나츠코의 술 애장판 2
오제 아키라 지음 / 학산문화사(만화) / 2011년 7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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품절




 기계를 써 봐, 얼마나 쉽고 좋은데
 [만화책 즐겨읽기 73] 오제 아키라, 《나츠코의 술 (2)》



 나는 자전거를 타고 빨리 달릴 때에 오르내리막 있는 길에서 2분에 1킬로미터를 달립니다. 자전거에 수레를 달아 아이를 태우면 3분에 1킬로미터를 달릴 수 있어요. 우리 식구 살아가는 전남 고흥군 도화면 신호리에서 고흥읍까지 14킬로미터이니까, 홀몸으로 자전거를 달리면 28분인 셈인데, 읍내에서 가방 가득 장보기를 하고서 무거운 짐을 짊어지고 달리면 39분이 걸리더군요. 아이를 수레에 태우고 달릴 때하고 엇비슷해요. 이 길을 자동차 있는 분한테 자리 하나 얻어서 타고 달리면 고작 7분이 채 안 걸립니다. 자동차로는 1분에 1킬로미터를 더 달릴 수 있어요. 군내버스를 타면 14킬로미터를 20분에 달립니다.

 집살림 꾸리는 분들이 집일을 하며 보내는 겨를이 참 깁니다. 빨래까지 손으로 하고, 걸레질과 비질을 손으로 하자면 몸이 많이 벅차고 품과 겨를 또한 많이 들어요. 맞벌이를 하든 외벌이를 하든, 집살림을 도맡는다고 하는 어머니(아줌마)들로서는 빨래기계 안 쓰는 삶을 헤아릴 수 없습니다. 아버지(아저씨)가 손수 빨래를 맡아서 하지 않는다면, 다른 집일을 적어도 반 넘게 맡아서 하지 않는다면, 여느 살림집에서 기계빨래 아닌 손빨래를 할 수 없어요. 여느 살림집에서 갓난쟁이한테 천기저귀를 쓰는 일은 꿈꿀 수 없다 할 만합니다.


- “나츠코.” “할아범.” “앉아라. 분명히 옛날에는 여자가 양조장에 들어오는 걸 꺼리는 풍습이 있었지. 내가 잡일꾼이었던 때는 밥도 남자가 지었어. 동자라고 해서 차가운 물로 두 말이나 되는 쌀을 발로 씻지. 발이 다 터도 술밥을 바르며 참았었지. 그런데 지금은 도우미 아주머니가 해 준단다. 장작도 안 쓰지. 전기밥솥을 누르기만 하면 돼. 거품 당번이라고 해서 모로미의 거품이 넘치나 안 넘치나 불침번도 서야 했어. 그것도 지금은 거품제거기 같은 기계가 해 주지. 그야, 술빚기는 기계로 전부 할 수 있는 게 아니다. 대부분은 옛날부터 바뀌지 않았어. 하지만 바뀌어도 괜찮은 옛날도 있는 거고, 사라져도 되는 옛날도 있는 게다. 나츠코, 양조장으로 오렴. 적어도 이 곳간은 여자가 드나들어도 된단다.” (34∼35쪽)


 새 보금자리를 손질하며 벽종이를 바르다가 가위를 찾습니다. 헌 가위 하나 있으나, 낡은 전깃줄을 자르다가 그만 손잡이가 부러졌어요. 우리 집에 자가용이 있다면 면내에 휙 달려가서 금세 돌아오겠지요. 우리 집에는 자전거와 손수레만 있기에, 자전거를 타고 부리나케 가위와 몇 가지 먹을거리를 장만하고는 부리나케 돌아옵니다. 가쁜 숨을 고릅니다. 흐르는 땀을 훔칩니다. 벽종이 바르기를 마저 합니다.

 옆지기 아버님은 짐차 하나 장만하는 데에 1500만 원이면 넉넉하다고 이야기합니다. 옆지기 아버님과 어머님이 이레 남짓 우리 일손을 거들면서 이끌었기에 새 보금자리 손질하기가 한결 수월했습니다. 옆지기 아버님 짐차를 얻어 타면서, 이웃 마을 사람들 누구나 짐차 한 대쯤 모는 모습을 느낍니다. 짐도 싣고 사람도 타는 짐차는 시골자락에서 아주 쏠쏠하게 한몫 합니다.


