포토홀릭's 노트 - 게으른 포토홀릭의 엉뚱하고 기발한 포토 메뉴얼
박상희 지음 / 예담 / 2009년 12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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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사진은 똑같은 사진입니다
 [찾아 읽는 사진책 44] munge, 《포토홀릭's 노트》(예담,2009)


 어떤 사진기를 쓰든 사진은 똑같은 사진입니다. 기계마다 손맛이 다르다 하겠지요. 그런데 손맛이 달라진대서 사진맛이 달라지는 일은 없어요. 내 삶이 어떻게 흐르도록 가누느냐에 따라 내 삶맛·사진맛·손맛·사랑맛이 거듭날 뿐입니다.

 박상희(munge) 님이 일군 사진책 《포토홀릭's 노트》(예담,2009)를 읽다 보면 “멋진 카메라로 사진을 찍어대는 사람들 틈에 있자니 내 손에 들려 있는 초라한 카메라가 창피했다. 손이 부끄러웠다(17∼18쪽).” 같은 이야기가 나옵니다만, 온누리에는 멋진 사진기나 초라한 사진기가 따로 없습니다. 온누리에는 오직 사진기 하나만 있습니다. 내 사진기를 멋지다고 여기면 내 사진기는 언제나 멋집니다. 내 사진기를 초라하다고 여기면 내 사진기는 늘 초라해요.

 곰곰이 살피면, 《포토홀릭's 노트》를 일군 박상희 님은 스스로 당신 삶을 초라하다고 느끼는 나머지 당신이 손에 쥔 사진기를 초라하다고 여기고 맙니다. 이리하여 이 초라하다고 여긴 사진기로 찍은 사진을 오래도록 잊었고, ‘초라하다’고 여기며 오래도록 묵힌 사진을 오랜만에 찾아서 들여다보니 ‘뜻밖에 꽤 괜찮은 모습’이 나왔다고 느낍니다.

 이러할 수밖에 없습니다만, ‘스스로 멋지다고 여긴 사진기’에서 ‘스스로 초라하다고 여긴 사진기’로 찍은 사진하고 똑같은 사진이 나왔다면 어찌 생각했을까요. ‘뭐야, 멋진 사진기인데 사진이 왜 이 모양이지?’ 하고 생각했을까요. ‘이 멋진 사진기로는 이런 사진이 나오는구나!’ 하고 생각했을까요.

 사진기마다 느낌이 달라, 어느 사진기를 쓰느냐에 따라 사진빛이 달라집니다. 틀림없습니다. 그러나, 느낌이 달라진다 하더라도 사진에 싣는 내 이야기와 내 삶은 달라지지 않습니다. 멋진 사진기를 쓰든 초라한 사진기를 쓰든, 사진기를 쥔 나는 내 이야기와 내 삶을 내 사진기를 거쳐 내 사진으로 빚습니다. 박상희 님은 틀림없이 ‘박상희 사진’을 찍을 뿐인데, 《포토홀릭's 노트》 첫 쪽부터 끝 쪽까지 ‘박상희 사진’이 무엇인가를 제대로 깨닫지 못해요.

 《포토홀릭's 노트》는 온갖 사진기를 두루 만지면서 사랑했던 사진 즐김이 발자국을 보여주는 책이라 여길 수 있습니다. 그러나, ‘두루 만지며 사랑했다’기보다는 ‘내 사진이 어떠한 길로 예쁘게 걸어가는가’를 좀처럼 깨닫거나 알아차리지 못하면서 줄타기를 하는 아슬아슬한 모습을 보여주는 책이로구나 하고 느낍니다. 왜냐하면, 박상희 님은 박상희 사진을 찍으면 될 뿐입니다. ‘박상희 아닌 브레송인 척’하거나 ‘박상희 아닌 김기찬인 척’하거나 ‘박상희 아닌 강운구인 척’하거나 ‘박상희 아닌 쿠델카인 척’할 까닭이 없어요. 잘 찍는 사진이 없고 못 찍는 사진이 없습니다. 사진은 언제나 사진입니다. 사진에 내 이야기를 실을 수 있느냐 없느냐만 다릅니다. 사진에 내 삶을 담을 수 있느냐 없느냐만 달라요.

 “문제는 단순히 기술에 있는 것이 아니다. 사진을 찍는 사람의 기분이, 시선이, 설렘이 달라진다는 것에 있다(175쪽).”는 말처럼, 어느 사진기를 손에 쥐느냐는 하나도 대수롭지 않습니다. 《포토홀릭's 노트》라는 사진책이 수많은 사진기를 만지작거린 이야기를 다룬다 하지만, 이런 사진기를 만지작거린들 저런 사진기를 만지작거린들 ‘사진 느낌’은 하나도 달라지지 않습니다. 사진기를 손에 쥔 사람은 하나이거든요. 사진기를 손에 쥔 사람에 따라, 이 사진기를 쓸 때이건 저 사진기를 다룰 때이건, 사진마다 담기는 느낌하고 이야기는 엇비슷하거나 똑같습니다. 굳이 사진기 얼거리나 발자취를 꼼꼼히 알아보며 붙이지 않아도 됩니다. 손수 사진을 만드는 이야기를 넣지 않아도 됩니다. 박상희 님은 박상희 님이 ‘즐긴 사진’을 그야말로 ‘즐겁게 풀어놓’을 때에 가장 아름다우면서 사랑스럽습니다.

 “특별한 의도가 없는 포커스 아웃은 잘못된 것일까. 당연히 아니다. 실수였건 우연이었건 의도하지 않은 포커스 아웃은 그 나름의 멋과 의미가 있다(231쪽).”라든지 “한마디로 맛이 다르다. 컬러로 바라본 세상의 맛과, 흑백으로 바라본 세상의 맛이, 그 시선이, 그 매력이, 그 본능이 모두 다르다(349쪽).” 같은 이야기를 들려주어야 이 사진책 《포토홀릭's 노트》가 빛납니다. 박상희 님 나름대로 좋아하는 사진을 이야기하면 됩니다. 박상희 님 나름대로 즐긴 사진을 보여주면 됩니다.

 이런 사진기로는 이런 사진을 얻을 수 있다고 말을 하거나 사진을 보여줄 까닭이 없습니다. 왜냐하면, 다른 누군가는 ‘이런 사진기를 손에 쥐고 저런 사진을 얼마든지 얻으’니까요. 필름도 그래요. 이 필름을 쓴대서 꼭 ‘이런 사진이 태어나지’ 않습니다. 누군가는 이 필름을 쓰면서 ‘저런 사진을 일굽’니다.

 사진은 똑같은 사진입니다. 필름사진을 찍든 디지털사진을 찍든 사진은 늘 똑같은 사진입니다. 값나가는 장비를 쓰건 값싼 장비를 쓰건 사진은 언제나 똑같은 사진입니다. 이름난 전문 사진쟁이가 찍건 오늘 갓 사진기를 마련한 사람이 찍건 한결같이 똑같은 사진입니다.

 박상희 님은 ‘사진기’라는 굴레에 얽매이는 바람에 정작 박상희 님 스스로 좋아하면서 즐긴 ‘사진이란 무엇이었지?’ 하는 이야기는 거의 들려주지 못하고 맙니다. 부디, 맨 처음으로 사진기를 손에 쥐어 내 사진 한 장 찍던 날을 떠올리면서 사진삶이 왜 아름다운 삶으로 아로새겨지는가를 적바림할 수 있기를 바랍니다. (4344.9.14.물.ㅎㄲㅅㄱ)


― 포토홀릭's 노트 (박상희 글·그림·사진,예담 펴냄,2009.12.10./13000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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