책은 내 가슴에 있어요


 도시에서 살아가면서 착하게 사랑하기는 어렵습니다. 도시에서 살아내며 착하게 사랑한다는 말은 거짓인지 모릅니다. 그러나, 어디에서든 맑게 살아가지 않는다면 시골에서 지내더라도 사랑을 품지 못합니다. 언제라도 착하게 꿈을 꾸지 않는다면 멧자락 너른 품에 안긴 채 살아내더라도 사랑을 깨닫지 않습니다.

 풀벌레 우는 소리 아닌 아스팔트를 까거나 시멘트를 부수는 온갖 기계 소리로 아침을 여는 도시 여관에서 잠을 깨면서 생각합니다. 작은 새부터 커다란 새까지 바지런히 새벽을 맞이하며 먹이를 찾는 멧골집 조그마한 보금자리가 아니라, 자동차 시끄러이 내달리는 도시 한복판에 깃든 여관에서 하루를 열면서 생각합니다.

 이렇게 바깥마실을 하면서 새 보금자리를 찾으려 애쓰는 아버지가 힘들까요. 시골집에서 두 아이를 보듬으며 집살림을 돌보는 어머니가 힘들까요.

 내가 집으로 전화를 걸어 벌써 사흘씩이나 집이 아닌 도심지 여관에서 잠을 자야 하는 일을 이야기하며 미안하다 말하는 모습을 곁에서 지켜보던 분이 넌지시 말을 건넵니다. 최종규 씨가 그렇게 말하면 당신은 죽일 놈이네, 하고 말씀합니다. 그러나, 나는 다르거든요. 나는 삼백예순닷새를 늘 옆지기랑 아이랑 복닥이며 살아가는 사람이거든요. 이렇게 하루만 바깥으로 나돌아도 한 시간이 채 지나지 않아 그리울 뿐 아니라 마음이 아파요. 그렇다고 삼백예순닷새 바깥에서 일을 하며 돈을 버는 사람들이 나쁘다는 뜻이 아니에요. 삶이 다르잖아요. 누가 낫고 누가 나쁘다는 소리가 될 수 없어요. 나는 내가 사랑하면서 꾸리는 삶이기 때문에, 내가 이렇게 바깥마실을 하며 더없이 힘들고 고된 하루가 괴로우면서 미안해요. 좋은 숲 품에 안기어 좋은 눈길과 손길로 좋은 이야기를 일구지 못하는 하루가 참말 슬프면서 아파요.

 물소리를 듣고 싶어요. 바람이 나뭇잎을 건드리며 사그작사그작 조용히 노래하는 소리를 듣고 싶어요. 햇볕을 마음껏 쬐고 싶어요. 햇볕을 온몸으로 받으며 둘째 기저귀를 마당 빨랫줄에 널고 싶어요. 내 손은 술잔이 아니라 빨래비누나 빗자루를 들고 싶어요. 둘째한테 젖을 물리는 옆지기 젖가슴을 내 투박한 꾸덕살 손바닥으로 살며시 문지르고 싶어요. 옆지기 등바닥에 조용히 웅크리고 누워 살내음을 맡고 시골집을 둘러싼 풀내음을 받아들이고 싶어요.

 시외버스를 두 번 타고 시골집으로 돌아갈 길이 아주 까마득해요. 네 시간 가까이 어떻게 버티어야 할까 슬퍼요. 선뜻 여관에서 나서지 못해요. 그러나 나는 내 고운 보금자리로 돌아가야지요. 고운 새 보금자리를 찾을 때까지, 우리 살붙이한테 고마운 물과 바람과 햇살과 풀을 베푸는 멧자락 작은 집으로 돌아가야지요.

 벽종이에 아로새겨진 꽃 그림도 예뻐요. 다만, 나는 달리 생각해요. 흙에 뿌리내린 작은 꽃이 아주 예쁘다고 생각해요. 나도 작은 꽃처럼 흙을 밟고 흙에서 노래하고 싶어요. 새벽마다 지렁이들이 가늘게 노래를 한다고 들었어요. 지렁이들이 노래하는 줄 이제껏 몰랐지만, 늘 새벽이면 깨었으니까, 나는 잘 몰랐더라도 언제나 지렁이들 노래를 들으며 살았겠지요. 지렁이가 노래하는 줄 몰랐어도 좋아요. 안다고 해서 더 좋지는 않아요. 지렁이들이 들려주는 노래는 내가 알든 모르든 노상 내 온몸으로 스며들었어요. 매미도 여치도 방아깨비도 사마귀도 거미도 나비도 잠자리도 애틋한 동무예요. 바람을 가르며 푸들푸들 날갯짓하는 잠자리를 살가이 바라보고 싶어요. 머리에 핀을 잔뜩 꽂고는 이쁘게 웃는 어여쁜 딸아이를 기쁘게 품에 안고 빙글빙글 춤을 추고 싶어요. 책은 내 가슴에 있어요. (4344.8.19.쇠.ㅎㄲㅅㄱ)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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