책이 있는 집
이제 책이 없는 집은 생각할 수 없다. 지난날에는 좀 있는 사람 아니고서는 책을 손에 쥘 수 없었으나, 이제는 좀 없는 사람이더라도 책을 손에 쥘 수 있다. 누구나 글을 배울 수 없던 때에는 아무나 책을 손에 쥘 수 없었다. 누구나 글을 배울 수 있는 오늘날에는 아무라도 책을 손에 쥘 수 있다.
돈벌이를 헤아리며 태어나는 책이 있다. 아름다운 삶을 사랑하려는 넋으로 일구는 책이 있다. 나 스스로 돈벌이에 목을 맨다면 내 손에 쥐는 책이란 돈벌이를 헤아리는 책이 될 테지. 나 스스로 아름다운 삶을 사랑하려는 넋이 될 때에는 아름다운 삶을 사랑하려는 넋이 깃든 책을 손에 쥐겠지.
갓난쟁이 둘째 곁에 누워 그림책 읽어 주는 옆지기가 고맙다. 나는 새 보금자리 집일 건사하는 데에 온통 마음을 빼앗기고 말아, 미처 아이들한테 그림책 읽혀야겠다는 생각을 못하고 지낸다. 갓난쟁이 둘째는 곁에서 어머니가 펼치는 그림책을 들여다보기보다 저희 아버지가 뭐 하나 하고 말똥말똥 바라본다. 아버지가 빨래하고 나서 옷걸이를 찾아 이 방 저 방 돌아다니니까, 다 마른 빨래를 걷어서 개니까, 이리저리 눈알을 굴리며 바라보다가 어느새 어머니가 읊는 목소리 결을 따라 그림책도 들여다본다. (4344.10.29.흙.ㅎㄲㅅㄱ)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