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문명이 앗아간 지구의 살갗
데이비드 몽고메리 지음, 이수영 옮김 / 삼천리 / 2010년 11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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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흙을 만져야 내 몸이 살아난다
 [책읽기 삶읽기 77] 데이비드 몽고메리, 《흙, 문명이 앗아간 지구의 살갗》(삼천리,2010)



 혼자 책을 짊어지며 살아가던 지난날에는 언제나 ‘책을 둘 곳’을 헤아리면서 내 살림집을 찾았습니다. 책을 둘 만한 넉넉하고 볕 잘 드는 곳인가를 생각했고, 여러 책방을 가까이 찾아가기에 괜찮은 목인가를 돌아보았습니다. 내 몸이 느긋하게 쉴 곳인가는 거의 살피지 않았습니다. 사람이 살 만한 집인가보다 책이 깃들기에 좋은 데인가를 보았습니다.

 새로운 보금자리를 찾는 요즈음은 달리 생각합니다. 책은 어떻게든 곰팡이가 피지 않는 데에 둘 수 있기를 바라면서, 네 식구 깃들 사랑스러운 터전을 헤아립니다. 네 식구가 먼저 사랑스레 살아갈 만한 터전이어야 좋은 보금자리로 여겨 옮기지, 네 식구가 살가이 지내기 힘든 데라면 마음이 가지 않습니다.

 없는 살림으로는 꿈처럼 바라는 곳으로 가기 힘듭니다. 짐차를 불러 옮기는 값부터 만만하지 않으나, 좋은 시골자락 터란, 땅과 집을 장만해서 옮겨야지, 빌려서 들어가면 애써 잘 꾸며 살 만하게 고치면, 금세 집임자나 땅임자한테 쫓겨납니다. 이러다 보니 선뜻 꿈을 꾸지 못하고, 마음을 열지 못해요.

 어찌해야 좋을까를 놓고 여러 달 망설이고 알아봅니다. 이곳으로 우리 깜냥껏 옮길 만한지 가늠하고, 저곳에서 우리를 불러 주는데, 우리가 옮겨도 될 만한가 어림합니다. 어느 쪽이 되든 마땅한 집터와 책터를 찾기까지는 퍽 품을 들여야겠지요. 오래오래 눌러살 생각이라면, 네 식구가 모조리 가볍게 짐을 싼 뒤 ‘우리가 좋아할 만한’ 마을로 찾아가서 방을 하나 얻은 다음, 좋은 살림집을 찾기까지 눌러지내야겠지요.


.. 흉작일 때 아무런 구제책이 없는 소작농들은 기근 동안 음식을 구경할 수 없었지만, 시중에는 먹을거리가 많았다. 생계 수단을 잃은 농민들은 시장에서 먹을거리를 살 수 없었다 … 기근이 이어지는 동안 정부들은 곡물을 수출했고, 그렇게 20세기로 접어들었다. 소비에트 농부들은 1930년대에 굶주림에 시달렸다. 중앙정부가 농부들이 수확한 것으로 도시를 먹이고 해외시장에 내다 팔아서 번 돈으로 산업화의 비용을 댔기 때문이다 … 기근이 이어지는 동안 19세기 말 무렵에 유럽 나라들은 대개 수입 식품으로 국민들을 먹였다 ..  (154∼155쪽)


 옆지기와 함께 읽는 ‘아나스타시아’를 떠올립니다. 러시아 타이가 잣나무숲에서 살아가는 아나스타시아는 식구들이 살아갈 보금자리는 ‘스스로 가장 좋아하는 곳’으로 삼아야 한다고 이야기합니다. 둘째로 좋거나 셋째로 좋은 데가 아닌 가장 좋다고 여기는 곳으로 삼아야 한다고 말해요.

 첫째로 좋다고 여길 만한 데라기보다 둘째나 셋째로 괜찮다고 여길 만한 데로 옮기려고 생각하던 매무새를 가다듬습니다. 넷째나 다섯째 자리라 하더라도 마음을 느긋하게 내려놓을 데라면 되리라 여겼습니다. 그러나, 아무래도 첫째가 아니고서는 안 될 노릇입니다. 한 번 받은 고마운 목숨을 살아가는 나날인데, 돈 걱정이나 집 걱정에 앞서, 아름다운 삶이 되는가 아닌가를 따져야 합니다. 우리 아이들이 하루하루 자라면서 보고 들으며 부대낄 좋은 보금자리인가 아닌가를 아로새겨야 합니다.

