새우볶음밥


 어제에 이어 오늘 저녁에도 새우볶음밥을 한다. 아마, 첫째 아이가 생각하기로는 새우볶음밥이리라. 그러나, 아버지가 밥을 차리기로는 먼저 감자를 두 알이나 세 알을 아주 가늘고 작게 채 썰어 넣고, 당근과 무와 호박과 양파와 버섯 또한 아주 가늘고 작게 채 썰어 넣어 함께 물로 볶은 다음에 새우살을 녹여 함께 버무리는 볶음밥일 뿐이다. 마지막에 시금치나 근대나 열무를 채 썰어서 섞는다. 아버지 혼자 먹거나 어머니랑 둘이 먹을 때에는 새우살을 구태여 넣지 않는다.

 하루를 마무리짓는 저녁에 밥을 하면서 볶음밥을 한다. 웬만하면 새밥을 한다. 그러나 몸이 힘들고 빠듯할 때에 볶음밥을 떠올린다. 그렇지만, 참 고단한 볶음밥이다. 밥을 하기 힘들어 볶음밥을 하자고 생각하지만, 막상 볶음밥을 하자면 손이 얼마나 많이 가는지 모른다. 차라리 여느 밥을 새로 하고서 반찬을 두 가지 마련하기가 훨씬 쉽다. 한꺼번에 다 집어넣는다는 볶음밥이라고 할 터이나, 이 볶음밥을 하자면서 품과 손을 얼마나 많이 빨리 빠듯하게 써야 하는지 모른다.

 볶음밥을 하자면 손이 훨씬 많이 간다. 따지고 보면 여느 밥을 해도 손이 많이 간다. 아니, 밥을 차릴 때에는 어떠한 밥이든 손이 많이 간다. 오늘 저녁, 첫째 아이는 대단히 기운이 처졌을 뿐 아니라 먹구름이 감도는 아버지 곁에서 눈치를 살피며 아버지가 저녁을 해서 차리는 모습을 물끄러미 지켜본다. 그저 개운하거나 기쁘거나 신날 때라면 오늘처럼 아버지가 저녁을 차리는 모든 모습을 곁에서 물끄러미 지켜볼 일이 없었겠지. 내가 생각해도 저녁을 해서 차리기까지 부엌과 방을 얼마나 자주 오가며 얼마나 자주 칼과 도마를 다시 씻고 다시 쓰는지 모른다. 그릇을 얼마나 자주 씻고 닦아 반찬이나 밥을 담아 옮겨야 하는지, 겨우 밥상을 차렸다 하더라도 어지러진 부엌을 치우느라 또 손이 얼마나 많이 가는지, 오늘은 참말 모처럼 아이가 처음부터 끝까지 가만히 지켜본다.

 아이가 고작 네 살밖에 안 되는데, 제 어버이 눈치를 보는 일이란 몹시 안 달갑다. 하나도 기쁘지 않다. 이렇게 해서는 안 되는 줄 안다. 아이를 헤아리며 내가 이 아이만 한 나이였을 때에 내 어머니는 어떠했을까 하고 곱씹는다. 내 어머니도 참말 힘들었겠지. 내 어머니도 몹시 고단했겠지.

 조금도 좋을 일이 없지만, 이렇게 지나고 보니, 나는 나대로 나 어릴 적에 어머니가 어떻게 일하는지를 낱낱이 들여다보았다고 깨닫는다. 나는 나대로 나 어릴 적에 어머니가 어떻게 일하는지를 낱낱이 들여다보았기에, 이렇게 두 아이와 함께 살아가면서 부엌일을 하자고 쉴새없이 손을 움직일 수 있겠지.

 다른 날, 아이는 제가 얼마나 아버지한테 걸리적거리는지를 깨닫지 않는다. 그릇을 나르랴 수저를 나르랴 냄비를 나르랴 뭐를 하랴 하면서 방과 부엌을 뻔질나게 오가는 까닭을 헤아리지 않으며 그저 앞에서 길막기만 하면서 논다. 오늘은 제가 잘못한 일이 많다 보니, 아버지 눈치를 보며 제가 얼마나 길막기를 하며 걸리적거리는가를 조금이나마 느낄까.

 함부로 바라서는 안 된다. 섣불리 꿈꾸어서는 안 된다. 아버지는 어제에 이어 오늘도 새우볶음밥을 했을 뿐이다. 밥을 옳게 안 먹으면서 투정을 부리는 아이 입맛을 살리고 싶어서 아이가 잘 먹는 새우를 넣은 볶음밥을 했을 뿐이다. 아이가 아버지 마음을 알아주기를 바라면 안 된다. 아이가 아버지가 하는 일을 모두 깨닫기를 꿈꾸어서는 안 된다. 아이는 그저 아이대로 사랑스러우면서 고맙다.

 손목이 끊어질 듯하대서 아이를 바라볼 때에 이맛살을 찌푸리지 말자. 허리가 두 동강 날 듯하대서 아이한테 말할 때에 쇳소리가 섞이지 않게 하자. 집일을 하면서 몇 시간 내리 쪼그려앉을 겨를조차 없다 할지라도 앓는소리 함부로 새지 않도록 하자.

 아이는 그저 아이이지 않은가. 아이가 미운털일 수 없지 않은가. 아, 팔뚝이 저려서 눈물이 난다. 이렇게 저린 팔뚝으로 첫째 아이 오줌기저귀 빨래할 일이 없는 일 하나로도 얼마나 고마운가. 서른넉 달 만에 오줌을 아주 잘 가리는 첫째 아이가 얼마나 거룩한가. 우리 어머니는 형이 밤오줌을 다 가려 형 오줌기저귀 빨래는 안 해도 되고 갓난쟁이였을 내 오줌기저귀만 빨래하면 되었을 때에 얼마나 형을 고맙게 여기며 기쁘게 맞아들였을까. 아이들하고 살아온 지 네 해가 된다지만, 나한테는 아버지 소리가 그예 부끄럽기만 하다. (4344.7.20.물.ㅎㄲㅅㄱ)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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