작은학교 책읽기


 도시에는 작은학교가 없다. 도시에서는 작은학교를 세우지 않는다. 도시에는 작은 동네조차 없다. 도시부터 작은 삶터가 아니다. 작은 삶터 아닌 큰 삶터요, 자꾸자꾸 더 커지려는 삶터인 도시이다. 이러한 도시에서는 예전부터 있던 학교는 건물을 새로 키우고, 새로 짓는 학교는 우람하다. 작지 않은 큰 학교라 한다면, 이 큰 학교는 무엇을 바라보는 배움터가 될까. 작지 않은 큰 학교일 때에는, 이 큰 학교를 다니는 아이들은 서로서로 어떻게 얽히거나 어우러지면서 지내야 할까. 작지 않은 학교를 다니는데 작은 사람들 작은 마음을 얼마나 읽거나 맞잡을 수 있는가. 커다란 학교를 다니는데 서로 더 커지려고 부딪히거나 다투거나 겨룰밖에 없지 않을까. 작은학교가 아니라면 작은 사랑 깃든 작은 책을 읽을 수 없고, 큰학교라면 작은 사람 작은 이야기 서린 조그마한 책을 알아볼 수 없지 않겠는가.

 충청북도 시골자락 살림집을 옮기려고 더 깊은 시골자락 새 터전을 찾아 여러 날 식구들과 함께 돌아다녔다. 우리 집 살림은 얼마 안 되지만, 우리 집 책이 좀 많다. 몇 만 권에 이르는 책을 건사하자면 여느 집이나 건물로는 턱없이 모자라다. 문닫은 시골마을 작은학교쯤 되어야 숨통을 튼다.

 문을 닫은 시골마을 작은학교는 쓸쓸하다. 작은학교가 문을 닫는다면, 작은학교 깃들던 마을에 아이들이 줄어들었다는 뜻이요, 아이와 어른 모두 도시로 떠났다는 소리이다. 시골마을에 사람들이 남지 않는다는 얘기이다. 어느 작은학교는 누군가 ‘깊은 시골에 깃든 기숙사 입시학원’으로 꾸려 이모저모 시설이 잘 남는다. 어느 작은학교는 마을에서 누군가 몰래 깃들어 토끼우리를 마련하고 운동장에 밭을 일군다. 어느 작은학교는 관사에 슬그머니 들어와 사는 사람이 교실마다 갖은 물건을 쌓는다. 어느 작은학교는 마을사람이 온갖 물건과 연장을 가득 쟁인다.

 네 식구 깃든 충청북도 멧골자락 학교를 떠올린다. 덩그러이 남는 건물은 으레 창고처럼 쓰이고, 휑뎅그렁하게 비는 운동장은 주차장처럼 쓰인다. 아이들 발길이 끊긴 곳에 어른들 자동차가 들어선다. 아이들은 시골에서조차 마음껏 뛰놀 흙땅을 잃고, 어른들은 신나게 내달릴 아스팔트길이나 시멘트길을 얻는다. 흙을 밟으며 찾아가서 흙을 누리던 작은학교가 자취를 감추는 한국땅은 그저 슬프다. (4344.10.2.해.ㅎㄲㅅㄱ)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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