불새 2
데즈카 오사무 지음 / 학산문화사(만화) / 2002년 1월
평점 :
절판


 

<불새>는 2011년에 새로 찍어 '세트판'으로만 다시 살 수 있습니다. 하나하나 뜯어 읽을 값이 아주 크기에, 이렇게 낱권으로 느낌글을 적습니다.



 한길로 이어지는 한결같은 사랑
 [만화책 즐겨읽기 57] 데즈카 오사무, 《불새 2》


 후덥지근한 무더위입니다. 가만히 앉거나 누워도 땀이 흐릅니다. 방에 있는 온도계는 28℃밖에 안 되지만 몹시 괴롭습니다. 햇볕이 쨍쨍 내리쬐며 온도계가 30℃나 31℃까지 되던 날보다 훨씬 괴롭습니다.

 어떻게 이처럼 괴로울 수 있을까 모르겠지만, 하루하루 무너지는 자연 터전을 헤아린다면, 자연을 무너뜨린 사람으로서 후덥지근한 무더위에 괴로워 할 수밖에 없습니다. 한 사람이 잘못했든 만 사람이 잘못했든 모든 사람들이 후덥지근한 무더위에 지치거나 괴로워야 합니다.


- “나기, 난 30년 간 히미코 님을 모셔 왔다. 그것도 온마음을 다해서. 무려 30년이나 인생을 허비한 거야. 그리고, 지금 무엇이 남았을 것 같냐? 내가 정말 어리석었지. 그러니 나기, 너만은 나같은 청춘을 보내지 말아라. 인간의 일생에는 여러 가지 목적이 있어.” “싫어!” (18∼19쪽)
- “풀이다. 이런 구멍 밑바닥에 풀이 나 있다니. 그래, 구멍 입구에서, 씨앗이 떨어져, 약간의 햇빛과 빗물로 여기만 풀이 자랐구나! 으음, 먹을 수 있어. 마, 맛있다. 얼마든지 먹을 수 있겠어. 난 살아남을 거야! 하나쿠와 함께 살고 말 거야!” (27쪽)



 만화책 《불새》 2권을 읽습니다. 《불새》 1권에서는 사람들이 일구는 삶이 어떠한 모습인가를 가만히 보여줍니다. 머나먼 옛날 사람들은 무엇을 꿈꾸고 무엇을 생각하며 살았는가를 차분히 이야기합니다.

 현대 물질문명하고 견주어 이른바 ‘미개’하거나 ‘원시’라 할 만하대서 ‘나쁘’다고 할 수 있는 머나먼 옛날이 아닙니다. 옛날은 옛날대로 아름다운 삶입니다. 오늘은 오늘대로 아름다운 삶이에요. 더 낫거나 덜 나은 삶이란 없어요. 모두 사랑스러운 어버이요, 저마다 사랑스러운 아이요, 다 함께 사랑스러운 벗이자, 서로서로 사랑스러운 이웃입니다.

 한식구끼리 조그맣게 모여서 살림을 꾸려도 아름답고, 여러 식구가 마을을 이루어 조금 크게 살림을 꾸려도 아름답습니다. 다만, 스스로 밥과 옷과 집을 마련하는 일을 하지 않고 ‘부족을 다스린다’고 하는 우두머리가 나타날 때에는 하나도 아름답지 않습니다. 부족이든 고대국가이든 나라이든, 우두머리 자리에 서는 사람은 모든 사람들이 서로 아끼고 사랑하며 지내는 터전보다는, 이웃나라로 쳐들어가며 땅을 넓히고 힘을 키우는 데에 사로잡히거든요.