 아침에 일어나고 저녁에 잠자리에 들면서 늘 즐거운 터전이어야 합니다. 낮에 신나게 뛰놀고 밤에 새까만 별하늘을 올려다볼 터전이어야 합니다. 흐르는 물을 마실 수 있고, 너른 멧자락과 파란 바다를 이웃할 수 있어야 합니다.

 길이 잘 뚫린 데라든지, 이름나거나 훌륭하다는 학교가 가까이 있다 한들 부질없습니다. 아이 삶을 보건대, 이런 물질과 문명은 하나도 도움이 되지 않습니다. 아이한테는 지식이 덧없습니다. 아이 삶이 가장 대수롭습니다. 날마다 숨쉬고 마시며 먹는 자연이 가장 대수롭습니다.


.. 흙의 침식이 고대사회들을 무너뜨렸고 오늘날의 사회도 심각하게 뒤흔들 수 있다는 무시 못 할 증거 앞에서도 지구적인 흙의 위기와 식량 부족이 코앞으로 다가왔다는 경고는 허공으로 흩어진다. 이미 1980년대 초반에 농업경제학자 레스터 브라운은 현대 문명이 석유보다 먼저 흙을 다 써 버릴지도 모른다고 경고했다. 지난 몇 십 년 동안 이어진 그런 불안한 예측들을 한귀로 흘려 버리면서 전통적인 자원경제학자들은 흙의 침식이 식량 안보를 위협할 가능성을 지나쳤다. 그러나 침식 탓에 농경지에서 흙이 만들어지는 속도보다 빠르게 흙이 사라지는 현실에서 그런 관점은 먼 앞날을 내다보지 못하는 것이다. 흙의 유실이 중대한 문제로 떠오르는 때가 2010년이냐 2100년이냐 하는 논쟁은 핵심을 벗어난 것이다 ..  (246쪽)


 이야기책 《흙, 문명이 앗아간 지구의 살갗》(삼천리,2010)을 읽으며 생각합니다. 서양사람들은 흙을 하찮게 여겼습니다. 오늘날에도 아직 하찮게 여기는 사람이 많습니다. 동양사람들은 흙을 거룩하게 여겼습니다. 오늘날에는 동양사람들 가운데 퍽 많은 이들이 서양사람들처럼 흙을 하찮게 여깁니다. 도시에서 살아가는 거의 모든 사람들은 흙을 하찮게 여깁니다. 도시에서 보금자리를 얻어 지낸다고 할 때부터 흙을 하찮게 여기고 맙니다.

 흙은 문명도 물질도 과학도 아닙니다. 흙은 오로지 자연이고 삶이며 목숨입니다.

 사람은 문명이나 물질이나 과학이라는 옷을 입으면, 몸을 덜 쓰거나 땀을 안 흘리면서 돈은 넉넉히 벌는지 모릅니다. 그러나, 어느 사람이라 하더라도 밥을 먹어야 하고 숨을 쉬어야 하며 물을 들이켜야 합니다. 밥·숨·물이 없이 어떤 사람이 몇 초나 살아숨쉴 수 있겠습니까. 밥·숨·물이 없는데 돈·힘·이름으로 무얼 할 수 있는가요.


.. 우리는 우리 두 발과 집, 도시, 논밭을 떠받치고 있는 땅에 대해서 그다지 깊이 생각하지 않는다 ..  (8쪽)


 이야기책 《흙》은  수많은 보기를 오랜 발자국을 더듬으면서 하나하나 알뜰히 짚습니다. 바보스레 살아온 서양 문명 사회를 낱낱이 꼬집거나 나무랍니다. 384쪽에 이르는 줄거리는 한결같습니다. 머리말에 한 줄로 적은 말마디처럼, 《흙》은 예나 이제나 “우리 두 발과 집, 도시, 논밭을 떠받치고 있는 땅에 대해서 그다지 깊이 생각하지 않는” 슬프며 안타까운 사람들 근심스럽고 안쓰러운 삶자락을 이야기합니다.

 사람은 흙을 먹고 흙을 입으며 흙에 몸을 누여 살아가는 목숨입니다. 흙을 잊는다면 사람은 사람 구실을 못 합니다. 흙하고 멀어지면 몸은 자질구레한 못난 것들이 스며들어 무너지기 때문에 자주 아프고 오래 앓습니다. 흙을 만져야 사람이 사람다울 수 있습니다. 적어도 텃밭을 돌보거나 조그마한 꽃그릇을 건사해야 사람다움을 살포시 잇습니다. (4344.9.10.흙.ㅎㄲㅅㄱ)


― 흙, 문명이 앗아간 지구의 살갗 (데이비드 몽고메리 씀,이수영 옮김,삼천리 펴냄,2010.11.26./19000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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