책책책! 출판사 습격기 - 일상탈출 책벌레들의 거침없는 인문 출판사 탐방
조희경 외 지음 / 서해문집 / 2009년 7월
평점 :
품절




 책에서 길어올리는 사랑이 있어야
 [책읽기 삶읽기 74] 조희경 외, 《출판사 습격기》(서해문집,2009)



 ‘기업맞춤형 전문취업교육-출판편집 과정’을 들은 학생들이 일곱 군데 출판사와 한 군데 책읽기모임을 찾아간 이야기를 담은 책 《출판사 습격기》(서해문집,2009)를 읽습니다. 책 만드는 일을 하고 싶어 책 만드는 일을 배운 분들이 책 만드는 사람들을 찾아가서 만난 이야기를 묶은 책인데 왜 ‘습격기’ 같은 이름을 붙였는지 알쏭달쏭합니다. 불쑥 찾아갔대서 습격기가 될까요.

 나는 ‘습격’이니 ‘공격’이니 ‘공습’이니 하는 군대말을 몹시 싫어합니다. 더구나, 책을 이야기하는 자리에서 이같이 군대말을 내세우는 일이 매우 못마땅합니다. “갑자기 상대편을 덮쳐 침”을 뜻하는 군대말 ‘습격(襲擊)’이 아니고서는 책마을 사람들 이야기를 나누기 어려웠을까요. 이렇게 ‘세게’ 나가야 이 책이 사람들 눈에 뜨인다고 여겼을까요.

 생각해 보면 “출판사 방문기”나 “출판사 취재기”처럼 이름을 붙이면 ‘밋밋하다’거나 ‘느낌이 너무 옅다’고 할 만하겠지요. 그러면, 좋은 이름을 알맞게 찾아야 합니다. 책마을에서 함께 일하고픈 꿈을 꾸는 분들이라면, 일곱 군데 출판사를 찾아다니며 만난 사람들한테서 들은 알차거나 사랑스러운 이야기에서 책이름 하나를 어여삐 길어올려야 합니다. 책이름을 붙이는 일 또한 ‘책 만드는 일’인 한편 ‘책을 사랑하는 길’이니까요.


.. “갑자기는 아니고 출판사에 계속 근무했기 때문에 일에 대한 커리어가 쌓였고, 내 적성에 맞고 보람을 느끼는 이 일을 계속 해 나가야겠다는 생각이 들었어요. 결심을 하기까지 큰 용기가 필요했지만, 결국 다니던 출판사를 그만두고 시작하게 됐어요.” ..  (88쪽/1인출판사 산처럼 윤양미 대표)


 책을 만드는 일은 남다르다 싶은 사람이 하는 일이 아닙니다. 책을 좋아하고 책 만드는 일에서 보람을 느끼며 책을 아낄 줄 아는 사람이 할 만한 일입니다. 더 많이 배웠대서 책마을에서 일할 수 있지 않습니다. ㅅㄱㅇ 같은 대학교를 나와야 책마을에 몸을 담글 수 있지 않습니다.

 나는 대학졸업장이 없습니다. 나는 대학졸업장 없이 출판사에서 네 해 즈음 일했습니다. 퍽 드물지만 나처럼 대학졸업장이 없는 사람도 뜻과 사랑과 믿음과 꿈이 있으면 얼마든지 책마을에서 땀을 흘릴 수 있을 뿐 아니라, 스스로 출판사를 차릴 수 있습니다.

 그저 돈만 벌 생각으로 출판사 일꾼이 되는 사람이 있겠지요. 그예 돈벌이만 헤아리며 책을 내놓는 출판사 또한 있겠지요.

 어디에서나 이와 마찬가지입니다. 돈만 바라보는 바보가 있고, 돈이 아닌 삶을 사랑하는 사람이 있습니다. 꿈을 이루려는 사람이 있고, 꿈은 부질없다고 여기는 바보가 있습니다.

 책마을이건 영화마을이건 노래마을이건 만화마을이건 춤마을이건, 돈만 바라보는 사람이 널리 사랑받거나 깊이 뿌리내리지는 못합니다. 참으로 책이나 영화나 노래나 만화나 춤을 알뜰히 건사하면서 애틋하게 아낄 때에 시나브로 사랑받으며 차근차근 뿌리를 내립니다.


.. 아침독서운동은 하루 종일 학교와 학원에 시달리고, 우리 주위에 제대로 된 도서관이 없는 현실 속에서 시작된 운동이기 때문이다. 그래서 (사)행복한아침독서의 최종 목표는 아이들의 책 읽는 권리를 제한하는 것들을 없애는 것이다 ..  (199쪽)


 똑똑한 사람이 읽는 책이 아닙니다. 가방끈이 긴 사람이 즐기는 책이 아닙니다. 누구나 읽는 책이며, 아이부터 할매 할배까지 두루 나누는 책입니다.

