샤먼시스터즈 4
쿠마쿠라 다카토시 지음 / 대원씨아이(만화) / 2005년 6월
평점 :
절판



 새 하루가 기쁘게 찾아오는 까닭
 [만화책 즐겨읽기 72] 쿠마쿠라 다카토시, 《샤먼 시스터즈 (4)》



 돈이 넉넉하게 있으면 내 삶을 한결 넉넉하게 일굴 수 있는지 잘 모릅니다. 돈이 빠듯하거나 벅차면 내 삶은 한결 어둡거나 메마른지 잘 모릅니다. 돈이 넉넉하지 않거나 모자라다면, 아무래도 몸을 쓰는 일이 많거나 늘 몸을 쓰면서 살아가겠지요. 돈이 넉넉하거나 많다면, 아무래도 스스로 몸을 쓰기보다는 남한테 일을 맡긴다든지 몸이 수월할 만한 길을 찾겠지요.

 서른일곱 해를 살면서 몸을 덜 써도 된다거나 몸이 수월할 만한 일을 해 본 적이 있는지 잘 모릅니다. 으레 몸을 쓰는 일을 하고, 노상 몸을 쓰며 자전거를 몰거나 두 다리로 걷습니다. 책방마실을 하면서 가방 가득 책을 채울 뿐 아니라 끈으로 두어 덩이 책짐을 만들 때에도 한두 시간 남짓 걸어서 집으로 돌아가거나 버스·전철을 타고 집으로 왔어요.

 빗소리 듣는 새 보금자리에 드러누워 꿈을 꿉니다. 네 식구가 이제부터 느긋하게 두 다리 뻗고 집 옮길 걱정 없이 지낼 새 보금자리에서 첫잠을 자면서 꿈을 꿉니다. 새벽부터 저녁까지 그치지 않는 숱한 일을 치르느라 몸이 무거우니 마음 또한 지치는데, 이렇게 지치더라도 부디 내 마음을 잃거나 놓치지 말자고 꿈을 꿉니다. 사랑스러운 보금자리에서 사랑스러운 이야기를 나누려고 하는 만큼 나와 옆지기와 아이들 모두 사랑으로 따뜻한 나날을 누리자고 꿈을 꿉니다.

 꿈을 잊지 말자고 다짐합니다. 나는 꿈을 먹는 사람이지 돈을 먹는 사람이 아닌 줄 알자고 생각합니다. 나는 싱그러이 웃으면서 예쁜 손길을 나눌 사람이지 얼굴 찌푸리면서 거친 말을 쏟을 사람이 아닌 줄 깨닫자고 헤아립니다. 나는 씩씩하게 살아갈 사람이지 힘알이 없이 축 처질 사람이 아닌 줄 알아차리자고 되뇝니다.


- “알고는 있지만 자신은 아무것도 할 수 없으면요?” “시즈루?” “사호 언니의 자세는 바람직하긴 해도, 실제로 그런 입장이 되면, 그땐 그렇게 행동하기 힘들 거예요.” “…….” (23쪽)
- “사호 언니는 그쪽을 보려고 노력한 나머지, 그물 같은 것에 걸려들어서 주위를 못 보게 된 건 아닐까요. 하지만 이쪽을 보지 못해서는 그쪽도 보지 못해요.” (30쪽)


 고양이 한 마리 죽습니다. 이른아침에 고양이 한 마리 돌울타리 한켠에 조용히 쓰러져 죽은 모습을 봅니다. 고양이는 제 목숨이 다한 줄 깨닫고는 사람들 눈에 잘 뜨이지 않거나 다른 짐승들 눈에 잘 보이지 않는 자리로 찾아들었는지 모릅니다. 아마 여느 길짐승이나 멧짐승이나 들짐승도 이처럼 조용히 제 무덤자리를 찾아갈 테고, 마지막 힘이 빠지고 나면 흙에 몸뚱이를 누인 채 흙벌레가 하나하나 살점을 뜯어 온몸이 흙과 하나되도록 하겠지요.

 빗방울 하나둘 듣는 저녁 무렵에 연장을 챙깁니다. 아침과 낮에는 우리 보금자리를 손질하느라 고양이 주검을 어찌할 겨를이 없습니다. 아니, 깜빡 잊었다가 다른 사람이 고양이 주검을 알아보았을 때에 비로소 다시 생각했습니다.

