베르너 비숍 Werner Bischof 열화당 사진문고 7
클로드 쿡맨 지음, 이영준 옮김, 베르너 비숍 사진 / 열화당 / 2003년 1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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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사람들이 무엇을 사랑하는가를 사진으로 담기
 [찾아 읽는 사진책 50] 베르너 비숍·클로드 쿡맨, (열화당,2003)



 1916년에 태어나 1954년에 숨을 거둔 베르너 비숍(Werner Bischof)이라는 분이 있습니다. 이분은 한국땅에서 슬픈 피비린내가 나던 때에 이 나라에 찾아와서 ‘슬픈 피비린내’ 사진이 아닌 ‘사랑스러운 사람들 사랑스러운 삶’ 한 자락과 이 삶 한 자락을 뒤틀려는 가녀린 몸짓을 사진으로 담기도 했습니다.

 조그마한 사진책 《베르너 비숍》(열화당,2003)을 읽으면서 생각합니다. 이 작은 사진책은 영국 파이돈(phaidon) 출판사에서 내놓은 책을 옮긴 판입니다. 인터넷책방에서 살펴보니 영국에서 나온 판이 외려 한국에서 옮겨진 판보다 값이 쌉니다. 거꾸로 되었네 싶고, 이런 줄 미리 알았으면 영국 책으로 장만했을 텐데 하고 생각합니다. 왜냐하면 사진책으로 찍은 빛느낌이나 종이느낌은 한국 책이 영국 책을 아직 못 따르거든요. 더욱이, 굳이 ‘사진쟁이 삶을 풀어서 들려주는 이야기’를 읽지 않아도 될 뿐 아니라, 사진마다 옆에 붙인 ‘덧말’을 읽는다 해서 사진을 더 잘 읽어낼 수 있지 않아요. 그래도, “1943년, 비숍은 ‘가난과 싸우고 자유를 사랑하는 미래를 만들기 위해서 가능한 모든 것을 하는 것이 우리의 가장 큰 임무이며, 우리 일생의 임무라고 생각한다’라고 썼다(6쪽).” 같은 글월을 한글로 읽을 수 있으니 고맙습니다. “비숍은 일부러 어린이들을 택했다. 그 나라 지도자들의 죄가 어떤 것이건 간에, 어린이들은 전쟁의 무고한 희생자들이었다. 또한, 핵전쟁의 발발에 위협받고 있는 그들의 미래는 현재보다 황폐할 것 같았다(8쪽).” 같은 글월을 읽을 수 있는 일 또한 고맙습니다.

 다만, 애써 이러한 글월을 읽지 않더라도 ‘사진으로만 보았을 때’에도 베르너 비숍이라는 분이 어떠한 사진을 좋아하면서 어떠한 사진길을 걸으려 했는가를 환하게 느낄 만해요. 사진은 사진이기 때문에 사진으로 읽습니다. 사진은 사진이기 때문에 사진으로 찍습니다. 사진은 사진이기 때문에 사진으로 나눕니다.

 사진을 읽을 때에는 사진으로 읽습니다. 글을 읽을 때에는 글로 읽어요. 사랑을 읽을 때에는 사랑으로 읽습니다.

 사랑을 다른 테두리나 눈길로 읽을 수 없습니다. 그림을 다른 테두리나 눈길로 읽을 수 없어요. 사람은 사람 그대로 바라보면서 마주합니다. 내 앞에 선 사람을 이이 그대로 맞아들이며 사귈 뿐, 이이를 다른 누구로 삼거나 여기거나 견줄 수 없어요. 이이는 오직 이이 한 사람이요 이이 한 목숨입니다.

 베르너 비숍 님 사진을 읽으면서 차근차근 느낍니다. 베르너 비숍 님은 ‘사람들이 무엇을 사랑하는가를 사진으로 담는 사람’이구나 하고 느낍니다. 뉴욕을 찍은 사진이든 조개껍데기를 찍은 사진이든 쿠스코로 가는 길을 찍은 사진이든 모두 매한가지입니다. 베르너 비숍 님은 ‘당신이 찾아가서 만나는 사람’이 살아가는 터전에서 ‘이들이 무엇을 사랑하면서 껴안는가’를 가만히 지켜봅니다. 가만히 지켜보고 나서 살며시 사진기 단추를 누릅니다.

 더 좋다거나 더 나쁘다는 느낌은 없습니다. 베르너 비숍 님 당신이 느끼는 결을 고스란히 사진으로 담습니다. 사람들이 착하게 살면 착하게 사는 얼거리를 사진을 담습니다. 사람들이 바보스레 살면 바보스레 사는 줄거리를 사진으로 담아요.

 저는 골목길을 천천히 거닐며 사진을 찍을 때에 늘 느낍니다. 내가 찍는 골목길 사진은 더 예쁘게 찍는 사진이 아닙니다. 내가 찍는 골목길 사진은 이 골목길을 이루면서 살아가는 사람들이 예쁜 살림 예쁜 빛깔 예쁜 꿈넋 예쁜 손길을 고루 건사하면서 나누기 때문에, 이 모든 예쁜 모습을 내 사진으로 담아 예쁜 이야기를 꽃피울 수 있을 뿐입니다. 서로서로 사이좋게 어깨동무하는 이웃이기에 나 또한 즐거이 사진을 찍습니다. 예쁜 사랑으로 예쁜 웃음을 짓기에 예쁘구나 하고 느낄 만한 사진입니다. 억지로 예쁜 척할 수 없는 사진입니다. 예쁜 그림을 따로 만들거나 꾸밀 수 없습니다. 예쁜 삶은 예쁜 결로 묻어납니다. 만드는 사진은 티가 납니다. 살아가는 사진은 사랑이 묻어납니다.

 자그마한 사진책 《베르너 비숍》에 베르너 비숍 님 모든 삶이나 사진이나 사랑이 깃들지는 않습니다. 꼭 이만큼만 깃듭니다. 그런데, 이만큼이든 저만큼이든 삶이나 사진이나 사랑은 달라지지 않아요. 사진을 더 많이 찾아볼 수 있으면 더 잘 읽을 수 있겠습니까. 사진을 꼭 한 장만 볼 수 있으면 제대로 못 읽겠습니까.

 사진을 찍는 사람들은 사진 한 장으로 모든 이야기를 들려줍니다. 사진 한 장으로 모든 이야기를 들려주는 사진쟁이는 사진 백 장을 그러모아서 또다른 이야기를 싱그러이 들려줍니다. 꿈을 노래합니다. 빛을 나눕니다. 넋을 보살핍니다. 흙을 사랑합니다. 한국땅 사진쟁이들한테 베르너 비숍이 착하고 해맑게 읽힐 수 있는 날이 오기를 손꼽아 기다립니다. (4344.9.3.흙.ㅎㄲㅅㄱ)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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