텔레비전 책읽기
아이와 서로 손을 잡고 읍내마실을 합니다. 아이는 논둑길을 거닐며 아주 즐거워 노래노래 부릅니다. 아이 손에는 망가진 필름사진기가 들립니다. 아이는 아버지처럼 사진기를 챙겨서 마실을 가야 한다고 합니다. 논둑길을 걷다가 “어?” 하면서 멈추고는 아버지처럼 사진을 찍습니다. 필름이 없으니 새겨지지 않는 사진인데, 아랑곳하지 않습니다. 아이가 사진기로 들여다보면서 마음에 새긴다면 모두 사진이 됩니다.
아이하고 읍내를 돈 다음 피자집에 들릅니다. 읍내에 다녀올 때에 옆지기가 피자를 사올 수 있으면 사오라 이야기했습니다. 우리 시골집까지 날라다 주는 밥집은 없습니다. 옆지기는 피자보다 돼지뼈감자곰국을 먹고 싶어 했지만, 이 먹을거리를 싸서 갈 수 없고, 읍내에 돼지뼈감자곰국을 하는 데도 찾지 못했습니다. 읍내 가게에서 뼈다귀와 감자를 장만해서 내가 끓일까 생각해 보기도 하다가, 고개를 젓습니다. 나중에 함께 읍내에 나갈 때에 찾아서 먹어야지, 집에서 하지는 말자.
피자집에서 두 판을 시키고 아이랑 나란히 기다립니다. 피자집에는 커다란 텔레비전이 있습니다. 커다란 텔레비전에서 큰소리로 온갖 광고와 방송이 흐릅니다. 아이는 넋을 잃고 들여다봅니다. 한참 들여다보다가 따분해졌는지 가게 안팎을 이리저리 휘젓듯 돌아다닙니다. 나는 아이가 노는 양을 바라봅니다. 아이가 흥얼거리는 노랫소리를 듣습니다. 그러나 아이 노랫소리보다 텔레비전 소리가 훨씬 크고, 가게 앞 찻길을 달리는 자동차 소리가 더 큽니다. 깔깔거리며 지나다니는 사람들 목소리가 퍽 크고, 피자 굽는 기계가 내는 소리가 꽤 큽니다.
이것저것 장만하려고 읍내로 나오지만, 이 읍내에서 무엇을 보고 무엇을 들으며 무엇을 생각할 만한지 잘 모르겠습니다. 읍내보다 훨씬 클 시내에서는, 여느 시내보다 더더욱 클 도시에서는, 사람들이 무엇을 보고 들으며 생각할는지 하나도 모르겠습니다. 우리 시골마을 이야기이든, 두릅나무 꽃이 보름 넘게 흐드러진다는 이야기이든, 논마다 누런 벼알이 날마다 얼마만큼 익는다는 이야기이든, 달과 별과 구름과 햇살을 올려다보는 아이들 눈빛이 얼마나 맑은가 하는 이야기이든, 예나 이제나 텔레비전에 흐른 적이 없습니다. 뭐, 책이라 해서 이런 이야기를 즐겨 적바림하지는 않습니다. (4344.9.10.흙.ㅎㄲㅅㄱ)