 어디에 묻어야 좋을까 어림합니다. 마땅히 떠오르지 않습니다. 집 뒤꼍 감나무 자리는 그늘이 질 테고, 모과나무 옆은 볕이 잘 들지만 도서관 터가 될는지 모르니 안 되고. 마침 밀차로 빈터를 넓게 다진 뒤라서 팔 만한 흙이 마땅하지 않지만, 볕이 제법 드는 돌울타리 한쪽 조금 굵은 나무 옆자리가 좋겠구나 싶습니다. 삽도 호미도 없어 쇠스랑으로 어렵게 흙을 파고 돌을 고릅니다. 차갑게 식은 고양이 주검을 내려놓습니다. 앞발을 펴고 싶으나 벌써 딱딱하게 굳었기에 오른발은 앞으로 뻗친 모습 그대로 내립니다. 흙을 덮고 돌로 누릅니다. 돌이 무겁지 않을까 싶으나, 이 돌을 치우며 고양이 주검을 파낼 다른 짐승은 없겠지요. 밤새 조금조금 내리는 빗방울은 흙으로 돌아간 고양이한테도 천천히 스며들겠지요.


- “기분 나쁘셨다면 죄송합니다. 하지만 따지고 보면 생물이란 다들 특이한 거예요. 단 하나도 똑같은 것이 없고 그것이 각각의 재산이죠. 그리고 그 까닭에 좋아하고 싫어하는 것도 생기는 거고요. 우리들을 싫어하는 것도 당신의 소중한 감정. 당신의 체질을 이용해 장난을 친 것도 동료들의 순수한 감정.” (56쪽)
- ‘시골이라 영은 많지만, 할아버지는 공존하는 법을 알기 때문에 괜찮다고 하셨다. 하지만 마을 중심 쪽의 것들은 위험해 보여서 방심할 수가 없었다. 너무 들떠 있으면 당하기 쉬운 건 어디든 마찬가지지만.’ (110쪽)



 잠든 아이들 이불을 여미면서 팔을 살며시 들 때에는 보드라이 움직입니다. 숨이 붙은 목숨이요 예쁜 핏덩이일 테니까요. 숨이 빠지고 피돌이가 멈춘 몸뚱이는 팔이며 몸이며 뻣뻣합니다. 이제 더는 움직이지 못하니까요.

 살아숨쉬니까 이렇게 보드라우면서 말랑말랑하군요. 싱그러운 숨이 펄떡펄떡 뛰니까 이토록 따스하면서 포근한 몸뚱이로군요. 밥을 먹으며 기운을 얻는 목숨이고, 사랑을 먹으며 꿈을 얻는 몸뚱이라 하겠지요.

 이 아이들은 아이들 나이를 기쁘게 누리면서 푸름이로 자라고, 푸름이에서 젊은이로 자라다가는, 저마다 저희 깜냥과 꿈과 뜻에 맞는 새로운 길을 찾아 새로운 삶터를 일구리라 생각합니다. 어버이라 하는 사람은 어버이 스스로 제 깜냥과 꿈과 뜻이 무엇인가를 옳게 느끼며 받아들여서 참다우면서 착하게 살아야 하고, 이러한 삶을 온몸과 온마음으로 아이들한테 물려주어야 한다고 생각합니다. 말로 가르치지 못하고, 책으로 가르치지 못하며, 학교로 가르치지 못해요.

 가만히 보면 누구나 이와 같은 얼거리를 잘 알거나 느낄 만한데, 정작 참다이 살거나 착하게 지내는 어른은 퍽 드물어요. 고단한 나날이라 잊을 수 있어요, 바쁜 일에 휘둘리느라 참답거나 착하게 살려 하지 않을 수 있어요. 돈에 메말라 그만 예쁜 삶하고는 동떨어질 수 있습니다.

 사람은 밥을 먹어 몸을 살찌우기만 해서는 살아간다 할 수 없는 목숨이에요. 사람은 사랑을 먹으며 마음을 살찌워야 비로소 두 다리로 내 땅에 선 목숨이라 할 만해요. 사랑을 받아먹으면서 사랑을 나누고, 사랑을 나누면서 사랑을 받아먹습니다. 꿈을 살찌우면서 사랑을 얻고, 사랑을 보살피면서 꿈이 새로 피어납니다.


