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열두 살의 봄 ㅣ 눈높이 어린이 문고 10
이상교 지음 / 대교출판 / 1990년 11월
평점 :
품절
‘성교육’이란 ‘삶교육’
[어린이책 읽는 삶 3] 이상교, 《열두 살의 봄》(대교출판,1989)
아이들한테 언제 성교육을 해야 하는지를 살피지는 않아도 된다고 느낍니다. 왜냐하면, 성교육이란 삶교육이니까요. 성별이나 성교나 성기를 가르치는 성교육이 아니라, 한 사람으로서 살아내는 나날을 조곤조곤 이야기하면서 깨닫도록 이끄는 삶교육입니다.
.. 이모는 아기 기저귀를 갈아채우고 젖지 않은 옷으로 갈아입혔습니다. “아들이거나 딸이거나 아기를 낳을 수 있는 건 여자니까.” “피잇! 아긴, 뭐, 여자들이 혼자 낳는 건가?” .. (12쪽)
무슨무슨 성교육 강좌를 굳이 들어야 한다고는 느끼지 않습니다. 하루하루 살아가면서 언제나 듣고 날마다 생각할 수 있게끔 ‘아이와 함께 옳고 바르며 착하고 참다이’ 살아야 한다고 느낍니다. 아버지가 하는 일과 어머니가 하는 일을 말로가 아닌 몸으로 느끼도록 하고, 남자가 맡은 몫과 여자가 맡은 몫을 앎조각이 아닌 삶으로 느끼도록 해야 합니다. 그리고, 여자나 남자이기 앞서 오롯이 목숨 하나 선물받은 사람인 줄을 느끼도록 하고, 사람이기 앞서 옹글게 숨을 쉬고 바람을 마시며 밥을 먹는 목숨붙이인 줄을 깨닫도록 해야 합니다.
사람하고 개구리하고 다를 구석이 없습니다. 다만, 사람은 사람이고 개구리는 개구리입니다. 사람하고 개구리는 똑같은 목숨붙이입니다. 누가 더 값있고 누가 더 값없지 않아요. 여자하고 남자 가운데 어느 쪽이 더 아름답지 않습니다. 부자와 가난뱅이 사이에서 어느 쪽이 더 훌륭하거나 거룩하거나 낫지 않습니다. 얼굴이 잘생긴 사람이 얼굴이 못생긴 사람보다 멋지거나 좋거나 사랑스러울 수 없습니다. 키가 크든 작든 똑같이 사람이고, 여자이거나 남자입니다.
때로는 두 눈으로 앞을 보고, 때로는 한 눈으로 앞을 보며, 때로는 두 눈이 있으나 앞을 못 봅니다. 때로는 두 귀로 소리를 듣고, 때로는 한 귀로 소리를 들으며, 때로는 두 귀가 있으나 소리를 못 듣습니다. 태어날 적부터 한손을 못 쓰든, 자동차에 치여 한손을 못 쓰든, 그저 두 손을 두 손 그대로 잘 쓰든, 누구나 똑같은 사람이요 목숨입니다.
사람이 사람인 줄을 가르치면서 배우도록 하는 삶교육일 성교육입니다. 몇 살에 달거리를 하고, 몇 살에 아기씨가 나오며, 씨가 맺혀 아기가 태어나기까지 몇 달이 걸리는가 하는 앎조각도 익혀야 한달 수 있는데, 이에 앞서 내 삶이 얼마나 고마운 목숨이고, 내가 한 사람으로 우뚝 서서 보내는 나날은 어떻게 즐거우면서 값진가를 알아차려야 합니다.
숨을 쉬는 고마움을 느낄 노릇입니다. 햇볕을 쬐는 기쁨을 누릴 노릇입니다. 밥을 먹는 즐거움을 맛볼 노릇입니다. 저마다 어디에서 어떻게 살아가느냐에 따라 ‘삶교육’이 달라질 테고, 삶교육이 달라지는 만큼 ‘성교육’ 또한 저절로 달라져요. 따로 어떤 강의나 강좌를 듣거나 책을 읽어야 제대로 익히는 성교육이 아니라, 내 삶을 어떻게 추스르거나 돌보느냐에 따라 아름다워지느냐 아름답지 못하느냐로 갈리는 성교육입니다.
