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나스타시아 아나스타시아 1
블라지미르 메그레 지음, 한병석 옮김 / 한글샘 / 2007년 10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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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마음을 열어 서로를 사랑해요
 [푸른책과 함께 살기 89] 블라지미르 메그레, 《아나스타시아》(한글샘,2007)



- 책이름 : 아나스타시아
- 글 : 블라지미르 메그레
- 옮긴이 : 한병석
- 펴낸곳 : 한글샘 (2007.10.20.)
- 책값 : 1만 원



 (1) 몸으로 느끼는 삶


 국민학교와 중학교와 고등학교를 다니는 동안, 학교에서는 ‘자연을 모르도록’ 가르쳤습니다. 자연을 굳이 알아야 하지 않는다고 가르쳤고, 자연을 ‘사람 쓸모에 맞게 고치거나 손보거나 바꾸면’서 살아야 한다고 가르쳤습니다.

 학교에서는 ‘하늘바라기’를 하며 논밭을 일구는 옛사람을 아주 바보스럽거나 어리석다고 여기도록 가르쳤습니다. 하늘을 보며 흙을 일구니 가뭄이나 큰물 때마다 엉망이 된다고 가르쳤습니다. 둑을 쌓고 못을 만들며 냇물을 돌려야 한다고 가르쳤습니다. 비가 오지 않는다고 푸닥거리 비슷하게 하는 일이란 엉터리요, 비가 오지 않을 때를 헤아려 못을 만들거나 댐을 쌓아야 한다고 가르쳤어요.

 도시에서 태어나 도시에서 어린 나날과 푸른 나날을 보냈으니, 이렇게 가르치든 저렇게 가르치든 무엇이 맞거나 옳거나 그르거나 틀린가를 제대로 가누기는 어렵습니다. 다만, ‘하늘바라기’를 하며 논밭을 일구는 일이 바보스럽다 하는 오늘날이라 해서 가뭄이나 큰물 때문에 애먹는 일이 없냐 하면, 아니었어요. 외려 해마다 ‘가장 끔찍한 가뭄’이니 ‘가장 모진 큰물’이니 하는 말이 넘쳤습니다. 둑을 쌓으면 더 무서운 큰물이 도지고, 냇물을 건드리면 더 끔찍한 물벼락이 내렸습니다.

 게다가, 하늘바라기는 바보스럽다 하면서, 막상 장마가 오래 이어져 햇살이 드리우지 못하면 가을걷이가 걱정스럽다고들 말합니다. 제아무리 비닐집 농사를 많이 짓는다 하더라도, 이제 열매나무마저 비닐집에서 기르기도 한다지만, 흙과 바람과 물과 햇살이 없이 열매나 곡식이나 푸성귀를 얻을 수는 없습니다.

 학교에서 왜 하늘바라기를 나쁜 짓이라도 되는 듯 가르쳤는지는 모릅니다. 교과서는 왜 하늘바라기를 어리석은 짓이라고 여겼는지 모릅니다. 한자말로 하자면 ‘미개’하고 ‘무식’하며 ‘원시적’이라고들 한 까닭을 모르겠습니다.

 다만, 나는 학교에서 이런 말을 들으면 들을수록 더 하늘바라기를 좋아했습니다. 옛사람은 바람 내음을 맡으면서 날씨를 짚고, 구름 모양과 먼 하늘을 살피며 날씨를 읽지 않았나 하고 생각했습니다.