- 학설에 따르면 대륙에서 온 기마민족 가운데 누군가가 일본 원주민을 정복하고 야마토에 수도를 세웠다고 한다. 일본은 이렇게 침략과 전쟁, 살육의 역사 속에서 점점 국가로서의 형태를 잡아 갔던 것이다. (79쪽)
- “당신, 쿠마소의 생존자라지?” “그래.” “쿠마소는 우리 야마타이국에 의해 멸망했지?” “…….” “모두들 죽임을 당했어?” “그래.” “정말 한 명도 남김없이 죽은 거야?” “여자며 아이들, 갓난아기까지?” “이유도 없이?” “거짓말, 거짓말이야! 우리가 그렇게, 끔찍한 짓을 저질렀을 리 없어.” “정말이야! 그건 분명 너희 군대가 저지른 짓이야. 이번엔 너희에게 그 차례가 돌아온 거라구.” “그럼 당신은 우리가 더없이 밉겠지? 그런데 왜 우리 편이 된 거지?” “왜 너희 편이 됐냐고? 누가 너희 편이라는 거야? 난 죽고 싶지 않을 뿐이야.” (109∼110쪽)


 싸움터에는 사내들이 나섭니다. 싸움터에 가시내들이 나서는 일은 거의 없거나 아주 드뭅니다. 싸움터에 나서는 사내들은 이웃 부족이나 겨레나 나라를 아낌없이(?) 괴롭히면서 죽입니다. 갓난쟁이라 하든 가녀린 어머니라 하든 가리지 않습니다. 빈틈없이(?) 훑으면서 개미새끼 한 마리 살아남지 못하도록 깡그리 죽입니다.

 나는 국민학교 다닐 때부터 역사를 배우는 자리에서 ‘옛 고구려가 땅을 넓혔다는 이야기’를 들으면서 어깨가 조금도 우쭐하지 않았습니다. 우리 겨레가 수없이 이웃나라 창과 화살에 시달리면서 고달팠다는 이야기를 들으면서 슬플 뿐 아니라, 쳐들어오는 이웃나라 사람들 또한 슬프다고 느꼈습니다.

 사람이 사람을 죽여 돈을 얻거나 여자를 빼앗거나 땅을 넓히는 일이 즐거울 수 있나요. 사람이 사람을 죽이는 전쟁무기를 더 튼튼하고 더 세며 더 우악스레 만드는 일이 ‘문명 발돋움’이라 할 수 있나요. 돌에서 청동기로 넘어가고 쇠붙이로 다시 넘어가는 일은 ‘여느 사람들 살림살이 연장’이라는 테두리에서 살피지 않습니다. 노상 ‘전쟁무기가 더 힘세거나 대단해진다’는 테두리에서 살펴요.

 조선 때 이순신이라는 분이 만든 거북배 또한 전쟁무기입니다. 최무선이라는 분이 만든 대포나 화약 또한 전쟁무기예요.

 이웃나라에서 자꾸 쳐들어오니까 이 나라를 지키려고 전쟁무기를 만들어야 했다지만, 막상 이 나라 우두머리 노릇을 하거나 정치를 하는 이들이 벌인 일이나 마련한 제도를 살피면, ‘조금도 여느 사람들 살림살이를 걱정하거나 살피지 않았’구나 하고 느낄 수 있습니다. 흙을 일구는 여느 사람들이 군대로 끌려가서 이웃나라와 싸우며 지킨 것이란 그저 ‘임금님 자리’였습니다.


- “죽은 노예 녀석 따위 깨끗이 잊어버리고 내게 와라.” “싫어요!” “뭐라고? 싫어? 왜지? 천하를 쥔 내게 무엇이 불만인 거지?” “내겐 당신이 살인에 미친 자로밖에 보이지 않아요.” “나는 승리자다. 널 복종시키고 말겠어. 이리 오너라, 우즈메.” “오호호호호호호, 내 뱃속에는 그 사람의 아이가 있어요.” “뭣이? 사루다히코의 아이라고? 그 아이가 태어난단 말이냐?” “그래요, 앞으로 다섯 달만 지나면. 호호호, 어때요? 대량학살의 승리자님, 야마타이국의 인간은 또다시 태어날 거예요. 당신은 강물처럼 피를 흘리며 모두를 멸망시킬 셈이죠. 그리고는 이겼다고 생각하나요? 호호, 착각 말아요. 우리 여자들에게는 무기가 있어요. 승리한 당신의 군사들과 결혼해 아이를 낳는 거죠. 태어난 아이는 우리의 아이예요. 우리는 그 아이들을 키워 언젠가 당신을 멸망시킬 거예요.” (145∼146쪽)


