열두 달 숲 이야기 - 열두 달 자연 이야기 1-자연의 아이들
이름가르트 루흐트 지음, 김경연 옮김, 이은주 감수 / 풀빛 / 2006년 12월
평점 :
절판




 열두 달이건 열두 해이건 판에 박은 도시살이
 [다 함께 즐기는 그림책 48] 이름가르트 루흐트, 《열두 달 숲 이야기》(풀빛,2006)



 숲에서는 열두 달에 걸쳐 열두 빛깔 다 다른 이야기가 펼쳐집니다. 열두 달에 걸쳐 열두 빛깔 다 다른 이야기가 펼쳐지는 숲에서는 다달이 서른 갈래 새삼스레 다른 이야기가 자그맣게 이루어집니다. 다달이 서른 갈래 새삼스레 다른 이야기가 자그맣게 이루어지는 숲에서는 날마다 스물네 가닥으로 눈부시게 다른 이야기가 샘솟습니다.

 삼백예순닷새라 하는 나날은 삼백예순닷새만큼 다릅니다. 가을 들머리를 맞이한 숲은 나뭇잎 끄트머리에 살며시 노란 물이 들고, 날마다 조금씩 노란 물이 넓어집니다. 퍽 늦게까지 푸른 빛깔을 뽐내는 나뭇잎이 있지만, 가을이 한창 깊을 무렵이면 모든 잎이 노랗게 물들다가는 톡 하고 떨어져 가랑잎이 됩니다.

 겨울에도 푸른 빛깔을 잃지 않는 나무가 있습니다. 언제나 푸른 빛깔이 싱그러운 나무가 있어요. 그런데 이들 푸른나무라 하더라도 봄에 가만히 바라보면 새로 돋은 잎사귀는 겨울을 난 잎사귀하고 풀빛이 달라요. 여름에도 풀빛은 사뭇 다르고, 가을로 접어들면 지난겨울을 이긴 풀빛과 새로 겨울을 맞이하려는 풀빛이 차츰 닮습니다. 그리고, 다 함께 겨울을 새로 나고 나면 거의 닮은꼴이 돼요.


.. 동물이 없는 숲을 상상할 수 있니? 분명 없을 거야. 다양한 식물들이 많이 자라는 곳에는 다양한 동물들이 살아. 작은 동물일수록 더 많이 살지. 숲은 층층마다 동물들이 살 집을 마련해 두고 있어 … 식물과 달리 동물들은 가장 작은 것이 가장 중요해. 수사슴과 노루가 없어도 숲은 잘 유지될 수 있어. 하지만 땅을 뚫는 작은 동물, 예를 들어 지렁이 같은 동물이 없으면 문제가 생길 수 있단다 ..  (10쪽)


 숲에서는 숲바람이 붑니다. 바다에서는 바닷바람이 붑니다. 들에서는 들바람이 붑니다. 멧자락에서는 멧바람이 불겠지요.

 시골에서는 시골바람입니다. 도시라면 도시바람일 테지요. 그런데 도시에는 길가에 억지로 심은 나무 말고는 스스로 씨앗을 떨구어 스스로 뿌리를 내리어 스스로 줄기를 올리는 나무가 거의 없습니다. 도시에서는 나무들이 씨앗을 떨굴 흙이 거의 없습니다. 나무 아닌 여느 풀조차 도시에서는 삶자리를 찾기 빠듯합니다.

 어쩔 수 없지만, 도시는 나무가 살라 하는 곳이 아닙니다. 도시는 온갖 풀이 저마다 다른 풀빛을 뽐내라 하는 데가 아닙니다. 도시는 꽃이 흐드러지게 피라는 터가 아닙니다. 도시는 새들이 지저귀고 개구리가 우짖으며 풀벌레가 노래하라는 보금자리가 아니에요.

 도시는 오직 사람들이 돈을 많이 벌고 돈을 많이 쓰라 하는 마당입니다. 도시는 사람 아닌 목숨붙이는 발을 디디지 말라 하는 자리입니다. 도시에 수없이 뻗은 길은 자동차가 쉴새없이 빠르게 오가라는 줄기입니다. 도시에 길디길게 뻗은 길에서는 자전거조차 마음 놓고 오가기 힘듭니다. 도시 어디로든 이어진 길에서는 사람들이 두 다리로 걷기조차 벅찹니다.

 더 많은 사람을 끌어들이는 도시는 더 많은 사람이 더 많은 일자리를 마련해서 더 많이 경제성장을 이루어 더 높이 물질문명을 이룩하려 할 뿐입니다. 숲속 푸른 그늘을 바라는 도시란 없습니다. 숲속 아름다운 노랫소리를 즐기려는 도시란 없습니다. 숲속 갖은 짐승들이 어우러지도록 하려는 도시란 없습니다. 산들바람이나 봄햇살이 드리울 수 없는 도시입니다. 무지개나 뭉게구름이 깃들 수 없는 도시예요.

 이 도시는 사람 많고 자동차 많으며 기계 많습니다. 수많은 사람들을 어디에서나 쉽게 부대낍니다. 그렇지만, 사람이 사람다이 살라 하는 도시가 아닌 만큼, 이 도시에서 숱한 사람들한테 둘러싸였어도 누구나 외로움을 타고야 맙니다. 사람을 헤아리며 사람들이 사랑을 나누도록 이끄는 도시가 아니기 때문입니다.