.. “사람한테 먹는 건 문제가 아니야. 먹기는 숨쉬기처럼 의식하지 않고 해야 해. 그것 땜에 중요한 생각을 끊을 수는 없지. 그 일을 조물주는 다른 존재에게 맡겼어. 사람이 사람의 일을 하면서 사람답게 살 수 있도록 말이야 … 옷을 입고 추위와 더위를 피하는 사람의 몸은 환경에 적응하는 능력이 점점 더 약해졌기 때문이야. 나는 사람의 원래 능력을 잃지 않았고, 그래서 내겐 옷이 별로 필요없어.” … 조그만 자기 땅에 심으니까 식물을 한 포기 한 그루 다 알게 되고, 바로 그 식물들과 소통이 이루어지는 거야. 덩치만 괴물같이 큰 쓸모없는 기계들이 돌아다니며 끝도 없이 인적이 드문 들판에 심은 식물은 안 돼.” … “세상의 모든 기계는 하나같이 다 폭발 에너지에 의존해 움직이지. 더 완전하며 자연스런 에너지의 근원이 있음을 모르고 그 원시적이고 덩치가 큰 걸 고집스럽게 이용하는 거야. 그걸 이용하다 보니 죽음의 결과가 초래되어도 사람은 멈추질 않아.” … “가장 해를 끼치는 것은 자동차들이야. 대도시에 너무 많아. 모든 차에서 냄새도 불쾌하고 몸에도 해로운 물질들이 나와. 그것은 흙이나 먼지의 입자들과 섞여 축축해져. 그게 가장 나쁜 거야. 자동차가 움직이면 이 젖은 먼지가 일어나고 그걸 사람이 들이마시게 돼. 그건 또 사방으로 퍼져서 풀에도 나무에도 앉아서 모든 것을 덮어 버려. 아주 나빠.” ..  (42, 43, 83, 120, 128쪽)


 고등학교를 마치고 고향 인천을 떠나 서울로 갔습니다. 대학교 앞 신문사지국에서 먹고자면서 지냈습니다. 새벽에 일어나 신문을 돌리고, 아침에는 신문을 읽으며, 낮에는 학교를 다니며 배웠습니다.

 새벽에 일어나 신문을 돌리려는 사람은 저녁부터 이듬날 날씨를 걱정합니다. 비가 오느냐 안 오느냐, 비가 오면 얼마나 오느냐.

 신문을 돌리는 사람들은 신문에 실리는 ‘이듬날 날씨 이야기’를 읽고, 텔레비전에서 흐르는 ‘날씨 소식’을 듣습니다. 그러나, 신문이나 방송에 나오는 날씨는 믿지 않습니다. 신문을 돌리는 일꾼이면서 정작 신문 날씨 이야기는 믿지 않아요.

 지국장님부터 하늘을 살폈습니다. 구름 두께와 크기와 모양을 돌아봅니다. 바람이 어디에서 어디로 부는가를 헤아리고, 바람에 물기가 어느 만큼 묻었는가를 느낍니다. 새벽에 일어나 깜깜한 밤하늘을 올려다봅니다. 서울 시내 밤하늘에 별이 보이겠느냐만, 밤하늘 구름을 어림합니다. 먼 하늘 끝을 바라봅니다. 신문·방송 날씨 이야기에는 비가 없다 하더라도, 또는 10%나 20%라는 숫자로 나오더라도, 신문을 돌리는 일꾼으로서는 빗방울이 하나라도 듣는다면 신문이 젖습니다. 비가 오는 소식은 5%나 90%로 따질 수 없습니다. 비가 100% 온다 하더라도 신문을 돌리는 동안에는 비가 안 올 수 있고, 사람들이 신문을 꺼내어 읽을 때까지 비가 멎을 수 있어요. 비가 10%나 30%라 하지만, 막상 신문을 돌릴 때에는 비가 퍼부을 수 있습니다. 그러니까, 신문을 돌리는 일꾼은 신문과 방송 이야기를 믿지 않고 듣지 않습니다. 오직 몸으로 살피고 몸으로 알아차리며 몸으로 느낄 뿐입니다.


.. “사람은 모든 걸 조절할 수 있어. 원래 창조 때부터 모든 걸 조정할 수 있게 만들어졌어. 내가 당신에게 말하는 빛줄기란 사람 누구에게서나 있는 지식, 인상, 직감, 영혼의 느낌이고, 결국은 꿈과 비슷한 것이므로 사람의 의지로 조정이 가능해 … 사람은 자신을 조절하는 자연적인 능력을 대부분 잃었어. 그래서 지구상의 사람 거의 모두가 꿈을 피곤에 지친 뇌의 부산물이라 생각해 버리는 거지.” … “빛으로 따뜻하게 했다고? 그럼 내 빛은 차가워?” “당신은 그냥 호기심으로 봤지, 감정은 쏟아넣지 않았어.” … “무슨 조건인데?” “반드시 마음이 깨끗해야 해. 빛의 힘은 깨끗한 마음에 달려 있거든.” … “어느 누구도 당신 몸을 대신할 순 없어. 몸이 주치의고 하느님이 직접 당신한테만 내린 거니까. 당신이 건강히 살도록 몸이 설명해 주는 거야.” ..  (52, 54, 55, 90쪽)


