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7컷, 꿈을 담는 카메라 - 아프리카 부룬디 아이들이 찍은 아프리카
손은정 지음 / 동녘 / 2011년 8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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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사진은 ‘내가 찍고 내가 즐기는’ 삶이자 사랑
 [찾아 읽는 사진책 63] 손은정, 《27컷, 꿈을 담는 카메라》(동녘,2011)



 사진은 내가 찍습니다. 사진은 내가 봅니다. 사진은 내가 찍어 내가 즐깁니다. 어느 누가 찍어 주는 사진이 아닙니다. 남들 보라고 찍는 사진이 아닙니다. 누군가한테서 돈을 받아 사진을 찍더라도 ‘찍어 주는’ 사진이 아니라 ‘찍어서 내가 즐기는’ 사진입니다. 혼인잔치나 돌잔치에서 사진을 찍을 때에도 ‘찍는 사진’이지 ‘찍어 주는 사진’이 아닙니다.

 신문사나 잡지사나 출판사에서 글 한 조각 써 달라고 연락하기에 쓰는 글이라 할 때에도 나 스스로 내 ‘삶을 쓰는 글’입니다. 돈에 따라 ‘써 주는 글’이 아닙니다. 나 스스로 내 삶을 즐기지 못할 때에는 글을 쓰지 못합니다. 나 스스로 내 나름대로 일구는 삶이 아니라면 글을 쓸 수 없습니다.

 사랑하지 않으면서 사람을 사귀지 못합니다. 사랑하지 않으면서 흙을 일구지 못합니다. 사랑하지 않으면서 배를 몰아 고기를 낚지 못합니다. 사랑하지 않으면서 높고낮은 멧자락을 오르내리지 못합니다. 사랑하지 않으면서 길을 걷거나 자전거를 몰지 못합니다. 사랑하지 않으면서 장사를 하지 못합니다. 사랑하지 않으면서 아이들 웃음소리를 마주하지 못합니다.

 오직 내 사랑을 느끼고 내 사랑을 나누며 내 사랑을 꽃피우는 삶입니다. 사진찍기와 사진읽기는 내 사랑을 느끼고 내 사랑을 나누며 내 사랑을 꽃피우는 삶을 빛내는 숱한 이야기 가운데 하나입니다.

 손은정 님이 빚은 《27컷, 꿈을 담는 카메라》(동녘,2011)를 읽습니다. 손은정 님은 차풍 신부님 입을 빌어 “결국 도움을 받은 것은 나였고, 우리 프로젝트 팀 멤버였던 것이지요(차풍 신부,50쪽).” 하고 적바림합니다.

 ‘인도 사창가’에서 아이들과 함께 꿈을 꽃피우고 싶어 사진기를 나누어 주면서 사진삶을 일군 이야기를 담은 영화 〈꿈꾸는 카메라, 사창가에서 태어나〉(2004)를 본 몇몇 한국사람이 아프리카땅에서 ‘또다른 꿈을 담는 사진삶’을 나누어 보자면서 조그맣게 모임을 마련했고, 아프리카땅 조그마한 나라 하나를 골라 찾아갔다고 합니다. 사진책 《27컷, 꿈을 담는 카메라》에는 영화 〈꿈꾸는 카메라, 사창가에서 태어나〉를 닮고 싶은 몸짓이 고스란히 뱁니다. 그러나, 글쓴이를 비롯해서 차풍 신부님이나 ‘꿈카 모임’ 사람들은 제대로 깨닫지 못합니다. 영화 〈꿈꾸는 카메라, 사창가에서 태어나〉는 인도땅 자그마한 골목동네에서 오래오래 함께 살아가는 이웃이자 벗이요 벗바리가 되면서 사진삶을 일굽니다. 한 번 스치듯 찾아와서 어느 결에 떠나고 마는 손님으로 마주하지 않습니다. 착한 이웃이자 좋은 벗인 한편 고마운 벗바리였기에 〈꿈꾸는 카메라, 사창가에서 태어나〉가 태어날 수 있습니다. 그럴듯한 글월을 새긴 옷을 똑같이 맞춰 입고 아프리카땅 작은 나라 작은 마을로 찾아갔다면 〈꿈꾸는 카메라, 사창가에서 태어나〉가 태어날 수 없습니다. 작은 나라 작은 마을 사람들하고 이웃이 되어야지, 손님으로 찾아와서 무엇을 할 수 있을까요. 부룬디땅 사람들이 쓰는 말을 한 마디조차 할 수 없으면서 어떤 꿈과 사랑과 믿음을 나눌 수 있을까요.

 “미람뱌에 처음 도착했을 때 뛰어나오는 아이들이 너무나 반가웠다. 그러나 반가움도 잠시, 우리는 ‘아마호로’ 다음에 한 단어조차 이어가질 못하고 있었다. 키룬디어를 전혀 모른다는 건 그렇다치고, 우리는 불어조차 할 수 없었기 때문이다(141쪽).” 같은 말을 적어서는 안 됩니다. 부룬디말이든 프랑스말이든 옳게 할 줄 아는 사람들이 부룬디를 찾아가야지요. 부룬디를 찾아가려 했다면 모임 사람들 누구나 부룬디말을 익혀야지요.

