하늘과 책읽기
예부터 누군가 ‘가난은 나라님도 어찌하지 못한다’고 이야기했습니다. 조금도 옳지 못한 말이지만, 이러한 말을 누가 왜 퍼뜨렸는가를 살피는 사람은 몹시 적습니다. 나라님이 있어야 한다면, ‘가난을 없애거나 뿌리뽑을 몫을 맡’아야 하기 때문입니다. 더 가진 사람한테서 나누어 받아 덜 가진 사람한테 나누어 주거나, 더 가진 사람 스스로 덜 가진 사람하고 즐거이 나눌 수 있도록 삶자리를 다스리는 몫을 할 사람이 바로 나라님입니다.
군대를 다스린다든지 권력을 움켜쥐는 몫을 하라고 세운 나라님이 아닙니다.
나라님이 어찌하지 못하는 일이란 날씨입니다. 나라님으로서는 비나 눈이나 가뭄이나 큰물을 어찌하지 못합니다. 다만, 날씨를 어찌하지 못한다지만, 날씨가 엉터리가 되지 않게끔 살림살이를 다독일 수 있습니다. 쇠삽날을 아무 데나 들이미는 막일을 하지 않는다면, 온누리에 푸른 들과 멧자락이 우거지도록 보금자리를 보듬을 수 있어요. 어찌할 수 없는 날씨이지만, 흙을 사랑하고 햇볕을 고맙게 여기면서 물과 바람을 아끼는 넋으로 살아가는 나라님이라 한다면, 이러한 나라님이 땀흘리는 나라는 무척 살 만하리라 생각합니다.
하늘을 올려다봅니다. 언제 맑은 해를 파랗디파란 하늘과 함께 올려다보았는지 알 노릇이 없습니다. 언젠가 이 비가 그치며 눈부신 햇살을 드리우겠지요. 그러나 칠월 내내 비 그칠 사이 없는 하루하루입니다. 갓난쟁이 기저귀 빨아서 말리기 벅차고, 겨우내 쓰던 두꺼운 이불 한 채를 미처 못 빨았으며, 장마철에 눅눅해지는 옷가지와 이불을 볕에 보송보송 말리지 못합니다. 새벽부터 밤까지 쉴 사이 없이 비를 퍼붓는 하늘을 올려다보면서 생각합니다. 빨래를 하란 소리인가 말라는 소리인가. 그러나, 비가 오든 말든 빨래는 날마다 예닐곱 차례 해야 합니다. 비가 그치지 않으니 더 자주 빨래를 해서 더 오래 말려야 합니다. 집일 하는 사람은 그야말로 하루를 온통 물을 만지며 살아냅니다. 손에서 물기가 가시지 않습니다. 손에서 물기가 가시지 않으니 책을 쥐어 펼친다든지 볼펜을 들어 공책에 글을 끄적일 수 없습니다.
한숨을 쉰들 비가 그치지 않습니다. 이맛살을 찌푸린들 비가 멎지 않습니다. 골을 부린들 세찬 비가 가늘어지지 않습니다. 비는 저 스스로 그치고 싶을 때에 그칩니다. 비는 뿌려야 할 만큼 뿌리고 나서야 멎습니다. 비는 이 나라 이 삶터 이 사람들 살림살이에 따라 알맞게 내립니다. 하늘도 땅도 물도 바람도 해도 푸나무도 벌레도 이웃조차도 살피지 않는 이 겨레 이 터전에는 오늘날처럼 마구마구 퍼붓거나 쏟아붓거나 들이붓는 빗줄기가 가장 알맞고 마땅합니다. (4344.7.30.흙.ㅎㄲㅅㄱ)