 오늘날 한국에서 흙을 일구는 사람들은 흙바닥을 흙바닥으로 두지 않습니다. 흙바닥에 비닐을 길고 넓게 깝니다. 두 달이든 석 달이든 푸성귀를 심어 거두는 동안 흙바닥은 비닐바닥이 됩니다. 비닐바닥이 되면 구멍을 뚫은 자리에서만 푸성귀가 자라고, 다른 데에서는 다른 풀이 고개를 내밀지 못합니다. 해를 받지 못하고 비를 받지 못하도록 막습니다. 이렇게 하면 풀을 베느라 품을 들이지 않아도 됩니다.

 이 나라에 풀약이 들어온 뒤부터, 소금밭을 돌보는 일꾼들은 이 풀약을 썼다고 합니다. 먼 옛날에는 소금밭에서 자라는 풀을 모두 손으로 뜯거나 베었을 테지만, 풀약이 생긴 뒤부터 소금밭에서는 으레 풀약을 써서 풀을 죽인답니다. 이렇게 하지 않으면 손이 너무 많이 갈 뿐 아니라, 몹시 힘들답니다.

 일본 후쿠시마에서 원자력발전소가 터져서 방사능에 더럽혀지는 일을 걱정하는 사람이 많습니다만, 이제는 방사능을 걱정하는 목소리도 많이 수그러들었지 싶습니다. 왜냐하면, 사람들은 아주 바쁘거든요. 사람들 눈길을 끌거나 마음을 사로잡는 새로운 이야기가 아주 많거든요. 사람들은 모두 돈을 더 벌어 돈을 더 써야 하는 굴레 같은 삶에 매였거든요.

 방사능 비가 내려 소금밭이 더러워지기 앞서, 이 나라 소금밭은 아주 오래오래 풀약 기운이 배거나 찌들었습니다. 소금이란 그냥 소금이 아닌 풀약, 그러니까 한자말로는 제초제에 찌든 소금입니다. 더구나, 소금밭에서 얻은 소금이 아니라 공장에서 화학방정식으로 만든 화학소금을 훨씬 많이 먹습니다. 모든 화학식품, 그러니까 가공식품은 소금밭 소금이 아닌 공장 소금인 염화나트륨을 씁니다. 소금밭에서 거두는 소금으로는 가공식품을 만들 수 없어요.


.. “나? 내가 줄 수 있는 게 뭐냐고? 천상의 부드러움을 한 방울 줄게. 평화를 줄게. 당신은 밝은 눈의 천재가 될 거야. 난 당신의 형상이야 … 난 좋은 일, 밝은 일만을 원했고, 지금도 그래. 난 당신이 깨끗해졌으면 좋겠어.” … “사람한테는 최대의 자유-밝음과 어둠을 선택할 수 있는 자유가 주어졌어. 사람한텐 영혼이 부여되었어. 보이는 모든 것이 사람한테 굴복해. 사람은 또 하느님을 사랑하든지 말든지 선택할 자유의지가 있어. 본인의 의지 외엔 그 누구도 무엇도 사람을 조정할 수 없어. 하느님은 자신의 사랑에 대한 보답으로 사람의 사랑을 원해. 하느님은 자유 인간의 사랑, 완전하고 자기를 닮은 사람의 사랑을 원하는 거야.” ..  (178, 179, 189∼190쪽)


 학교에서는 자연을 마음껏 부려먹어야 한다고 가르쳤습니다. 이러면서 이 나라 대한민국은 자연이 아름다운 나라라고 가르쳤습니다. 한편, 서양은 자연을 마구 개발하는 역사요, 동양은 자연과 함께 살아가는 역사라고 가르쳤습니다.