 어린이책이란 어린이부터 읽는 책입니다. 어린이한테만 읽히는 어린이책이란 없습니다. 사진책이란 사진쟁이만 읽는 책이 아닙니다. 사진쟁이부터 즐기는 책이 사진책이요, 사진쟁이가 아니더라도 누구라도 즐기면서 아름다움을 받아들이는 사진책입니다. 만화책이나 그림책이나 글책이나 노래책이나 모두 매한가지입니다.

 즐기는 삶이면서 즐기는 책입니다. 사랑하는 삶이면서 사랑하는 책이에요. 좋아하는 삶으로 좋아하는 책입니다. 땀흘려 일구는 삶처럼 땀흘려 일구는 책이에요.


.. 돌베개에서 출간하는 책들은 돈과 풍요를 논하지 않는다. 출판계 사람이 아닌 우리로서는 이에 대한 가치 판단을 내릴 수 없다 ..  (35쪽)


 책에서 길어올리는 사랑이 있어야 책을 만듭니다. 책에서 길어올리는 사랑으로 책을 마주하는 매무새여야 비로소 책마을에서 일할 수 있습니다. 책을 읽는 사람으로서 ‘돈과 풍요’를 바라거나 꿈꾸거나 꾀하지 않습니다. 책을 읽고 책을 다루며 책을 만드는 사람 가운데 하나로서 ‘돈과 풍요’를 글로 쓰거나 삶으로 누리지 않습니다.

 책이란 사랑이니까요. 책이란 눈물이니까요. 책이란 믿음이니까요. 책이란 웃음이니까요.

 사랑은 돈으로 살 수 없습니다. 믿음은 돈으로 팔 수 없습니다. 눈물은 돈으로 갚지 못합니다. 웃음은 돈으로 베풀지 못합니다.

 책은 오직 땀방울과 굳은살로 길어올리는 사랑씨입니다. 책은 꼭 하나, 사랑과 믿음을 어우르는 이야기바구니입니다.

 돈도 숫자도 경제도 풍요도 아닌 책이기에, 이 책이 더 낫고 저 책이 덜 떨어진다고 가르지 않습니다. 책은 그저 책이고, 사람은 그저 사람이며, 삶은 그저 삶입니다. 다 다른 삶에서 다 다른 사람이고 다 다른 책입니다.


.. 한국 사회에서 정통 인문 출판을 고집하는 것은 쉬운 일이 아니다. 그나마 대중 인문서들은 어느 정도 수요를 기대할 수 있지만 이학사에서 내는 책들은 많은 시간 곱씹어 보며 공을 들여 읽어야 되는, 단적으로 말하면 읽기 힘든 어려운 책들이 많아 시장성을 기대하기가 힘들다. 심지어 필자들이 편집자들에게 ‘어려운 원고 읽으려면 지겹거나 힘들지 않은지’ 물어 볼 때가 있다고 한다 ..  (138쪽/이학사)


 홀로 출판사를 꾸리는 윤양미 님은 “인문서는 주로 대도시 대형서점에서 판매되거든요. 그래서 ‘산처럼’이 거래하는 서점들은 대도시 대형서점과 인터넷서점에 국한되어 있어요(92쪽).” 하고 밝힙니다. 인문책을 내는 출판사만이 아니라 어린이책을 내든 자기계발이라는 책을 내든, 거의 모든 출판사는 큰도시 큰책방과 누리책방에 책을 넣습니다. 시골마을 책방에까지 책을 넣는 출판사는 거의 없으며, 시골마을 책방에 넣은 책으로 돈을 버는 출판사 또한 거의 없습니다. 시골마을 책방에서 팔아서 거두는 돈이라 해 보았자 서울에 있는 큰책방에서 한 시간 동안 팔아서 거두는 돈보다 훨씬 적을 테니까요.

 어쩔 수 없이 책방은 큰도시에 몰립니다. 어쩔 수 없이 출판사는 큰도시에, 이 가운데 서울에 쏠립니다. 큰도시에 몰린 책방에서 책을 팔고, 서울에 깃든 출판사에서 책을 만듭니다. 이러한 책에는 어떤 사람이 어떤 넋을 일구도록 이끄는 이야기꽃이 깃들까요. 부디, 사랑을 놓지 않을 뿐 아니라, 사랑을 살가이 보듬을 줄 아는 손길을 잊지 않으면 고맙겠습니다. (4344.8.27.흙.ㅎㄲㅅㄱ)


― 출판사 습격기 (조희경 외,서해문집 펴냄,2009.7.30./9500원)
 


댓글(0) 먼댓글(0) 좋아요(3)
좋아요
북마크하기찜하기 thankstoThanksTo