 한국땅을 찾아와 ‘한국사람 삶과 꿈과 넋을 사진으로 담겠다’고 하는 일본사람이나 미국사람이 한국말을 한 마디도 할 줄 모르면서 사진을 찍거나 사진꿈을 키우겠다고 할까 궁금합니다. 꼭 ‘다큐멘터리’라서가 아니라 ‘사진’을 어떻게 찍어야 하는가를 모르는 채 어떤 사진삶을 나눌 수 있는지 궁금합니다. 부룬디가 되든 수단이 되든 콩고가 되든 나미비아가 되든 모로코가 되든, 아무것도 모를 뿐 아니라 아무것도 알려 하지 않으면서 어떻게 이웃이 되거나 벗이 되거나 벗바리가 될는지 궁금합니다.

 가만히 보면, 《27컷, 꿈을 담는 카메라》는 “사진이 주는 기쁨이 이런 것이 아닐까 싶다. 사랑하는 사람의 가장 아름다운 모습을, 절대 잊고 싶지 않은 순간을 잡아서 내 곁에 둘 수 있다는 것(130쪽).”이라는 말처럼, ‘한국땅 큰도시에서 내 삶길을 어떻게 가다듬어야 좋을는지 몰라 헤매는 넋을 다잡는 여행이나 자원봉사’라는 테두리에서 ‘가난한 아프리카땅 찾아가기’를 했을 뿐 아닌가 싶습니다. 사진도 꿈도 사랑도 삶도 사람도 모르는 채 허둥지둥 〈꿈꾸는 카메라, 사창가에서 태어나〉를 흉내내거나 따라했을 뿐 아닌가 싶어요.

 더 많은 아이들한테 더 많은 사진기를 나누어 준대서 더 놀랍거나 더 뜻있거나 더 아름답다 싶은 사진이 태어나지 않습니다. 애써 부룬디까지 찾아가지 않더라도 내가 살아가는 동네에서 이웃집 아이 하나한테 사진기 하나를 선물하면서 이 사진기 하나로 내 이웃집 아이 하나가 사진삶으로 사진꿈을 북돋아서 사진빛을 일구도록 이끌면 돼요. 인도에서 뼈를 묻은 테레사 수녀님이 ‘사람들이 자원봉사를 하러 테레사 수녀님이 있는 인도로 오기’보다는 ‘사람들 스스로 태어나서 살아가는 고향나라 고향마을에서 고향이웃을 알아보며 어깨동무하기’를 바랐듯, 영화 〈꿈꾸는 카메라, 사창가에서 태어나〉는 ‘인도 사창가나 뒷골목으로 찾아가서 사진꿈을 키우자’고 하는 이야기가 아니라, ‘내 고향나라 고향마을 고향이웃과 어깨동무하는 길을 찾자’고 하는 이야기인 줄 느껴야 합니다.

 손은정 님은 “내 사진에 담을 최고의 순간을 찾기 위해, 하루하루 노력하고 감사하다 보면 내 삶은 행복해지는 것 아닐까(294쪽)?” 하고 이야기합니다. 어느 모로 보면 맞는 이야기이지만, 가만히 보면 틀린 이야기입니다.

 왜냐하면, 내 삶을 꾸밈없이 사랑하면 내 삶은 내 꿈이 자라나는 아름다운 사랑으로 빛납니다. 이러한 내 삶을 나 스스로 따사로이 보듬는다면 내 손에 쥔 사진기로 내 삶을 사랑스레 담을 수 있습니다. 다만, 사진을 찍는 나는 내 삶을 찍는 내 사진이 “최고의 순간을 찾”는 사진이 될 수 없습니다. 내 삶은 언제나 ‘가장 아름다운 나날’이거든요. 오늘이 더 아름답고 어제가 덜 아름답지 않습니다. 어제가 참 아름다웠지만 글피가 훨씬 아름다울 수 없습니다. 언제나 고마운 하루요 언제나 빛나는 삶입니다. 모자라거나 엉성한 사진이란 없습니다. 잘나거나 돋보이는 사진 또한 없습니다. 모두 삶을 담는 사진입니다. 내가 내 삶을 좋아한다면 내가 찍는 사진은 참으로 나 스스로 좋아할 만한 사진입니다. 내가 내 삶을 좋아하지 못한다면 내가 찍는 사진은 참으로 나부터 좋아할 수 없는 사진입니다.

 거듭 이야기하자면, 사진은 ‘내가 찍고 내가 즐기는’ 삶이자 사랑입니다. 사진은 남한테 보여주는 사진이 아니요, 내가 나를 사랑하려는 사진입니다.

 한 가지 덧붙여, 영화 〈꿈꾸는 카메라, 사창가에서 태어나〉는 1회용사진기를 아이들한테 건네지 않습니다. 아이들 스스로 필름을 갈아끼우는 ‘참 사진기’를 건넵니다. 사진책 《27컷, 꿈을 담는 카메라》는 1회용사진기를 기념품처럼 건네고 맙니다. 코닥회사에서 도움을 받았다면 1회용사진기 말고 ‘작고 값싼 참 사진기’를 받아서 부룬디 아이들한테 건네야지요. 한 번 찍고는 끝인 어설픈 놀잇감이 아니라, 참말로 꿈을 꾸면서 살아가는 이야기를 부룬디 아이들 스스로 담으면서 살아가도록 손길을 뻗어야지요. (4344.10.4.불.ㅎㄲㅅㄱ)


― 27컷, 꿈을 담는 카메라 (손은정 글·사진,동녘 펴냄,2011.8.5./14000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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