 날이면 날마다 집 바깥이나 학교 운동장에서 뛰놀기 바쁜 철없는 나였지만, 학교에서 가르치는 이야기는 어딘가 말이 안 된다고 느꼈습니다. 사회와 역사와 자연을 이야기하는 대목이 서로 두동진다고 느꼈습니다. 이 나라 대한민국에서 자연이 아름답다면 자연이 자연답도록 그대로 두거나 사랑해야 할 노릇이요, 자연이 아름다운 나라가 사랑스럽거나 좋은 나라라 한다면, 자연을 함부로 건드리지 않아야 할 노릇입니다. 더구나, 자연을 마구 파헤치면서 살았다는 서양은 외려 자연을 있는 그대로 되살리거나 돌보려는 쪽으로 바뀌는 흐름이었습니다.

 돌이키면, 사람들은 수도물을 쓸 까닭이 없습니다. 사람들은 우물물이나 냇물이나 샘물로 넉넉합니다. 저마다 알맞게 살아가면 우물물과 냇물과 샘물로 즐거울 수 있습니다. 가게에서 먹는샘물을 사다 먹는다든지 정수기를 쓸 까닭조차 없습니다.

 그러나, 돈을 더 바라면서 자꾸 도시로 몰리고, 도시에서 자연이 모두 뿌리뽑히면서 숲도 나무도 풀도 꽃도 논밭도 사라지고 나니까, 어쩔 수 없이 수도물을 써야 합니다. 그저 죽지 않게 수도물을 놓을 뿐이지, 수도물이 좋기 때문에 놓지 않습니다. 살아숨쉬는 물이 아닌 수도물입니다. 화학처리를 하는 수도물입니다. 밥이 밥다웁도록 건사할 수 없는 도시이고, 물이 물답게 살아숨쉴 수 없는 도시입니다. 도시에서 살아가며 ‘자연보호’나 ‘자연사랑’조차 뜬구름 잡는 소리처럼 들릴 뿐이요, 이러한 도시에서는 4대강사업뿐 아니라 숱한 고속도로와 고속철도를 자꾸 낼 뿐입니다. 두 다리로 걷거나 자전거를 타는 일은 드물고, 누구나 자가용을 장만해서 좁디좁은 길에서 배기가스 끝없이 뿜으며 복닥여야 할 뿐입니다.


 (2) 《아나스타시아》 읽기


 이야기책 《아나스타시아》(한글샘,2007)를 읽으며 생각합니다. 러시아사람 ‘블라지미르 메그레’ 님이 ‘아나스타시아’한테서 들은 이야기를 적바림한 책으로, 한글판은 모두 여섯 권이라고 합니다. 《아나스타시아》는 “아나스타시아 이야기 여섯 권” 가운데 첫째 권입니다.


.. “아나스타시아, 당신 짐승이야?” 나도 모르게 이 말이 튀어나왔다. “왜 내가 짐승이지? 내 침대(풀숲)가 당신 것과 달라서? 차가 없어서? 여러 가지 도구가 없어서?” … “친구들이 모여 비로 상 차려서 먹고 마시고 담배 피는 게 최고 중요한 일일까?” … 날이 따뜻하고 또 옆에 조그만 풀밭이 있으면 거기 누워서 한 삼사 분 몸을 풀어. 이때 어떤 벌레든 몸에 기어오르면 쫓지 말고. 여러 종의 벌레들이 사람 몸의 막힌 구멍을 뚫고 청소해 주거든. 대개 구멍이 막히는 건, 그 구멍을 통해서 몸속의 모든 병을 피부 밖으로 끌고 나오는 독성물질 때문인데 그걸 씻어 버리면 돼.” ..  (38, 76, 96쪽)


 아나스타시아는 블라지미르한테 꾸준하게 이야기를 겁니다. 이야기를 ‘나눌’ 만큼 마음을 열지 못한 블라지미르이기 때문에, 블라지미르가 마음을 열 때까지 한결같이 이야기를 겁니다.

 아나스타시아는 블라지미르가 알아듣도록 가장 쉬운 낱말을 골라 가장 쉽게 이야기를 겁니다. 그렇지만 블라지미르는 블라지미르한테 가장 쉬울 만한 이야기가 들려도 좀처럼 알아듣지 못합니다. 거의 뚱딴지 같은 소리로 여길 뿐입니다. 한참 나중이 되어서야 조금씩 믿고, 뒤늦게 찬찬히 믿었으니 이렇게 책으로 태어날 수 있습니다만, 블라지미르는 노상 ‘돈-이름-힘’ 이 세 가지만 생각하고 이 세 가지에 온몸과 온마음을 맞추었습니다. 사람이 살아가며 사랑할 세 가지를 그저 ‘돈-이름-힘’으로만 여겼어요.

