자전거쪽지 2011.7.2.
 : 담배꽃 언덕길



- 아이를 수레에 태우고 음성 읍내 장마당 마실을 나오려 하는데 빗물이 듣는다. 마당에 널었던 빨래를 바삐 걷는다. 빨래를 집에 넌다. 다시 바깥으로 나오며 하늘을 올려다보니 해가 살짝 비치려 한다. 다시 마당으로 빨래를 내놓을까 하다가, 어쩌면 날이 활짝 개면서 무더울는지 모르기에, 빨래는 집에 둘 때가 한결 나으리라 생각한다.

- 여느 날처럼 헐떡이며 넘는 숯고개에 이를 무렵, 오른편 담배밭을 바라보니 담배꽃이 피었다. 자전거를 세우고 아이한테 “저기 봐, 담배꽃이 피었네.” 하고 이야기한다.

- 음성 읍내로 들어서기 앞서, 길고양이 한 마리가 차에 치여 죽은 모습을 보다. 아이는 “고양이가 저기 누웠네.” 하고 말한다. 고양이 곁에 자전거를 세우고는 가만히 들여다본다. “고양이 눈 없어.” 하는 아이 말. “아니야, 눈 있어. 차에 치여 죽어 그래.”

- 읍내에 닿아 먹을거리를 장만한다. 우리처럼 자전거에 수레를 달고는 아이를 태운 아저씨를 한 사람 스치듯 만나다. 다음에 다시 만날 때에는 인사를 하면서 수레를 태우고 다니는 이야기를 나누고 싶다.

- 과일집에 들러 수박이며 오얏이며 장만한다. 살구를 장만하고 싶었는데, 우리가 들르는 단골집에는 살구가 없다.

- 아이한테 오얏 하나를 쥐어 준다. 아이는 집으로 돌아오는 길에 오얏을 냠냠 깨물어 먹는다. 빵집에 들러 조금 비싼 얼음과자를 사 준다. 아이는 얼음과자를 막대기까지 쪽쪽 빨며 먹는다. “얼음과자 맛있어?” “응, 맛있어.” 용산리를 지나 큰못 오르막에 들어서기 앞서 꾸벅꾸벅 졸더니 이내 잠든다. 배가 고프다 하기에 찐빵을 하나 더 주었는데, 찐빵을 문 채 잠들었다. 찐빵은 살며시 빼내어 봉지에 담는다. 어떻게 할까 하다가 아이를 수레에 눕히기로 한다. 가장 느긋하게 쉴 수 있도록 하고 싶다.

- 아이가 앉은 채 잠든 수레를 끌 때하고 아이를 눕힌 수레를 끌 때하고 사뭇 다르다. 아이를 눕히니 훨씬 힘겹다. 자전거 발판을 밟기 꽤 벅차다. 누우면서 무게가 뒤로 더 쏠려 이렇게 되는 듯하다. 그렇지만, 예전이든 앞으로이든 아이가 수레에서 흔히 잠들기 마련인 만큼, 이렇게 눕혔을 때에도 자전거 발판을 씩씩하게 잘 밟아야 한다. 기운을 내자. 다리에 더 힘을 주자.

- 숯고개 꼭대기에 닿으며 살짝 숨을 돌린다. 흐르는 땀을 손등으로 문지른다. 아이하고 살아가는 나날을 곰곰이 생각한다. 요즘은 여느 집마다 아이를 일찌감치 어린이집에 넣는다. 어린이집에서는 일찍부터 영어를 가르친다. 집에서도 여느 어버이들은 영어 그림책을 읽히고 영어 비디오나 만화영화를 보여준다. 초등학교에 들기 앞서 아이들은 영어를 꽤 쏼라쏼라 읊는다. 어린 나날부터 영어를 듣고 익히는 아이들은 앞으로도 영어를 여느 말마디에 쉽게 섞겠지. 자랑이나 뽐내기가 아니더라도 영어를 영어로 느끼지 않으면서 쓰겠지. 나는 우리 집에서 이 아이한테 영어를 가르치지 않을 뿐 아니라, 더 착하면서 더 쉽고 더 바른 말을 쓰도록 이끌려고 힘을 쓴다. 옆지기도 함께 힘을 쓴다. 그러나 우리 둘레 이웃이라든지 동무라든지 여느 어른들은 영어를 비롯해 말답지 않은 말을 너무 쉽게 쓰고야 만다. 아이가 아주 어릴 적부터 자가용에 태우는 일도 나로서는 하나도 달갑지 않다. 아이는 뛰어놀아야 한다면서 왜 아이를 자가용에 태울까. 어른부터 스스로 자가용을 멀리하거나 안 타면서 아이한테 뛰어놀라 이야기해야 옳지 않을까.

- 숨이 턱에 닿은 채 집으로 돌아오다. 아이를 살며시 안아 집으로 들어간다. 자리에 눕히니 아이가 잠에서 깬다. 그냥 더 주무셔 주면 얼마나 좋을까. 저녁나절, 아이는 마당에 놓은 제 자그마한 자전거를 타면서 논다. 얼른 다리힘을 키우고 키도 크렴. 앞으로 몇 해 뒤에는 너 스스로 자그마한 자전거를 몰며 아버지 곁에서 함께 달려 주렴.
 


댓글(0) 먼댓글(0) 좋아요(1)
좋아요
북마크하기찜하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