- “논에 담배 버리지 마.” (49쪽)
- “으응.” “유기농 재배라.” “게다가 볍씨는 1350알. 실패하면 두 번 다시 농사를 지을 수 없어. 퇴비는 어떻게 만드는지, 쓰러지지 않게 하려면 어떻게 해야 좋은지, 해충 구제랑 제초는 어떡하면 좋은지 모두가 가르쳐 줬으면 해서. 오빠가 남긴 유산이야! 환상의 쌀을 부활시키고 싶어! 부탁해!” “유기농 재배에 환상의 쌀이라고? 앞으로는 양보다 질이야. 좋은 쌀이 재평가받고 살아남는 시대라고 생각해.” “그럼.” “일은 간단하지만 우리도 배운 대로 화학비료로밖에 농사를 지을 줄 몰라.” “그래, 이 마을에서는 어려워.” “시간과 공을 들여서 실패하면 큰 손해니까. 아버지도 과연 찬성해 주실지.” “퇴비를 만드는 곳도 없는 걸. 난 본 적도 없어.” “퇴비, 아무 데도 안 만드니?” “이것 참, 그야말로 환상이로군. 하하하.” (88∼89쪽)


 그러나 나는 조금 다른 길을 생각합니다. 짐차 한 대 값이 1500만 원이라 하면, 이 돈은 서울 같은 큰도시에서는 1평 사는 값조차 안 돼요. 아마, 부산·인천·대구·대전·울산에서도 엇비슷하겠지요. 아파트 분양값 1평에 1000만 원 넘은 지 퍽 오래되었어요. 웬만한 건물도 1평 짓는 데에 1000만 원은 우습게 들어요.

 네 식구 살아가는 시골마을에서 1500만 원이면 땅을 몇 평쯤 살 수 있나 어림합니다. 대문 앞 기름진 논밭이라면 600평쯤 살 수 있으려나. 멧등성이 쪽으로 올라가는 밭뙈기라면 800평쯤 살 수 있으려나.

 짐차이든 자가용이든 굴리자면 기름을 넣어야 합니다. 그닥 많이 굴리지 않더라도 한 달 기름값으로 60만 원은 잡아야지 싶어요. 다달이 60만 원이라면 한 해에 720만 원이에요. 한 해에 720만 원이라면 열 해이면 7200만 원이 돼요.


- “쌀 따위 화학비료 쏟아붓고 기계를 쓰면 얼마든지 자라! 아무리 경작 면적을 줄여도 수확이 남아돌 정도야. 난 요즘 뭐랄까, 의문을 느껴. 내 인생에 대해서. 서글퍼진 게다. 내 일생은 흙투성이인 채 끝나는 걸까, 하고.” “할아버지.” “타츠니시키? 흥. 이 부근 땅은 엉망이야. 나츠코, 포기해라.” (55∼56쪽)


 나한테 돈이 있고 옆지기한테 돈이 넉넉하다면, 우리 식구가 짐차이든 자가용이든 몰 만한가 하고 곱씹습니다. 우리 식구가 이만 한 돈을 들여 자동차 하나 거느릴 만한지 되뇝니다.

 한 해에 1억 원을 번다는 사람이라면 한 달에 1000만 원쯤 버는 셈이니, 이러한 자가용이나 기름값은 그닥 걱정스럽지 않으리라 봅니다. 다만, 자동차를 타야 할 때에는 타야 할 테지만, 자동차를 안 탈 때에는 이 자동차가 무슨 노릇을 하는지 헤아리고 싶어요. 자동차를 타면서 내 삶이 수월해진다고 할 때에, 참말 내 삶에서 무엇이 좋아지거나 나아지거나 아름다워지는지 돌아보고 싶어요.

 자동차를 몰며 멧길을 오를 때에도 멧길을 오른다는 느낌을 받을 수 있나 궁금합니다. 멧자락을 느끼고 멧바람을 마시며 멧소리를 듣는 한편 멧내음을 맡으려는 사람이 자동차를 몰며 멧길을 올라야 하는지 궁금합니다.