 《아나스타시아》를 읽으면 블라지미르가 얼마나 어리석거나 어처구니없거나 어리숙한가를 환하게 깨달을 수 있습니다. 이 책에 나오는 블라지미르는 블라지미르이기도 하고, 이름을 바꾼 이 나라 사람들 모습이기도 합니다. 도시 물질문명이 이 나라에 처음 깃들어 널리 퍼질 무렵에는 ‘이 나라 남자’ 모습이라 했을 테지만, 이제는 ‘이 나라 남자와 여자 모두’를 보여주는 모습이라 할 만합니다.

 슬프고 안타까운 노릇이지만, 이제 이 나라에서는 아이를 낳아 돌보는 몫을 (남자보다) 크게 맡을 어머니조차 아이들을 보육원이나 어린이집 같은 시설에 넣고 가루젖을 먹이며 종이기저귀를 쓸 뿐입니다. 아이들을 품에 안으며 참다이 사랑하고 착하게 돌볼 줄 모릅니다. 아이하고 아름다이 일구는 삶을 느끼지 않습니다.

 더 슬프고 안타까운 노릇이라면, 이 나라 거의 모든 남자는 ‘아이낳기’를 여자 몫으로만 여기는데다가, 아이가 태어난 뒤에도 ‘아이키우기’라든지 ‘아이와 함께 살기’마저 여자가 도맡을 몫으로 여깁니다. 가시버시라는 이름으로 함께 살아가는 살림살이를 깨닫지 않고 들여다보지 않습니다.

 집 바깥에서 돈을 버는 일은 그저 ‘돈벌이’입니다. 아이를 사랑하는 일이 되지 않습니다. 돈벌이는 아이사랑이 아니요, 내 아름다운 옆지기를 사랑하는 일 또한 되지 않아요. 돈벌이는 처음부터 끝까지 그예 돈벌이예요.

 아이를 사랑하는 일은 아이하고 눈을 맞추며 아이 손을 맞잡는 일입니다. 하루에 수십 차례 기저귀에 쉬를 하고 똥을 누며 젖을 먹는 갓난쟁이를 하루 내내 곁에서 돌보며 사랑하고 아끼는 일이 아이키우기이자 아이사랑입니다. ‘프리미엄 가루젖’을 먹여야 아이사랑이 아닙니다. 어머니젖을 먹이거나 동냥젖을 먹이거나 쌀을 입으로 개어 먹여야 비로소 아이사랑입니다.


.. “자기의 색욕만을 위해 남자에게 스스로 몸을 바치는 여자는 남자의 방탕을 절대 막을 수 없어. 그런 일이 벌어졌다면 그 둘의 삶은 행복할 수 없어. 그 둘의 공동 인생은, 공동이란 환상이며 거짓이며 여러 조건이 딸린 사기일 뿐이야 … 거짓된 결합은 무서워. 블라지미르, 아이들은 그 결합의 허구성과 부자연스러움을 몸으로 느껴. 그래서 부모가 하는 모든 말을 의심하게 돼. 아이는 잉태되는 순간부터 벌써 거짓을 무의식적으로 느껴. 또 그 때문에 안 좋아져. 세상에 그 누가 육욕만의 결과로서 이 세상에 나오고 싶을까? 누구든 위대한 사랑의 절정에 창조의 열의로 지음을 받고 싶지.” … “(부모들이 바보처럼) 계속해서 아이한테 세상의 물건을 갖다 줘. 새 장난감이며 새 옷을 최고의 것인 양. 그가 태어나 나온 이 세상의 물건들이 가장 중요한 것처럼 아이한테 주입하는 거야. 아이가 아직 작기는 하지만 우주에서 가장 완벽한 존재인데 어른은 아이를 덜 된 존재로 취급하는 거야 … 무엇이든 풀을 보여주면 돼. 씨앗은 기분이 좋으면 점점 더 자라서 나무가 될 수도, 아니면 좀 작은 꽃이 될 수도 있어.” ..  (71, 72, 104, 106쪽)


 아나스타시아는 잣나무 우거진 깊은 숲속에서 홀로 살아갑니다. 추울 때에는 추위가 무엇인가를 몸으로 받아들입니다. 더울 때에는 더위가 어떠한가를 마음으로 맞아들입니다. 자연을 너른 품으로 껴안으면서 스스로 자연이 되는 사람입니다. 사람 몸과 마음이 이루어지는 자연이라는 얼거리를 똑똑히 알고 낱낱이 고맙게 여깁니다.

