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인잡지 <우리 말과 헌책방> 11호가 나왔습니다. 11호부터는 인쇄까지 혼자서 합니다 -_-;;;  

책방에 배본하지 않고, 오직 정기구독만 받는 책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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머리말 : 아이들과 살아가며 책방마실


 아이가 아침에 일어납니다. 아이가 일어날 때면 부시럭거리는 소리하고 콩콩 하는 소리가 들립니다. 아이 아버지는 새벽에 먼저 일어납니다. 아이가 깬 동안에는 도무지 글쓰기나 책읽기를 할 수 없기 때문에, 새벽 두어 시부터 너덧 시 사이에 일어납니다. 몸이 괜찮으면 새벽 두어 시에 일어나고, 몸이 고단하면 너덧 시에 일어나며, 몸이 아주 힘들면 여섯 시에 일어납니다.

 예전에 혼자 살며 신문돌리기를 하던 나날에는 새벽 두 시 반에 일어나서 자전거를 타고 신문을 돌렸습니다. 저는 새벽 한두 시에 신문을 더 일찍 돌린 다음 이른새벽을 호젓하게 글쓰기와 책읽기로 보내고 싶었지만, 제가 돌리던 신문은 새벽 두 시나 되어야 겨우 신문이 왔을 뿐 아니라, 때로는 새벽 네 시가 되어야 갖다 주어서 새벽일 하기 퍽 고달팠습니다. 그래도 이무렵부터 새벽 두 시 언저리에 일어나서 하루를 맞이하는 버릇을 들였어요. 새벽에 일어나면 새벽별도 곱고 마을도 조용합니다.

 아직 넉 돌이 안 된 우리 집 첫딸은 제 어버이가 살아가는 모습을 물끄러미 바라보면서 고스란히 따라하듯이 배웁니다. 어버이가 옳고 착한 말을 하면 아이 또한 옳고 착한 말을 하며, 어버이가 호미를 쥐면 아이도 호미를 쥐며, 어버이가 셈틀 앞에 앉으면 저도 셈틀 앞에 앉으려고 합니다.

 아이하고 책방마실을 할 때면 아이 또한 책방마실을 즐깁니다. 아이하고 골목마실을 하자면 아이 또한 골목마실을 즐겨요. 제 어버이가 흐뭇한 낯빛과 몸짓으로 즐기는 삶을 아이 또한 흐뭇하게 받아들입니다.

 아이하고 함께 살아가면서 아이한테 이모저모 가르친다 할 테지만, 어버이 또한 아이한테 여러모로 배웁니다. 어버이가 아이 앞에서 어떻게 살아가느냐에 따라 아이가 앞으로 자라날 길이 사뭇 다릅니다. 어버이가 사람을 바라보며 ‘남자는 머리가 짧아야 하고, 집일은 여자가 해야 해.’ 하는 생각이라면, 제아무리 어린 아이들이라 하더라도 이런 어버이 생각을 똑같이 물려받습니다. 요즈음 온누리는 남녀평등이니 무어니 말들은 하지만, 막상 사람들 넋이나 삶은 그닥 달라지지 않아요. 얄궂은 모습이 어버이한테서 아이한테 남김없이 이어지기 때문입니다.

 어른 스스로 먼저 바꾸지 않는데 아이보고 먼저 바꾸라 할 수 없습니다. 웃물이 흘러 아랫물이 되고, 아랫물은 어느덧 또다른 웃물이 되어 제 아랫물한테 물을 흘립니다. 돌고 도는 물입니다. 웃물 스스로 맑은 물이 되어야지, 아랫물만 앞으로 맑은 물이 되라 할 수 없어요. 바로 오늘부터 어른 된 사람 스스로 맑고 착하며 참다운 삶을 사랑해야 합니다.

 아이하고 함께 살아가며 책방마실을 하기란 몹시 힘들어, 《우리 말과 헌책방》을 제때 맞추어 내놓기가 참으로 벅찹니다. 그러나 아이하고 함께 살아가기 때문에 제때에 맞추어 11호 12호 꼬박꼬박 채우기만 해서는 사람들하고 살가이 나눌 책삶 헌책방삶 말삶을 아름다이 여미지 못할 수 있어요. 빨리 가거나 더디 가거나 할 《우리 말과 헌책방》이 아니라, 한 권 두 권 알뜰히 속살을 가다듬으면서 나눌 잡지여야 한다고 느낍니다.

 이제 11권째를 내놓으면서 생각합니다. 어젯밤 좀처럼 잠이 들지 못하면서 둘째 아이 태어나면 또 어떻게 내 삶을 바꾸며 새로 태어나야 할까 헤아리다가, 나 스스로한테 글월 하나 띄우자는 생각으로 ‘이 땅 푸름이한테 물려주는 선물’과 같은 ‘아이 키우는 아버지 이야기’를 써야겠다고 느낍니다. 둘째가 태어나기 앞서 이 나라 푸름이한테 ‘어버이 되는 길’ 이야기를 글 하나로 갈무리해 남기고 싶습니다. 잡지를 받는 분들 모두 고맙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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차례

머리말 : 아이들과 살아가며 책방마실

가. 책방마실
   마음 놓고 다니지 못하지만 마음 들여 애써 간다
   부리나케 고르고 사서, 아이 재우고 힘겹게 읽기
   숱한 책 골고루 사기, 책을 읽는 눈썰미 넓히기
   음성 읍내 책방 1
   음성 읍내 책방 2

나. 헌책방
   헌책방 〈책밭서점〉 발자국
   헌책방 〈책밭서점〉 길그림
   헌책방 일꾼하고 이야기나눔
   헌책방 〈책밭서점〉 나들이
   사진 하나 말 하나

다. 책과 삶
  김규항과 진중권 · 아껴 아껴 책읽기 · 귀지를 파는 아빠
  나무를 담은 그림책 · 이향원
  찬물 빨래 하고 나서 책읽기 · 셈을 못하는 사람
  사라지는 책은 슬프지 않다 · 어머니
  뜨개책 · 단풍씨 · 당근풀 · 사람과 삶과 사랑

라. 우리 말
   ‘합니다’와 ‘하고 있습니다’
   함께 살아가는 말
    : 사진찍기 · 잔소리 · 밥하기 · 어버이 · 낮잠 · 말괄돼지 ·
      어른 · 쪽지가 왔습니다
   ‘-의’ 안 써야 우리 말이 깨끗하다 : 화제의
   ‘-적’ 없애야 말 된다 : 민족주의적
   좋은 말 새로 읽기

꼬리말 : 많이 늦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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