자전거쪽지 2011.6.20.
 : 빠방이가 시끄러워



- 아이 어머니 미역국을 이제부터 고기를 넣지 않는 미역국으로 끓이기로 한다. 그런데 무가 다 떨어져서 사야 한다. 음성 장날은 이틀을 기다려야 한다. 오늘은 무극 장날이라 무극으로 가기로 한다.

- 무극으로 가는 길은 네찻길이고, 음성으로 가는 길은 두찻길이다. 네찻길 무극길은 길가에 나무 그늘 하나 없으며, 자동차가 대단히 씽씽 달릴 뿐더러, 커다란 짐차가 무척 자주 달린다. 두찻길 음성길은 길가에 나무 그늘이 많고 논밭이 드넓게 펼쳐지며, 곳곳에서 쉬어 갈 수 있는데다가 오가는 자동차가 몹시 적다. 아이는 음성으로 오가는 길에서는 신나게 노래를 부르지만, 무극을 다녀오는 길에는 노래를 부르지 않는다. 자동차 소리에 파묻힐 뿐 아니라, 자동차 소리가 귀를 찌르기 때문이다. 자전거수레에 앉은 채 자동차를 바라볼 때에는 자동차란 몹시 무시무시할 뿐 아니라 우람해 보인다. 이런 무시무시하고 우람한 자동차가 내는 소리는 대단히 시끄럽다. 자동차를 타는 사람은 자전거를 타는 사람이나 수레에 탄 사람을 하나도 생각하지 못한다.

- 집을 나선 다음 논둑길을 달릴 때에는 시원하다며 노래를 부르던 아이가 마을 어귀 두찻길을 지나 무극으로 이어지는 네찻길에서는 조용하다. 자동차가 살짝 뜸한 몇 초 즈음 해서 “빠방이가 시끄러워!” 하고 외친다. “빠방이가 시끄럽지?” “응, 빠방이가 시끄러워.” “그래서 우리 집에는 빠방이가 없어요. 아버지도 시끄러운 빠방이를 안 좋아해서 자전거를 타요.”

- 음성으로 가는 두찻길에서도 자동차들은 빨리 달린다. 자전거 옆을 아슬아슬하게 스치는 자동차는 몹시 많다. 그러나 두찻길이기 때문에 조금 멀찍이서 마주 달리는 자동차가 보이면 자전거 뒤에서 달리던 자동차는 으레 빠르기를 조금은 줄이기 마련이다. 네찻길과 견주면 아주 조용하다 할 만하다. 게다가 두찻길이란 빨리 달리도록 쭉 뻗은 길이 아니라 구불구불한 길이다. 네찻길이란 빨리 달리려고 반듯하게 편 길이다. 반듯하게 편 길에서 자동차들은 거침없다. 더 빨리 달려야 하고, 둘레를 살필 까닭이 없다. 고속도로 둘레에 나무그늘이 없는 까닭을 생각해 본다. 참말 고속도로 둘레에는 나무그늘이 있을 까닭이 없다. 천천히 가며 쉬엄쉬엄 함께 살아가는 이웃이 어우러지는 곳에만 나무그늘이 있다.

- 죽은 길짐승을 여럿 본다. 찻길이 넓어질수록 길죽음이 늘어난다. 땅밑길에서도 길죽음을 여럿 보다. 짐승들이 어쩌다가 이곳 땅밑길에 접어들면 더 무서움에 떨다가 차에 받치겠지. 굴을 울리는 소리에다가 커다란 쇳덩이가 몸을 받을 때에 얼마나 무서웠을까. 자전거를 길가에 세우고 길죽음 짐승 옆에서 한동안 지켜보는데, 어느 자동차도 길바닥 주검 옆으로 비켜 달리지 않는다. 그냥 밟고 지나간다.

- 읍내에 들어서는 두찻길로 빠지다. 이 길로 가면 장마당으로 가는 데에 2분쯤 늦추어지지만, 돌아가는 두찻길은 조용하다. 이 호젓한 길에서 아이는 드디어 노래를 부른다. 바람에 나뭇잎 나부끼는 소리를 듣는다.

- 천천히 달리면 한결 느긋하다.

- 나중에 아이하고 자전거마실을 다닐 때를 맞이한다면, 되도록 두찻길 시골길로만 달려야겠다고 생각한다.

- 무하고 당근을 사는데 바가지를 썼다고 느낀다. 다음에 다시 무극 장마당에 올는지 모르겠으나, 오늘 산 곳에서는 두 번 다시 사지 말자고 다짐한다.

- 장마당에서 조개살을 살 수 없어 할인마트에 간다. 할인마트에는 언 바지락살만 있다. 바지락살을 사서 나오려는데, 셈하는 분이 “아이하고 추억을 만드세요? 나도 저기 타고 싶어요.” 하고 이야기한다. 더위에 힘들어 대꾸하지 못했지만, 아이하고 추억을 만들려고 태우는 수레가 아니라, 장마당에 먹을거리 마련하려고 타고 나오는 자전거이다.

- 집으로 돌아가는 길, 첫째 오르막에서 자전거 뒤에 살짝 떨어진 채 붙어서 뒤에서 다른 차가 으러렁거리며 달라붙지 않게끔 막아 주는 노릇을 해 주는 자동차가 하나 있다. 지난 2007년 2월에 마지막으로 이와 같은 자동차를 한 번 겪은 뒤 네 해만에 처음이다. 모두들 더 빨리 더 씽씽 더 아슬아슬 지나치려고만 하는데, 이렇게 수레 뒤에서 수레가 조금이나마 걱정없이 오르막을 지날 수 있게끔 마음쓰는 사람이 있구나.

- 나무그늘 하나 없지만, 둘째 오르막을 넘은 다음 살짝 멈추어 아이한테 물을 먹이고 나도 물을 마신다. 참말 이런 찻길은 달릴 마음이 들지 않는다. 그러니까, 이런 찻길을 지나가는 마을사람을 보기도 힘들겠지. 다시 자전거를 타고 달리자니, 장마당 마실을 하고 집으로 돌아가는 할아버지 자전거를 건너편에서 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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