 성적표가 대수로운지 풀잎 하나가 대수로운지를 이야기하는 아나스타시아입니다. 자격증이 대단한지 흰구름 하나가 대단한지를 이야기하는 아나스타시아입니다.

 나무이름이나 풀이름이나 꽃이름을 꼭 알아야 하지 않습니다. 내가 사랑하는 나무요 풀이요 꽃이라면, 내 마음에서 우러나오는 대로 이름을 붙여서 부르면 됩니다.

 잘 돌이킬 수 있다면, 이 자그마한 대한민국이라는 나라에서조차 마을마다 나무이름 풀이름 꽃이름이 모두 다른 줄 알아차리겠지요. 물고기한테 붙이는 이름 또한 마을마다 다릅니다. 이제는 표준말 하나로 뭉뚱그리지만, 지난날에는 자그맣게 마을을 이루어 살아가는 사람들 스스로 당신 삶터와 삶과 사랑이 가장 아름다이 드러나는 이름을 붙여서 품에 안았어요. ‘어느 학자 한 사람이 붙인 표준 이름’으로 잠자리를 바라보거나 나비를 바라볼 까닭이 없어요. 내가 느끼는 그대로 풀이름 하나를 빚으면 돼요. 부추가 부추여야 할 까닭이 없고, 정구지가 정구지여야 할 까닭이 없습니다.

 내 온 사랑을 따사로이 담은 이름을 내 고운 마음을 열어 불러야 합니다. 풀포기 하나한테도, 이웃사람한테도, 살붙이한테도, 동무한테도, 내 보금자리한테도, 내 삶터가 깃든 마을한테도, 오직 온 사랑을 따사로이 담은 이름을 내 고운 마음을 열어 불러야 합니다.

 마음을 기울여서 하는 일입니다. 사랑을 쏟으면서 하는 놀이입니다. 마음을 바쳐서 보살피는 내 아이입니다. 사랑을 담뿍 나누는 내 벗님입니다.


.. “블라지미르, 사람한테 일어나는 나쁜 일은 모두 사람이 스스로 초래하는 거야. 영혼 차원의 질서를 어기고 자연과 관계를 끊으면 그렇게 돼 … 사람한테 있는 가장 죽을죄 중 하나가 교만이야.” … “헛거야. 그런 거 하나도 없어. 멋진 자동차의 주인이나 최고급 저택의 소유자를 쳐다보는 사람의 시선 어디에서 존경, 동경심을 볼 수 있다고? 당신이 말한 걸 그렇다고 긍정할 사람은 세상에 없어. 그건 시기와 무관심과 증오의 시선일 뿐이야. 여자들은 이런 부류의 사람을 사랑할 수도 없어. 여자의 감정에선 남자를 갖고자 하는 욕구와 그가 가진 것을 함께 가지려는 욕구가 함께하기 때문이야. 이 남자도 여자를 진실로 사랑하지 못해. 그처럼 커다란 감정이 들기에 충분한 공간을 비울 수 없기 때문이지.” ..  (147, 202쪽)


 이야기책 《아나스타시아》는 오로지 하나를 바랍니다. 이 책을 읽으면서 사람들 마음속에 착하고 맑으며 싱그러운 빛줄기 하나 스스로 길어올리기를 바랍니다. 사람들 누구나 마음속에서 잠자는 착하고 맑으며 싱그러운 빛줄기가 이제 잠을 깨고 일어나기를 바랍니다.

 부질없는 돈벌이에 얽매이지 않기를 바랍니다. 덧없는 졸업장과 자격증에 내 고운 목숨을 붙들어매지 않기를 바랍니다.

 풀밭에 드러누워 하늘을 느끼면 됩니다. 맨발로 흙을 밟으며 땅을 느끼면 됩니다. 나는 하늘이랑 함께 살아가는 목숨입니다. 나는 흙하고 함께 살아숨쉬는 목숨입니다.


