빨래를 개는 책읽기


 어떤 교육이론 책이나 아이키우기 책에서도 아이한테 ‘다 마른 빨래를 개도록 이끌기’를 이야기하지 않으리라. 빨래를 알뜰히 잘 개는 길을 들려주는 살림책 또한 없으리라.

 나는 언제부터 빨래를 갤 줄 알았을까. 내 어머니는 나한테 언제부터 빨래를 개도록 시켰을까.

 곰곰이 돌아본다. 내 어머니는 아마 나한테 빨래개기를 시키지 않았으리라. 어버이가 되어 두 아이를 돌보며 지내는 동안 생각하는데, 아이한테 빨래개기를 시킨대서 아이가 거뜬히 잘 해내지 않는다. 내 손이 더 가고, 품이며 겨를을 더 써야 한다. 해야 할 집일은 멧더미처럼 기다리는데, 빨래 몇 점 개느라 하느작거릴 수 없다.

 우리 집 첫째는 스스로 서고 걸을 무렵부터 옆에서 빨래개기를 거들었다고 느낀다. 맨 처음 빨래개기에 손을 뻗던 날은 잘 떠오르지 않는데, 첫돌 안팎이었지 싶다. 아이 곁에 늘 있는 아버지가 날마다 수없이 빨래를 하면서(기저귀 빨래는 날마다 수없이 나오니까), 이 빨래를 날마다 쉴새없이 개는 모습을 말끄러미 바라보다가 저도 슬그머니 따라하던 일이 꽃등이었다고 느낀다.

 네 살 아이는 빨래개기를 제법 잘 한다. 아직 훌륭하다고 말할 수 없으나 꽤 잘 갠다. 아버지가 기저귀 넉 장을 갤 때에 아이는 작은 손닦개 하나를 겨우 개지만, 조금 삐끗 튀어나오는 데가 보이지만, 참 잘 갠다.

 내 어릴 적 일을 돌이킨다. 내가 빨래 한 점을 개는 사이 어머니는 서너 점을 후딱후딱 갠다. 나보다 훨씬 빠르면서 나보다 훨씬 정갈하다. 어머니는 말한다. “빨리 개려고 하지 마. 빨리 개도 엉망이면 내(어머니)가 다시 개야 하니까.” 일고여덟 살, 아홉열 살 무렵, 집에서 빨래를 개는 식구는 어머니하고 나였다. 어쩌면, 우리 아버지는 일흔이 가까운 나이에도 빨래를 갠 일이 없지 않으랴 싶다. 빨래를 어떻게 개야 정갈하고, 빨래를 정갈하게 갤 까닭이 무엇이며, 빨래를 정갈하게 개어 옷장에 건사하는 일이 무얼 뜻하는지를 아직까지 모르시리라 본다.

 아버지가 문간에서 신을 가지런히 맞추고 드나들면 아이는 똑같이 신을 가지런히 맞추며 드나든다. 바쁘다면서 신을 아무렇게나 휙휙 벗으면 아이는 똑같이 신을 휙휙 벗는다. 내가 아이한테 물려주는 빨래개기는 내 어머니한테서 물려받은 빨래개기이다. 내 몸에 아로새겨진 어머니책이 내 아이한테는 아버지책이 되어 흐른다. (4344.9.21.물.ㅎㄲㅅㄱ)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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