용의 눈물 - 달리 초등학생 그림책 14
하마다 히로스케 글, 이와사키 치히로 그림, 강라현 옮김 / 달리 / 2006년 5월
평점 :
절판




 착한 아이를 기다리는 슬프고 외로운 넋
 [다 함께 즐기는 그림책 74] 이와사키 치히로·하마다 히로스케, 《용의 눈물》(달리,2006)


 어머니는 열 손가락 깨물어 안 아픈 손가락 없듯이, 열 아이를 낳았으면 열 아이 모두 한결같이 사랑스럽다고 했습니다. 아버지는 어떠할까요. 아버지도 열 아이를 모두 한결같이 사랑스럽다고 여길까요.

 열 아이가 저마다 다 다르게 한결같이 사랑스럽다면, 이 가운데에는 조금 샘을 부리는 아이가 있을 테고, 이 가운데에는 때때로 잘못을 저지르는 아이가 있을는지 모릅니다. 샘이야 다독이면 되고, 잘못은 씻으면 됩니다. 샘을 부린대서 나쁜 아이가 될 수 없으며, 잘못을 저질렀기에 등을 질 수 없습니다. 언제나 더 너른 가슴으로 더 따스히 어루만지면서 다독이는 어버이 품입니다. 이제부터 착하게 살도록, 오늘부터 아름다이 지내도록, 아이가 사랑을 받아먹는 기쁨을 누리도록 할 어버이입니다.

 한 번 베풀었대서 사랑이 아닙니다. 한 번 손을 잡거나 껴안았기에 사랑이 아닙니다. 사랑은 숫자로 따지지 않습니다. 사랑은 부피로 재지 못합니다. 사랑은 크기가 가르지 않습니다. 사랑은 모양으로 나누지 못합니다.


.. “그럼 왜 우니?” “불쌍해요…….” “불쌍하다니?” 아이가 무슨 생각을 하고 있는지 엄마는 도무지 알 길이 없었습니다. “엄마, 왜 아무도 용을 좋아하지 않는 거죠?” “이상한 말을 다 하는구나.” “용이 너무 불쌍해요.” ..  (8∼9쪽)


 이와사키 치히로 님이 그림을 넣고, 하마다 히로스케 님이 글을 넣은 그림책 《용의 눈물》(달리,2006)을 읽다가 생각합니다. 아이 어머니가 ‘도무지 알 길이 없’다고 느끼면서 ‘이상한 말을 다 하는구나’ 하고 생각하다니 놀랍습니다. 열 손가락 가운데 안 아픈 손가락이 있는 어머니일까요.

 생각을 곰곰이 가다듬습니다. 이 땅 모든 어머니가 열 손가락을 다 아파하지는 않을 수 있다고 생각합니다. 참말 미워하거나 내치는 어머니가 있을는지 모릅니다. 아니, 내 아이는 미워하지 않거나 내치지 않지만, 이웃 아이나 동무 아이는 꾸밈없이 받아들이지 못할 수 있습니다. 고단한 삶에 지치거나 한갓진 삶에 눈멀면서 참사랑을 잊거나 잃을는지 모릅니다.

 어머니 마음이라면, 또 어버이 넋이라면, 내 열 아이 가운데 한 아이가 따돌림받으면서 구석에서 우는 모습을 보았을 때에 어떻게 생각할까요. 못생긴데다가 다리를 저는 막내가 아홉 언니한테서 따돌림을 받으면서 구석자리로 밀려난 모습을 바라보는 어머니라면, 또 어버이라면, 이러할 때에 어떻게 해야 할까요.


.. 밤이 되자, 하루 종일 걷다 지친 아이는 나무 둥치에 기대어 잠이 들었습니다. 날이 밝았습니다. 숲속 새들의 노랫소리가 아이의 잠을 깨웠습니다. 붉은 산복숭아와 산딸기 열매가 열려 있었습니다. 아이는 열매를 따 먹으며 걸었습니다 ..  (14쪽)


 책을 읽으면서 생각합니다. 더 낫다 싶은 책이 있고, 더 재미있다 싶은 책이 있으며, 더 알차다 싶은 책이 있다고 생각합니다. 그렇지만 이 책보다 저 책이 더 훌륭하니까 이 책은 뒷전으로 밀거나 아무렇게나 내팽개칠 수 없습니다. 종이에 찍힌 줄거리가 허술하더라도 책은 책이요, 사랑받을 책입니다. 아름드리로 자라던 고운 목숨을 베어 얻은 종이로 빚은 책입니다. 책으로 바뀐 나무 가운데 더 낫거나 덜 떨어지는 나무를 나눌 수 없습니다. 다만, 안타깝거나 슬픈 삶을 일구는 사람들이 쓴 글이 담긴 책은 안타깝거나 슬프다 느끼는 책입니다. 어여쁘거나 기쁜 삶을 가꾸는 사람들이 쓴 글이 담긴 책은 어여쁘거나 기쁘다 느끼는 책이에요.