- “할머니의 감기가 좀더 오래가면 엄마가 더 오래 있어 줄까? 헤헤헤.” 퍼억! “아. 아프잖아. 왜.” “네가 지금 얼마나 무시무시한 말을 했는지 알아? 미즈키! 아냐고!” (117∼118쪽)
- “할머니, 벌써 일어나셔도 괜찮아요?” “그래, 너희가 걱정해 준 덕에 다 나았단다.” “무리하지 마세요.” “알았다.” (138쪽)


 쿠마쿠라 다카토시 님 만화책 《샤먼 시스터즈》(대원씨아이,2005) 넷째 권을 읽습니다. 온누리를 감도는 두 갈래 넋을 느끼거나 볼 줄 아는 아이들한테는 어떤 일이 가장 마음 쓰일 만한 일이라 할는지 곰곰이 돌아보면서 읽습니다. 아이들은 ‘죽고 나서 온누리를 떠도는 넋’을 보거나 느낄 줄 아니, 이들 넋을 보거나 느끼는 일에 가장 마음을 쓰면서 살아갈까요. 이들 넋을 보거나 느끼는 일이 아이들한테 가장 대수로우면서 가장 커다란 일이 될까요.

 나한테는 내 삶에서 무엇이 가장 마음을 쓸 만한 일인가 곱씹습니다. 책, 새 보금자리, 글, 살림돈, 이런저런 것들에 이모저모 마음을 쓸 수 있을 텐데, 책한테 마음을 쓸 수 있다 하더라도 가장 마음을 쓸 만한 일이 될 수 없습니다. 새 보금자리이든 글이든 살림돈이든 이와 매한가지예요. 내가 가장 마음을 쓸 만한 대목이라면 내 곁에서 함께 살아가는 옆지기와 아이들입니다. 옆지기와 아이들한테 가장 깊고 넓게 마음을 쓰면서 내 책들과 새 보금자리한테 마음을 기울일 수 있어야 아름답고 좋아요.


- “이런 얘기가 있어. 어느 마을에서 아이들이 뱀을 잘라 죽인 뒤 꼬치에 꿰어서 놀고 있었지. 그걸 지나가던 촌장님이 본 거야. 촌장님은 그걸 보고 굉장히 무서워했어. 그때 뱀에 홀린 사람이 누구라고 생각해? 촌장님이야. 우리도 아무 생각 없이 지나친다면 보는 일도 씌는 일도 없을지 몰라.” (171∼172쪽)
- “그렇지만 꼭 그런 견해만 있는 건 아니죠. 여유로운 마음을 가지는 게 어떨까요? 저는 이렇게 당신과 얘기할 수 있어서 기쁘니까요.” (62쪽)



 참 맞는 노릇이지 하고 느끼면서 다시금 생각합니다. 새벽녘 홀로 조용히 일어나 곰곰이 돌아볼 때에는 이렇게 맞는 생각을 한다 할 텐데, 머잖아 동이 트고 또 새 하루를 맞이하면서 새 보금자리를 이래저래 손질하거나 고치는 일을 붙잡아야 할 때에는 옆지기랑 아이들 삶을 또 잊거나 옆으로 밀치지 않겠느냐 싶습니다. 다짐을 되풀이하고 뉘우치기도 되풀이합니다. 꿈도 되풀이하고 사랑도 되풀이합니다. 삶은 언제나 되풀이하며, 목숨 또한 한결같이 되풀이해요.

 고이 살아가려는 내 넋이 고이 살아가는 내 아이가 됩니다. 예쁘게 꿈꾸려는 내 얼이 예쁘게 꿈꾸려는 내 아이가 돼요. 따사로이 사랑하려는 내 살림살이가 따사로이 사랑하려는 내 아이 살림살이가 되겠지요. 기쁘게 찾아온 새 하루를 기쁘게 누리고 싶습니다. (4344.10.22.흙.ㅎㄲㅅㄱ)


― 샤먼 시스터즈 4 (쿠마쿠라 다카토시 글·그림,문준식 옮김,대원씨아이 펴냄,2005.7.15./3800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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