- “마지막이라뇨?” “그만둘 거야. 우린 도지 제도를 폐지할 거거든.” “도지 제도를 폐지? 그럼 누가 술을 만들어?” “대학에서 양조학을 공부한 엘리트들이지, 나츠코.” (77쪽)
- “새언니, 나는 카피(광고글)를 쓴 적은 있지만, 벼를 기른 적은 없어.” “기르는 게 아니야. 땅과 물과 해님이 길러 주시는 거지. 길러 주시면 인간은 그걸 받는 거야. 후후, 미야카와 씨의 말버릇이야. 야스오 씨랑 자주 여기서 밤새 술을 마셨어.” (122쪽)



 앞에 두 사람 앉고 뒤에 두 사람 앉히는 짐차라면 우리처럼 네 식구 살림에 꼭 알맞는다 할 수 있으리라 봅니다. 이러한 짐차 하나 있으면 읍내나 면내뿐 아니라 군내 곳곳을 마실할 만하고, 군내를 넘어 이웃 시나 군으로도 마실할 만해요. 온 나라 어디이든 못 갈 만한 데가 없어요. 가까운 면내나 읍내에 다녀오는 길에도 아이들 옷가지와 기저귀를 가방 하나씩 채워 낑낑거릴 뿐 아니라, 갓난쟁이 안거나 업느라, 네 살 아이 달래거나 안으며 고단해 하지 않아도 돼요.

 자가용 없는 우리 식구는 늘 시골버스를 기다립니다. 아이 둘이 곯아떨어지며 옆지기가 지치는데다가 짐이 가득이라면 택시를 부릅니다. 바깥마실을 하고 나서 집으로 돌아오는 길에 택시를 타는 때는 한 달에 너덧 차례쯤 될까 싶습니다. 한 주에 한 차례 이렇게 택시를 탄다면 택시삯으로 한 달에 오만 원 즈음 쓰는 꼴입니다.

 사흘에 한 번 택시를 탄다면 다달이 십만 원 꼴이고, 이틀에 한 번 택시를 탄다면 다달이 십오만 원 꼴이에요. 날마다 택시를 타더라도 다달이 삼십만 원 꼴이니, 자가용 몰며 기름값 들이는 돈에 대면 아무것 아닌 셈이라 할 수 있어요.


- “지금은 어디든 모판으로 하지. 그건 하우스에서 난방기를 틀어 단기간 대량의 모를 만들기 위한 거야. 기계로 심을 육묘 방법이지. 왜 큰 타츠니시키를 그런 곳에 가두지? 그보다 넓은 장소에서 모가 뿌리를 마음껏 뻗게 해. 난방기가 필요없는 건강한 모를 길러라. 물못자리는 물이 보온 역할을 해 주지. 물론 수고와 시간이 들지만.” (161쪽)
- “왜 기계를 안 빌려! 왜 다른 일손을 안 써!” “돈이 들어요.” “우리 집도 그 정도 돈은 있어. 돈보다 나츠코의 몸이 걱정이야!” “기계는 빌리지 않아요! 다른 사람 손도 빌리지 않을 거예요! 내가 하겠어요! 나 혼자서 하겠어요!” (190쪽)



 묵은 집 지붕을 고치고 전깃줄을 새로 갈며 중간천장 베니어판을 고칩니다. 보일러를 손질하고 양수기를 갑니다. 나는 이러한 일을 할 줄 몰라 일꾼을 부릅니다. 어느 일이나 재료값은 얼마 안 됩니다. 모두 품값입니다. 목수 일을 하는 분은 하루 품값이 20만 원이라 합니다. 전깃줄 새로 가는 분은 하루 품값으로 30만 원쯤 치르는 셈이지 싶어요. 벽종이 바르기를 다른 사람한테 맡겼으면, 두 사람 품값으로 100만 원 넘게 치러야 했을는지 모릅니다. 20평 안 되는 시골집 벽종이 새로 바르고 장판 새로 까는 데에 사람을 부르면 으레 200만 원이 든다 하더군요.

 내가 헌 벽종이를 뜯어 새 벽종이를 바른대서 품값 150만 원을 아끼거나 번다고 여기지 않습니다. 내가 살아가는 집이요 옆지기랑 아이들이 함께 살아갈 집이기에 내 품과 땀과 넋을 들입니다.

 자전거를 탄대서 기름값이나 찻값을 줄인다고 느끼지 않습니다. 나는 내 다리로 움직이는 삶이 좋고, 알맞춤한 빠르기로 달리면서 공해와 매연을 내지 않는 삶이 좋습니다. 손빨래를 한대서 비싼 빨래기계 값을 아낀다거나 물을 적게 쓴다고 생각하지 않아요. 사랑스러운 살붙이들 옷가지를 쪼물딱거리면서 내 힘들거나 지치거나 고달픈 마음짐을 내려놓습니다. 다 마친 빨래를 해바라기 시키려고 내다 널며 내 찌푸린 이맛살을 쓰다듬습니다. 다 마른 빨래를 아이들 앞에서 개며 아이가 눈과 가슴으로 집일을 느끼도록 합니다.


