지난 11월 12일, 한길사 김언호 사장은 충주를 거쳐 안동에 있는 권정생 선생님을 찾아갑니다. 한길사 김언호 사장은 안동에 가서 `권정생 선생님과 웃는 얼굴로 이야기'했다며 `책을 내는 일을 긍정적으로 받아들이시더라' 하는 이야기를 서울로 올라가는 차 안에서 이오덕 선생님 유족에게 이야기했다고 합니다.

 이에 유족은 곧바로 권정생 선생님에게 전화를 걸어 "출판 허락을 했느냐"고 물었고, 권정생 선생님은 "절대 아니다"라고 부인했습니다. 기자는 유족이 권정생 선생님과 전화통화를 하는 그 자리에 있었습니다.

 권정생 선생님은 "(한길사 사람들을) 방안에 들어오지 못하게 밖에 세워서 벌벌 떨게" 해서 돌려보냈다"고 했습니다. 덧붙여 "읽으라고 가져온 책은 읽지 않고 아직도 그냥 밖에 그대로 있다"고 했습니다.

 이쯤에서 다시 `출판계약서' 이야기를 하겠습니다. 앞에서는 `이오덕 선생님-유족'과 관련된 계약서 문제입니다. 이번에는 `권정생 선생님' 문제입니다. 권정생 선생님이 낸 책은 평소에는 이오덕 선생님이 출판계약서와 인세 정산까지도 하나하나 꼼꼼히 챙겨 주셨습니다.

 권정생 선생님은 당신이 쓴 책이 엄청나게 많이 팔려서 인세 수입이 대단하다고도 하겠으나 무척 가난하게 살아가십니다. `돈'에 미련이나 욕심이 없는 분이라는 이야기입니다. 그러나 `돈'에 미련이 없다고 해서 `출판계약서' 한 장조차 없이 책을 내는 분이 아닙니다.

 지금은 문을 닫은 `종로서적'에서 권정생 선생님 이야기를 `허락'이나 `동의'를 받지 않고 낸 적이 있습니다. <오물덩이처럼 뒹굴면서>라는 책으로 책을 낸 다음에도 무척 화를 내셨다고 합니다. 이번 한길사 문제도 지난날 종로서적 책과 같은 경우라고 할 수 있습니다.

 이오덕 선생님은 살아 계실 때에도 "반드시 권정생 선생님께 동의를 받아야만 책을 낼 수 있다"는 `단서'를 단 `조건부 허락'을 했던 것입니다. 하지만 한길사에서는 이런 `조건부 단서'를 `구두 허락이자 계약'이라고 말을 하면서 책을 냈고, 책을 낸 뒤에도 이 사실을 유족과 권정생 선생님에게 바로 알리지 않았습니다.

 저작권자가 둘이라면 두 사람에게 허락과 동의를 얻은 뒤 출판계약서를 써서 내야 합니다. 백 번 양보하여 `이오덕 선생님이 구두로 계약을 해서 내기로 했다(이 또한 사실이 아님을 앞서 밝혔습니다)'고 친다 해도, `권정생 선생님과 계약을 안 했다'는 대목에서도 문제가 됩니다. 한길사에서는 이 대목에서는 "나중에 허락을 받을 수 있을 줄 알았다"며 "이렇게까지 어려울 줄 몰랐다"고 말을 합니다.

 어떤 분들은 `권정생 선생님이 (책의) 머릿글을 썼으니 동의한 게 아니냐'고 물어옵니다. 이번에 한길사에서 나온 책 머릿글은 `이오덕 선생님이 돌아가신 뒤 권정생 선생님이 어떤 회보에 쓴 추도글'입니다.

 그러니까 `이번에 한길사에서 나온 책을 위해서 쓴 글'은 절대 아닙니다. 그리고 이 글 또한 권정생 선생님에게 허락을 받지 않고 책에 실었습니다.

 지난 11월 12일치 <조선일보> 기사에서는 "권정생 선생님"이 "완강히 반대"를 해서 출판이 늦어졌다고 말합니다. 그래서 마치 권정생 선생님이 그저 `반대만 고집스레' 한 사람인 것처럼 비추었습니다. 하지만 `반대'를 했을 뿐 아니라 내지 못하게 한 책입니다. 이런 데에서도 `권정생 선생님'에게 또다른 피해와 손해를 입혔습니다.


 <6>

 처음에 기자는 `이오덕 선생님 뜻을 기리고 선생님 책을 소개하는 글 후속 보도'를 하고자 충주로 여러 번 내려갔습니다. 그렇게 내려가서 유족 분과 이야기하는 가운데 이번 일이 터진 걸 알았으며, 사건이 일어난 그날부터 충주에서 유족 곁에서 사건을 지켜보았습니다.

 저 또한 출판사에서 일을 했고, 지금도 책과 얽힌 일을 하는 사람으로서 이번 일을 보며 큰 아쉬움이 남습니다.

 세상에 아무리 좋은 책이고, 꼭 세상에 알려져야 하는 책이라고 해서 "지은이 모르게 낼 수는 없"으며 "지은이 허락을 안 받고 낼 수 없"으며 "지은이가 살아 있을 때 했던 일과 했던 말과 다르게 말씀을 하면서 책을 낼 수도 없"다고 생각합니다.

 기자 개인 생각입니다만, 책을 낸 한길사에서는 언론에 `책이 크게 보도'된 만큼 언론에 `공개사과'를 해야 하지 않나 생각합니다. 불미스럽고 눈살을 찌푸리는 일이라고 해서 감추거나 숨기는 일은 옳지 않다고 생각합니다.

 평생을 가난하면서도 부지런히 살아가고자 애썼던 이오덕 선생님과 권정생 선생님입니다. 그런 두 분 뜻을 제대로 기리자면, 책도 좀더 소박하게, 좀더 정성껏, 좀더 따뜻하며 아우르는 마음으로 사랑을 담아서 즐겁게 만든다면 좋겠습니다. `책'은 그 다음입니다. `사람'이 먼저입니다. 
 

(최종규 . 2003+201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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