무엇을 어떻게 사진으로 찍어야 아름다운가
 [따순 손길 기다리는 사진책 17] 주명덕 사진·이상일 글, 《한국의 장승》(열화당,1976)



 오늘이 되어 새 사진이 반짝 하고 태어나지 않습니다. 어제가 되어 옛 사진이 반짝반짝 빛나지 않습니다. 글피가 되어 다른 사진이 번쩍번쩍 나타나거나 반짝거리던 빛이 사그라들지 않습니다.

 사진은 언제나 사진입니다. 사람들이 많이 좋아하는 모습이기에 더 빛날 만한 사진이 아닙니다. 골목개를 찍거나 골목고양이를 찍기에 더 예쁘거나 더 남다르지 않아요. 정치꾼들 모습을 찍으니까 더 볼썽사납거나 더 재미없지 않아요. 이름난 사람을 찍으니까 더 돋보이거나 빛나지 않습니다. 이름 안 난 사람을 담기에 덜 도드라지거나 덜 볼 만하지 않습니다.

 이제껏 아무도 사진으로 안 담던 모습이기에, 내가 처음으로 사진으로 담을 때에 빛이 나지 않습니다. 여태껏 수많은 사람들이 사진으로 담던 모습인 만큼, 나까지 사진으로 담을 때에 따분하거나 틀에 박히지 않아요.

 새삼스럽거나 새롭다 할 만한 이야기를 다룬다 해서 사진답다 하지 않습니다. 낯설거나 놀랍다 할 만한 이야기를 보여준다 해서 글답거나 그림답지 않듯, 사진답다는 이름은 쉬 얻지 못합니다.

 흔한 이야기라서 흔한 사진이 되지 않습니다. 사람들이 보잘것없다고 여긴대서 보잘것없는 사진이 되지 않습니다. 눈여겨보는 사람이 드물기에 눈여겨볼 만하지 못한 사진으로 나뒹굴지 않아요. 알아주지 않는 이야기를 찍기 때문에 알아줄 만하지 않은 사진으로 따돌림받지 않습니다.

 주명덕 님이 사진을 찍고 이상일 님이 글을 넣은 《한국의 장승》(열화당,1976)을 읽습니다. 헌책방에서 만난 《한국의 장승》은 1976년에 1쇄를 찍고 1979년에 재판을 찍었다고 나옵니다. ‘재판’은 2쇄를 가리킬는지 3쇄를 가리킬는지 알 길이 없습니다. 예전에는 ‘재판’이나 ‘중쇄’라고만 밝히기 일쑤였거든요.

 《한국의 장승》에 글을 넣은 이상일 님은 “환경이 바뀐 때문에 장승이 아름다움으로 변신한 것은 아닐 것이다. 그것은 본질적으로 아름다움을 지니고 있었을 것인데, 우리가 그 아름다움을 발견하지 못했던 것이다(11쪽/이상일).” 하고 이야기합니다. 옳은 말입니다. 그런데, 얼마나 옳다 할 만한지는 잘 모르겠습니다. 옛날 사람은 장승을 아름답다고 여겼을는지 아름답지 않다고 여겼을는지 알 노릇이 없습니다. 굳이 아름답다고 여기며 장승을 세웠겠습니까. 아름다움을 빛내려고 장승을 세웠겠습니까. 장승은 장승이니까 세워요. 장승은 장승이기에 마을마다 섭니다.

 오늘날 사람들은 장승을 하찮게 여기거나 나쁘게 여기기에 장승을 꺾거나 분지르거나 뽑아 버리려나요. 장승을 모르니까 아무렇게나 다룰까요. 장승은 쓸데없다고 여겨 함부로 내치는가요.

