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함께 살아가는 말 71] 봉숭아물

 몹시 힘든 몸으로 옆지기가 첫째 아이 손가락과 발가락에 봉숭아물을 들입니다. 봉숭아 잎과 꽃은 이달 첫머리부터 꾸준히 따서 갈무리했지만, 막상 봉숭아물을 들일 겨를을 내지 못해 그동안 모두 버리고 말았습니다. 음성 할머니 댁에서 봉숭아 잎과 꽃을 잔뜩 얻어 드디어 곱게 빻아 예쁘게 물을 들입니다. 이동안 갓난쟁이는 젖 달라 재워 달라 앙앙 웁니다. 그렇지만 어쩌는 수 없습니다. 어찌 되든 다 마무리를 지어야 갓난쟁이를 곱다시 재울 수 있습니다. 고단한 집식구가 모두 잠든 깊은 밤, 풀벌레 소리를 들으며 꿈결을 헤매다가 어릴 적 이야기가 떠오릅니다. 학교에서 “울 밑에 선 봉선화(鳳仙花)” 노래를 배웠습니다. 동무나 동네 어른은 누구나 ‘봉숭아’라 했지만, 교과서에는 봉숭아가 나오지 않습니다. 언제나 ‘봉선화’였습니다. 동무들은 봉숭아와 봉선화가 다른 꽃이라 여기며 말다툼을 했고, ‘봉선아’나 ‘봉숭화’처럼 잘못 쓰는 아이가 많았습니다. 중학교 때였나, 누군가 “울 밑에 선 봉숭아야.” 하고 잘못 불렀다가 음악 선생한테 흠씬 엊어맞았습니다. 고즈넉한 노래에 ‘봉선화’라 해야지, 어울리지 않게 ‘봉숭아’가 뭐냐고 다그쳤습니다. 내 어릴 적 고향동무들은 아직도 두 가지가 다른 꽃이라고 여깁니다. 옆지기는 손가락에 봉숭아물 들이면 봉숭아 내음이 좋다고 이야기합니다. (4344.8.31.물.ㅎㄲㅅㄱ)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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