붉은노을 책읽기
새벽녘 붉은노을은 짧다. 저녁나절 붉은노을도 짧다. 살짝 다른 데에 눈길을 둘라치면 금세 지나간다. 새벽녘 먼 멧자락을 붉게 물들이는 노을을 바라보면서 지난밤 사이에 다 마른 기저귀를 걷어 개고는 다시 먼 멧자락을 바라보니 붉은노을이 거의 걷힌다.
새벽에 우짖는 새들 소리를 듣는다. 새들도 겨울나기를 해야겠지. 따뜻한 고장에서는 따뜻한 대로 겨울나기를 하고 추운 마을에서는 추운 대로 겨울맞이를 하겠지.
인천 바닷가에서 살아가던 어린 날에는 붉은노을을 언제나 보았다. 인천을 떠나 서울에서 신문배달을 하며 살던 때에도 붉은노을을 늘 보았다. 군대에서는 높디높은 멧자락 한켠에 갇혀 붉은노을은 모르며 지냈다. 충청북도 멧골자락에서도 멧등성이에 가려 붉은노을은 느끼지 못하며 살았다. 문득 돌아보니 퍽 오랜만에 새벽녘 붉은노을을 바라보며 아침을 맞는다고 깨닫는다. 이제 이 살림집에 뿌리를 내리고 책짐을 실어 날라 갈무리를 마칠 수 있으면, 아이들하고 한결 넉넉하게 새벽노을맞이를 하겠지. 아버지가 안 깨워도 늘 일찍 일어나는 첫째 아이라 하지만, 일부러 첫째 아이를 일찍 깨워 새벽나절 붉은노을을 함께 바라보자고 할 수 있겠지.
까맣디까만 하늘이 차츰 파란 빛깔을 띌까 싶더니 온통 붉게 물들고는 시나브로 노오랗게 바뀐다. 노오라면서 귤빛으로 바뀐다. 꼭 단단하게 익은 감알 빛깔과 같다. 어쩌면, 단감빛이 노을빛이라 할 수 있으리라. 단감을 먹으며 몸을 살찌우고, 노을빛 어린 새벽바람을 마시면서 마음을 북돋운다. (4344.10.23.해.ㅎㄲㅅㄱ)