- “아무리 네가 죽을 각오로 힘써 봤자 쓸데없는 노력이야. 옛날 옛적이면 모를까!” “타츠니시키는 옛날 쌀이에요. 가래와 괭이와 말과 소밖에 없었던 시절의 쌀이에요. 인간이 아직 죽을 각오로 경작하던 시절의 쌀이에요. 쓸데없는 노력이라고 생각하지 않아요. 기계보다 괭이가 깊이 일굴 수 있어요.” (209∼210쪽)
- “신고, 그만해. 난 이런 부탁 안 했잖아.” “됐으니까 사양하지 마. 저것(트랙터)도 고물이지만, 그 막대기(괭이)보다는 도움이 될걸?” (두두두두 두두두) “어때, 나츠코? 벌써 나츠코가 일군 면적을 해치웠지? 기계는 편리하지?” (222쪽)



 이래저래 눈코 뜰 새가 없습니다. 새 보금자리에 깃든 뒤로 내 어버이한테 편지 한 장 부치지 못합니다. 그저 마음뿐입니다. 이러면서도 밥은 먹어야 하기에 밥때에 맞추어 밥을 합니다. 국을 끓이면서 마늘을 다집니다. 절구로 빻으면 일이 한결 쉽다 할 테지만, 나는 칼로 마늘을 잘게 썰어 칼등으로 꾹꾹 누른 다음 칼날로 톡톡톡 다질 때나 절구빻기를 할 때나 품이나 겨를은 엇비슷하다고 느껴요. 칼을 쥐고 여러 푸성귀를 만지다가 절구를 꺼낼 겨를이 없어, 선 채로 칼과 도마만 물로 헹구고 나서 마늘을 칼로 다집니다. 어릴 적 부엌에서 어머니가 쉴 틈 없이 칼질과 도마질을 하던 모습을 떠올리면서 마늘을 다집니다. 내가 내는 마늘다지기 통통통 소리는 내 어머니가 내 앞에서 들려주던 통통통 소리입니다. 이 소리가 옆방에서 옆지기랑 까르르 웃으며 놀다가는 떼 쓰며 꾸지람 듣는 아이한테까지 들릴는지 모르겠지만, 나는 날마다 칼질을 합니다.

 오제 아키라 님 만화책 《나츠코의 술》(학산문화사,2011) 2권을 읽습니다. 나츠코는 혼잣힘으로 묵은논 스물다섯 평을 괭이 하나로 일구려고 땀흘립니다. 끝내 혼잣힘으로 묵은논 스물다섯 평을 괭이 하나로 일구지는 못합니다. 며칠에 걸쳐 괭이 하나만으로 묵은논하고 씨름하며 흙일을 몸으로 겪습니다.

 손쉽게 기계힘을 빌리며 모내기를 하려던 나츠코였으면 이러한 나츠코 삶대로 나츠코다운 술 하나를 빚겠지요. 온몸을 바쳐 온몸을 들이는 삶으로 땀흘릴 때에는 이러한 나츠코 삶대로 나츠코다운 술 하나를 빚을 테지요.

 맛있는 술 하나는 땀흘린 아름다운 삶에서 비롯합니다. 맛있는 밥 한 그릇은 땀흘린 아름다운 삶에서 태어납니다. 기계를 쓰면 참 쉽고 좋다 하겠지요. 기계를 쓰면 ‘잘 팔릴 만한 술’을 아주 많이 잔뜩잔뜩 만들 수 있겠지요. 기계를 쓰고 화학비료와 농약을 치면 ‘사람들이 더 값싸게 사먹을 수 있다는 쌀’을 거둘 수 있겠지요. 손품을 많이 들이고 거름을 뿌리며 기계를 덜 쓰면 ‘더 값이 비싼 쌀’이 될밖에 없겠지요. (4344.10.30.해.ㅎㄲㅅㄱ)


― 나츠코의 술 2 (오제 아키라 글·그림,박시우 옮김,학산문화사 펴냄,2011.7.25./9000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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