.. 홍이는 그 뒤, 그 짓을 그만두었습니다. 여자 아이들의 치마를 들추는 짓 말입니다. 여자 아이들이 놀잇감이 되어서는 안 되기 때문입니다. 우스갯감이 되어서도 안 됩니다. 엄마와 여동생 지은이처럼 다른 여자들도 모두 소중하기 때문입니다 .. (36쪽)
《열두 살의 봄》(대교출판,1989)을 읽으면서 생각합니다. 글쓴이 이상교 님은 ‘성 지식’을 한복판에 놓지 않습니다. 아이들이 둘레 동무나 어른하고 복닥이는 삶을 돌아보도록 하면서 천천히 받아들이는 ‘삶 이야기’로 ‘성 지식과 성별과 성교와 성기 이야기’를 알아차리도록 돕습니다. 섣불리 ‘하라 마라’ 하는 이야기를 다루지 않습니다. 어떻게 해야 더 낫거나 나쁘다 하는 이야기를 보여주지 않습니다. 날마다 마주하는 사람들 사이에서 어떻게 살아가야 아름다울까 하는 이야기를 살포시 들려줍니다.
.. 엄마는, 엄마는 나를 낳을 때도 그렇게 많이 고생했다고 합니다. 이제 동생을 얻는 기쁨은 둘째입니다. 엄마만 전처럼 다시 건강하실 수 있다면 .. (74쪽)
어머니는 내 나이 다섯 살에도 어머니이고, 내 나이 열다섯 살에도 어머니입니다. 내 나이 서른다섯이나 쉰다섯에도 어머니는 어머니입니다. 내 나이 스물다섯이나 서른다섯쯤 되면, 나도 누군가한테 어머니가 될 수 있겠지요. 나를 알고 내 어머니와 아버지를 알며, 나 스스로 어머니나 아버지 자리에 서는 삶을 알도록 하자는 ‘삶교육’인 ‘성교육’입니다. 그러니까, 삶교육이란 사람교육입니다. 사람교육이란 사랑교육이에요.
삶을 어떻게 일구느냐를 돌아보도록 하기에 사람교육입니다. 사람과 사람으로 서로 어깨동무하는 길을 살피도록 하기에 사랑교육입니다. 사랑이 꽃피고 열매맺는 흐름을 일깨우도록 하기에 삶교육입니다.
삶과 사람과 사랑이 맞물리는 자리를 슬기롭게 깨달아, 착하고 참다우며 곱게 자라는 어린이가 되도록 하자는 뜻에서 펼치는 성교육이에요.
.. “어린아이가 무얼 안다고 때려요? 야단을 치거나 때린다고 버릇이 없어지진 않아요. 그렇게 되면 점점 어른 눈을 피해 버릇이 굳어지기 쉬울 뿐이지.” “그럼, 어떡해요? 남부끄러워서 이젠 친척 집에 데리고 가기도 꺼려지는 걸요.” .. (122쪽)
《열두 살의 봄》은 퍽 고마운 책입니다. 《열두 살의 봄》처럼 조곤조곤 삶 이야기를 들려줄 수 있어야 비로소 성교육을 밝히는 책이라 할 만합니다.
다만, 이 책 《열두 살의 봄》에서도 어쩔 수 없이 ‘성별과 성교와 성기에 얽힌 앎조각’을 덧달 수밖에 없다고 하겠으나, 이러한 앎조각을 더 덜어낸다면 훨씬 넉넉하면서 따사롭게 삶과 사람과 사랑을 들여다보면서 보듬도록 이끌 수 있으리라 생각합니다. 아이들이 저희 나이에 걸맞게 밥을 하고 빨래를 하며 청소를 하는 삶을 보여주고, 집안일을 온통 여자한테 떠넘기는 삶이 아니라 서로서로 힘을 모아 즐거이 일구는 삶이 될 때에 아름다운 줄을 느끼도록 이야기꽃을 북돋아야지 싶습니다.
성범죄뿐 아니라 모든 범죄는 삶과 사람과 사랑을 배우거나 느끼거나 누릴 수 없던 슬픈 넋일 때에 저지릅니다. (4344.7.24.해.ㅎㄲㅅㄱ)
― 열두 살의 봄 (이상교 글,대교출판 펴냄,1989.1.4./5500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