 (3) 마음으로 느끼는 삶


 《아나스타시아》를 읽은 사람이 조금씩 늘어납니다. 아나스타시아가 들려주는 맑은 목소리에 마음이 쩌렁 울리는 사람이 하나둘 나타납니다. 그러나, 책을 덮고 나서까지 맑은 목소리를 내 목소리로 삼는 사람은 얼마나 될까 모르겠습니다. 《아나스타시아》뿐 아니라 어느 책을 읽더라도 맑은 눈길로 읽어 맑은 사랑을 꽃피우는 맑은 사람으로 살아내는 이는 얼마나 되는지 궁금합니다.


.. 왜, 예외 없이, 종교나 위대한 가르침을 전한 사람들은 홀로 떨어져 은자가 됐을까? 왜 주로 숲으로 들어갔을까? 고등교육기관이 아닌 숲으로 갔을까? … 하나 분명한 것은, 우리가 우리의 일상을 보는 시각과는 달리 아나스타시아를 포함하여 숲속에서 외톨이로 사는 사람들은 세상을 다른 각도에서 본다는 것이다 ..  (40, 41쪽)


 사랑을 할 때에는 마음을 열어야 합니다. 책을 읽을 때에는 마음을 열어야 합니다. 흙을 밟으며 일할 때에는 마음을 열어야 합니다. 쌀을 씻어 밥을 차릴 때에는 마음을 열어야 합니다. 아기 기저귀를 빨면서 마음을 열어야 합니다. 걸레를 빨아 방바닥을 훔칠 때에 마음을 열어야 합니다.

 마음을 열지 않고서 무엇을 할 수 있는지 잘 모르겠습니다. 마음이 없이 어떤 돈을 벌어 어떤 살림을 꾸릴 수 있는지 알 길이 없습니다. 마음을 들이지 않았으면서 꿈이 이루어지기를 빌 수 있는지 알쏭달쏭합니다. 마음을 기울여 쓰는 글이나 마음을 바쳐 나누는 말이 아닐 바에는 무슨 이야기꽃을 피울 수 있는지 아리송합니다.


.. 문명사회와 동떨어져 사는 거의 모든 족속들은 아나스타시아같이 자연과 밀접한 관계를 유지하지 못한다. 아나스타시아는 이들의 생각이 완전히 깨끗하지 못하기 때문이라고 설명한다 ..  (49쪽)


 마음을 예쁘게 쏟으면, ‘돈을 더 많이 벌도록’ 이끈다는 자기계발책이나 처세책을 읽으면서도 착하거나 참다운 길을 걸으리라 생각합니다. 그러나, 마음을 예쁘게 쏟을 때에 돈을 더 많이 벌고 싶은 꿈이 피어나지는 않겠지요. 마음을 예쁘게 쏟는 사람이 애써 책 하나를 손에 쥐려 할 때에 자기계발책이나 처세책을 건드리려 할까요.

 마음을 예쁘게 쏟으면, 내 아이들과 옆지기가 먹을 밥을 차리면서, 어떻게 얻어 어떻게 손질하고 어떻게 차리는 아침밥이나 낮밥이나 저녁밥이 되어야 하는가를 시나브로 깨닫습니다.

 마음을 예쁘게 쏟으면, 자가용을 몰더라도 언제 어떻게 왜 몰아야 하는가를 느낄 뿐 아니라, 자가용과 내 삶과 네 삶과 우리 삶이 어떻게 맞물리는가를 옳게 느낍니다.


.. “가장 중요한 것이란 아이 키우기야.” … “중요한 것은 돈에 있지 않고, 돈으로 따뜻함이나 사람 영혼의 진솔한 동참을 결코 구할 수 없음을 당신은 알게 될 테니까.” ..  (192, 194쪽)


 마음을 열어 서로를 사랑하면 좋겠습니다. 마음을 열어 오늘 내 하루를 참답게 누리면 좋겠습니다. 마음을 열어 좋은 숨결을 들이마시고 내뿜으며 내가 선 이 땅을 어루만질 수 있으면 좋겠습니다. (4344.8.29.달.ㅎㄲㅅㄱ)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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