 모두들 고운 목숨을 바친 나무에 글을 새깁니다. 모두들 고운 목숨을 밥거리로 받아들여 제 목숨을 잇습니다. 도시에서 살더라도 흙에서 뿌리내리던 목숨을 먹어야 합니다. 풀이나 곡식을 안 먹더라도, 고기짐승은 풀이나 곡식을 밥으로 먹습니다. 풀을 먹든 고기를 먹든 풀을 먹는 셈이고, 풀이 없으면 목숨을 잇지 못합니다. 흙 한 줌 없는 도시에서 살아가더라도 흙이 없으면 살아갈 수 없을 뿐 아니라, 도시가 버틸 수 없습니다. 도시에는 흙이 깃들지 않더라도 도시 바깥에 흙이 넓게 펼쳐지지 않으면 도시는 하루아침에 죽음터로 바뀝니다.


.. 뜻밖의 소리. “누가 나를 부르는 것일까?” 알 수 없었습니다. 용은 누구도 무서워하지 않았습니다. 용은 동굴 안에서 으르렁거렸습니다. “거기 무슨 일이야.” “밖으로 나와 보세요.” 어린 아이 목소리였습니다. 용은 신기해 했습니다 ..  (21쪽)


 《용의 눈물》에 나오는 어린 아이 하나만큼은 용이든 어머니이든 똑같은 목숨이자 이웃이자 동무로 받아들입니다. 《용의 눈물》에서 용이 눈물을 흘리도록 이끈 어린 아이 하나만큼은 모든 목숨을 어여삐 사랑하면서 아끼는 마음으로 살아갑니다.

 용한테도 착한 마음이 있습니다. 어린 아이한테도 착한 마음이 있습니다. 어머니한테도 착한 마음이 있습니다. 누구한테나 착한 마음이 있습니다. 그저, 착한 마음을 못 느끼는 사람이 있고, 착한 마음을 젖히는 사람이 있으며, 착한 마음을 저버리는 사람이 있습니다.

 착한 마음을 일구는 사람이 있고, 착한 마음을 사랑하는 사람이 있으며, 착한 마음을 북돋우는 사람이 있어요. 착한 마음을 씨뿌리는 사람이 있고, 착한 마음을 주고받는 사람이 있으며, 착한 마음을 감추는 사람이 있어요.

 착한 마음은 내 살붙이하고만 나눌 만하지 않습니다. 착한 마음은 누구하고라도 나눌 만합니다. 못된 마음이나 모진 마음은 내 살붙이하고조차 나눌 만하지 않습니다. 못된 마음이나 모진 마음은 누구하고라도 나눌 만하지 않습니다.

 서로 나눌 마음은 오직 착한 마음입니다. 서로 나누지 말아야 할 마음은 못된 마음이나 모진 마음입니다.


.. 용이 흘린 눈물 때문에 큰비가 온 듯했습니다. 물속에 파란 하늘과 산이 비쳤습니다. 용의 몸이 강물 위로 배처럼 떠올랐습니다. 용은 힘차게 물결을 가르며 앞으로 나아가면서 등에 업은 아이에게 말했습니다. “참 좋다. 이렇게 행복해 본 적이 없어. 나는 이대로 배가 되겠어. 배가 되어 착한 아이들을 모두 태워 줘야지. 그래서 이 세상을 새롭고 멋진 세상으로 만들 거야.” ..  (29쪽)


 용은 착한 아이들을 태우는 배가 됩니다. 배가 된 용을 탄 아이는 착한 마음으로 살아갑니다. 둘레에 수많은 아이들이 있으나, 배가 된 용을 섣불리 타지 않습니다. 아니, 배가 된 용을 스스럼없이 타지 않습니다.

 용은 아이들이라 해서 아무나 태우지 않습니다. 착한 아이들이 될 때까지 가만히 기다립니다. 착한 아이들로 어깨동무하는 날까지 조용히 기다립니다. 용과 함께 물살을 가르는 아이 또한 말없이 손을 흔들면서 기다립니다. 이 땅 모든 아이들이 착하게 살아가며 착하게 손을 맞잡으면서 싱긋 웃을 수 있기를 기다립니다. (4344.8.13.흙.ㅎㄲㅅㄱ)


― 용의 눈물 (이와사키 치히로 그림,하마다 히로스케 글,강라현 옮김,달리 펴냄,2006.5.5./1만 원)
 

 

(최종규 . 2011)


댓글(0) 먼댓글(0) 좋아요(1)
좋아요
북마크하기찜하기 thankstoThanksTo