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진읽기 삶읽기 사람읽기 5
― 아이한테 물려주는 선물



 개구리는 저녁부터 밤새 웁니다. 시골자락에서 창문을 열고 가만히 귀를 기울이면 무논마다 개구리가 왁자하게 노래하는 소리를 들을 수 있습니다.

 개구리는 아침이나 한낮이나 이른저녁에는 울지 않습니다. 개구리 노랫소리는 오직 저무는 저녁부터 밤에 들을 수 있습니다. 겨울이 끝나고 봄 문턱으로 들어서는 철에는 아침이나 낮에도 개구리 소리를 듣습니다. 한창 봄철에도 개구리 소리를 아침이나 낮에 듣곤 합니다. 그러나, 멧개구리가 겨울잠에서 깨어 알을 낳고 다시 쉬는 동안에는 개구리 소리가 한동안 끊어지고, 알을 깬 개구리가 새 목숨을 알리듯 울어댈 한여름에 접어들면 오로지 깊은 저녁과 밤에만 우렁찬 노랫소리를 듣습니다.

 그리 오래된 옛날까지 아니더라도 지난날을 곰곰이 헤아리면, 꽤 커다란 도시라는 곳에도 논과 밭이 있었습니다. 이제는 광역시라는 이름을 붙이며 넓어졌지만, 광역시까지 아니더라도 조그맣게나마 논밭을 품던 도시였습니다.

 어느덧 경제개발이 꽃을 피우고 물질문명이 열매를 맺으면서, 도시에서는 논밭을 찾아보기 어렵습니다. 논밭에서 거두는 곡식이나 푸성귀로는 돈벌이가 형편없기 때문에, 이 논밭을 팔고사면서 아파트를 짓거나 쇼핑센터를 짓습니다. 다른 여러 나라하고 자유무역협정을 맺으며 값싼 곡식과 푸성귀와 열매를 사들이려 할 뿐, 이 땅 사람들 스스로 이 땅을 일구어 사랑스러운 곡식과 푸성귀와 열매를 맺으려 하지 않습니다. 자동차를 만들어서 팔면 되고, 손전화나 셈틀을 만들어서 팔면 된다고 여깁니다. 내 손으로 논밭을 일구어 내 밥과 옷과 집을 지으려고 애쓰는 사람은 늘어나지 못하고, 초·중·고등학교뿐 아니라 대학교까지 아이들한테 저희 손을 움직여 논밭을 일구거나 저희 밥과 옷과 집을 몸소 마련하도록 이끌거나 돕지 않습니다.

 도시에서 태어나 도시에서 살아가는 아이가 된다면, 이 아이는 도시에서 무엇을 보고 무엇을 느끼며 무엇을 생각할까 헤아려 봅니다. 도시에서 살아가는 사람을 보고, 도시에 선 집과 건물과 길을 볼 테며, 도시를 둘러싼 자동차 물결과 도시를 감도는 숱한 유행과 소비와 경쟁을 보겠지요. 도시에서 태어나 도시에서 살아가며 사진길을 걷는다면, 아이가 생각하거나 바라보거나 꿈꾸는 길이란 거의 틀에 박힐 수밖에 없겠지요. 아이로서는 둘레 사람들 누구나 찍는 사진이 아니라 무언가 남달라 보이는 사진을 찾아나서려고 할 테지만, 남달라 보이는 사진을 찍는 일이 얼마나 뜻있거나 값있는지를 알아채지 못합니다. 남달라 보일 사진에 앞서 사진다운 사진이 무엇이고, 사진을 왜 찍으며, 사진으로 무엇을 할 수 있는가를 깨닫지 못합니다.

 사진은 두 눈으로 봅니다. 앞을 못 보는 사람은 사진을 못 봅니다. 눈이 있는 사람만 볼 수 있기에 사진을 일컬어 ‘보여주는 문화나 예술’이라 일컬을 수 있습니다. 앞을 못 보는 사람이더라도 옆에서 소리내어 읽으면 글을 소리로 들으며 ‘글읽기’를 합니다. 춤이나 노래도 매한가지입니다. 앞을 못 보니 그림 또한 볼 수 없겠지요.

 그런데 그림을 ‘보여주려고 그리는 그림’이라고 이야기하지 않습니다. 그리고픈 무엇이 샘솟기에 그리는 그림이라고 이야기합니다. 그려야 하니까 그리는 그림이지, 보여주려고 그리는 그림이란 그림이 아닙니다.

 보여주려고 찍는 사진이란 사진이 아닙니다. ‘보는 사진’이지만 ‘보이는 사진’이 아니고, ‘보는 그림’이지만 ‘보이는 그림’이 아니에요.

 살아가는 이야기를 담는 글이고 그림이며 사진입니다. 살아가는 이야기를 담기에 빛이 나는 글이며 그림이요 사진이에요. 글을 읽으면서 글을 쓴 사람 삶을 읽습니다. 그림을 읽으면서 그림을 그린 사람 삶을 읽습니다. 사진을 읽으면서 사진을 찍은 사람 삶을 읽어요.

 더 놀라운 ‘표현기법’으로는 사진이 발돋움하지 않습니다. 더 빼어난 ‘촬영기법’이나 ‘현상기법’으로는 사진이 빛나지 않습니다. 사진이 발돋움하려면 사진을 찍는 사람 삶이 발돋움해야 합니다. 사진이 빛나려면 사진을 찍는 사람 스스로 삶을 빛내야 합니다.

 날마다 아이 삶자락을 사진으로 담으면서 생각합니다. 아버지로서 아이한테 물려줄 선물이란 아이가 막 태어난 때부터 한창 자라는 숱한 모습을 아버지가 찍은 사진뿐 아니겠느냐 생각합니다. 여기에 몇 가지 덧붙인다면, 아이가 스스로 읽도록 장만한 책이랑 아버지가 즐겨읽으며서 장만한 책이 있습니다. 아이가 자라는 동안 쓴 여러 가지 물건과 자취가 있습니다. 이를테면, 아이한테 누군가 옷가지를 선물해 주었을 때에 옷가지가 담긴 상자가 있고, 이웃 아이한테 받은 놀잇감이 있습니다. 물려입은 옷가지라든지 천기저귀도 있겠지요. 한 번 선물받은 삶을 한껏 사랑하면서 즐기려는 아버지로서는 한 번 선물한 아이 삶을 아이 스스로 사랑하기를 바라는 마음 한 가지만 사진과 함께 물려줄 수 있습니다. (4344.6.11.흙.ㅎㄲㅅㄱ)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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