.. 숲에서 사는 대부분의 동물은 초식동물이야 … 동물들이 천적을 갖고 있는 것도 숲에게는 좋은 일이야 … 숲속의 동물들은 모두 다른 동물에게 양분을 나눠 주는 소중한 생물이야 ..  (11쪽)


 이름가르트 루흐트 님이 빚은 그림책 《열두 달 숲 이야기》(풀빛,2006)를 읽습니다. 《열두 달 나무 이야기》(풀빛,2006)하고 함께 나온 《열두 달 숲 이야기》는 열두 달에 걸쳐 숲속에서 어떤 일이 벌어지는가를 꼼꼼히 그려서 차분하게 보여줍니다. 그림과 나란히 찬찬히 적바림한 글을 읽으면, 그림을 볼 때에 미처 짚지 못하거나 살피지 못한 대목을 구석구석 알뜰히 받아들일 수 있습니다.


.. 식물들은 우리가 아무 생각 없이 만들어 내는 유해 물질이나 유독 물질들로 더 빨리 병이 들어. 우리가 공장과 자동차에서 그을음이라든가 먼지, 배기가스 같은 것들을 공기 중에 배출하기 시작했을 때는 금방 알아차릴 수 없었어. 아니, 오히려 공기를 깨끗하게 걸러 주었다며 숲을 칭찬했지. 실제로 숲은 오랫동안 오염된 공기를 다시 정화할 수 있었어. 하지만 나무들이 그 많은 더러움과 독을 모두 부담할 수는 없어. 또 언제까지나 그럴 수도 없지. 숲은 수백만 개의 굴뚝과 배기관에서 너무 여러 가지 유해 물질을 대기 속으로 뿜어낸 바람에 숨이 막혀 버렸어 … 우리 인간들도 자연의 일부야. 이 유독한 환경에서 우리는 얼마 동안 살 수 있을까? ..  (12쪽)


 어쩌면, 이 그림책 《열두 달 숲 이야기》에 나오는 이야기를 모르는 어른은 아무도 없다 할 만합니다. 아이들한테 이 그림책을 읽어 주는 어른이라면, 이 그림책에서 밝히는 이야기쯤이야 ‘초등학교에서 다 듣거나 배웠’으며, ‘중·고등학교에서 입시 시험을 치르며 다 안다’고 여길 만합니다.

 이 나라 도시를 돌아보면서 우리 어른들 삶을 톺아볼 노릇입니다. 어른이라면 다 알 만한 이 그림책 이야기를 어른들은 얼마나 ‘받아들여서 살아낼’까요. 살아내지 않고 머리에 담기만 하는 앎조각이란 얼마나 쓸모있거나 어느 만큼 아름답다 할까요.

 자연이 무너지거나 망가지는 일은 남 탓이라 하면 될는지요. 막개발을 일삼거나 4대강사업을 밀어붙이는 몇몇 사람들이 잘못했기에 이 나라 자연이 허물어지거나 더럽혀지는지요.


.. 시간은 알지 못하는 사이에 흘러. 겨울이 가면 봄이 오고, 봄이 가면 여름이 오고, 여름이 가면 가을이 오지. 이제 다시 겨울이야. 영원한 순환이 새로 시작되는 거지 … 12월과 함께 한 해가 끝나고 이 책도 끝나. 하지만 자연에는 끝이란 게 없단다. 변화만이 있을 뿐이야. 위에 보이는 너도밤나무 가지가 우리에게 그것을 일깨워 줄 거야. 마지막 잎들이 윤기를 잃고 바싹 말라 있기는 하지만 이미 새로운 생명이 숨어 있단다. 그리고 이 일은 언제까지 계속될 거야 ..  (34쪽)


 그림책 《열두 달 숲 이야기》는 목소리를 높여 외치지 않습니다. 그저 숲속에 깊이 들어가 숲속에서 숲살이를 하면서 숲속 삶고리를 조곤조곤 들려줍니다. 먼 옛날부터 이어졌고, 오늘날에도 이어지며, 앞으로도 이어질 수 있는 이야기를 속삭이듯 들려줍니다.

 다만, 앞으로 이어지지 못할까 걱정스러운 숲살이인 터라, 앞으로 감쪽같이 사라지며 사람들 삶터 또한 송두리째 스러질까 근심스러운 도시살이인 터라, 도시사람들 읽으라고, 도시에서 아이를 낳아 키우는 어버이들이 당신 아이들하고 함께 읽으라고, 그림책 《열두 달 숲 이야기》는 가장 수수하면서 가장 마땅하고 가장 자연스러운 이야기를 들려줍니다.

 열두 달이면 열두 달이 다 다른 숲살이입니다. 열두 달이면 열두 달이 다 어슷비슷하거나 똑같은 도시살이입니다. 열두 달이건 열두 해이건 백스무 해이건 언제나 같은 모양 같은 꼴로 되풀이되는 톱니바퀴 같은 도시살이예요. 이 도시에서 사람들은 무슨 꿈을 어떻게 꾸며 누구하고 어느 만큼 나누려고 할까 자못 궁금합니다. (4344.8.29.달.ㅎㄲㅅㄱ)


― 열두 달 숲 이야기 (이름가르트 루흐트 글·그림,김경연 옮김,풀빛 펴냄,2006.12.27./1만 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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