 데즈카 오사무 님 만화책 《불새》 2권에서는 어머니 자리와 빛줄기를 이야기합니다. 가시내라고 하는 사람이 어떤 목숨이요, 어떤 넋이고, 어떤 사랑으로 살아가는가를 따사롭게 이야기합니다. 어머니가 있기에 삶이 있고, 어머니가 있어서 삶이 따스합니다. 어머니한테서 새 목숨이 태어나고, 어머니한테서 새 사랑이 피어납니다.

 어머니들은 싸움을 일으키지 않습니다. 어머니들은 싸움을 일으킬 까닭이 없습니다. 어머니들은 갓 태어난 아기를 돌보면서 사랑을 물려줍니다. 갓 태어나 기거나 걷기까지 몇 해가 걸리는 아이들을 사랑으로 돌봅니다. 말을 익히고 스스로 수저를 쥐어 밥을 먹기까지 여러 해가 걸리는 아이들을 사랑으로 보살핍니다.

 어머니들은 이웃나라 땅을 빼앗지 않습니다. 어머니들은 이웃나라 땅을 빼앗을 까닭이 없습니다. 조그마한 보금자리에서 조그마한 먹을거리를 얻어 조그마한 한식구를 넉넉히 먹일 수 있습니다. 이웃나라에는 이웃나라대로 또다른 목숨을 사랑하고 아끼는 어머니가 살아갑니다. 그러니까, 내 나라에서는 내 나라대로 내 아이를 사랑할 노릇이요, 이웃나라에서는 이웃나라대로 저희 아이를 사랑할 노릇이에요.


- ‘살아야 해!’ ‘누가 날 부르는 거지? 난 이제 죽을 거야. 불새 너냐? 네가 나한테 말하고 있는 거야?’ ‘그래. 당신은 죽으면 안 돼. 무슨 일이 있어도 살아남아야 해!’ ‘왜지? 왜 내가 살아야 하는데?’ ‘당신에겐 살 권리가 있으니까.’ ‘권리? 권리가 뭐지?’ ‘당신은 지금 살아 있어. 그러니까 계속 살 수 있다구!’ (159쪽)


 한길로 이어지는 한결같은 사랑입니다. 한길로 이어질 한결같은 목숨입니다.

 무시무시한 무기를 앞세워 지구별 모든 나라를 발밑에 짓밟는대서 거룩한 임금이나 훌륭한 우두머리가 되지 않습니다. 따사로운 품으로 너그러이 사랑을 나누는 조그마한 어머니 한 사람이 될 때에 비로소 거룩한 님이 되면서 훌륭한 삶이 돼요.

 그런데, 싸움을 일으켜 넓디넓은 땅을 차지하며 우쭐거리는 사람들은 역사책에 이름이 적힙니다. 싸움을 일으키지 않을 뿐더러, 오직 사랑과 믿음으로 따사로운 품을 나눈 어머니들은 어느 누구도 역사책에 이름이 적히지 않습니다.

 역사책에 이름이 적히는 일이 뜻있을까 궁금합니다. 범은 죽어서 가죽을 남기고 사람은 죽어서 이름을 남긴다니까, 싸움을 일으켜야 하거나 경제성장을 이루어야 하거나 올림픽 같은 운동경기에서 노란 메달을 따야 하는지 궁금합니다. (4344.8.30.불.ㅎㄲㅅㄱ)


― 불새 2 (데즈카 오사무 글·그림,최윤정 옮김,학산문화사 펴냄,2002.1.25./4500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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