 1970년대이든 2010년대이든 장승은 ‘사라지는’ 한겨레 삶입니다. 1970년대를 휘몰아치던 새마을운동은 흙으로 짓고 짚으로 이던 작은 시골집을 모두 밀어냈습니다. 시멘트로 벽을 바르고 슬레이트로 지붕을 잇도록 했습니다. 마을길도 시멘트길로 바꾸고 아스팔트 고속도로를 쭉쭉 늘렸어요. 곧, 흙도 흙일꾼도 흙삶도 내팽개치는 첫무렵입니다. 이러한 물결에 휩쓸리며 장승이든 나무문이든 짚신이든 고무신이든 빨래방망이든 워낭이든 하나둘 자취를 감출밖에 없습니다.

 장승이 서던 자리에는 신호등이 서겠지요. 장승이 있던 자리에는 마을 이름 굵직하게 새긴 커다란 돌이 들어서겠지요. 장승을 바라보던 사람들은 텔레비전을 바라보겠지요. 장승 앞에서 절을 하던 사람들은 예배당 뾰족탑 앞에서 절을 하겠지요.

 달라지는 삶이요 삶터입니다. 달라진 삶이자 삶터인 만큼 신호등을 사진으로 찍고, 아파트를 사진으로 찍으며, 텔레비전에 나오는 연예인을 사진으로 찍습니다. 마을사람 모여 두레를 하고 품앗이를 하며 부르던 노래가 사라지듯, 텔레비전과 라디오와 인터넷을 따라 흐르는 대중노래가 온누리에 넘실거립니다.

 벼베는 기계로 벼를 베는 모습을 사진으로 찍습니다. 낫으로 벼를 베는 모습은 찾아보기 어려우니, 애써 사진으로 찍기도 힘들지만 오늘날 굳이 사진으로 찍을 까닭이 없다 할 수 있습니다. 아마, 낫을 어떻게 쥐고 벼포기를 어떻게 잡으며 낫을 휘휘 쓸어야 하는가를 모르는 사람투성이일 텐데, 낫질하는 모습 사진을 누군가 찍는들, 이 사진에 서린 이야기를 누가 읽거나 느낄 수 있겠습니까.

 《한국의 장승》은 한국땅에서 장승이 재빠르게 사라지던 때에 찍은 사진을 그러모읍니다. 재빠르게 사라지지만 그나마 좀 남던 때에 찍은 사진을 갈무리합니다. 이제 2010년대를 맞이한 오늘날 한국땅에서는 “한국의 장승”이건 “전라도 장승”이건 “경상도 장승”이건, 사진으로 담기조차 빠듯하리라 느낍니다. 어쩌면 이제는 이러한 이름을 붙이는 이야기로는 사진을 찍을 수 없다 할 만하구나 싶어요. 이제는 “전남 영암군 금정면 쌍계사 터 장승”이라든지 “경북 충무시 문화동 장승”처럼 ‘가까스로 살아남았을까 싶은 장승 하나’만 날마다 숱하게 찾아가서 오래오래 바라보면서 ‘장승 하나만을 네 철 삼백예순닷새에 걸쳐 느낀 이야기’를 사진으로 담아야 할까 싶습니다.

 ‘열화당 미술문고’ 22번으로 나온 《한국의 장승》입니다. 주명덕 님이 찍은 장승 사진이 이 작은 손바닥책에 모두 담기지는 않았겠지요. ‘열화당 미술문고’ 22번은 이제 찾아볼 길이 없기도 합니다. 지난날 찍었으나 미처 못 담은 숱한 장승 사진에다가, 2010년에 새로 달라졌을 장승 사진을 더할 수 있으면, 그야말로 “한국의 장승”이라는 이름이 걸맞는 사진책 하나 그럴듯하게 태어나리라 생각합니다.

 한겨레가 살아온 발자취가 어떠한지 헤아리고, 한겨레가 살아가는 오늘이 어떤 모습인가를 곱씹으면서, 어제 오늘 글피로 이어지는 삶이란 우리들 저마다 얼마나 값있거나 뜻있는가를 되새기는 사진이야기를 사진쟁이 두 다리 튼튼하게 내딛는 싱그러운 삶길로 보여준다면 참 고맙겠구나 생각합니다. (4344.11.10.나무.ㅎㄲㅅㄱ)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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