고운 능금꽃 우람한 나무 사잇길
옆지기 어머님하고 읍내 장마당에 가는 길입니다. 아이는 한손에 할머니 손을 잡고, 한손에 아버지 손을 잡습니다. 여느 때와 마찬가지로 큰길부터는 자동차가 싱싱 달립니다. 넓은벌 마을에서 음성 읍내로 가는 조그마한 두찻길에는 자동차가 그리 많이는 안 다니지만, 모두들 무시무시하게 내달립니다. 시골길 가장자리는 시골사람이 걷는 자리이지만, 사람이 걱정없이 걷도록 자동차 다니는 자리하고 금을 긋지 않았을 뿐더러, 사람들이 다니기 좋도록 돌을 깔거나 반반하게 닦지 않습니다. 새로운 찻길을 닦을 때에는 늘 자동차가 더 빨리 달리도록 하는 데에만 마음을 쓸 뿐입니다.
시골에서 살아가며 어디에서든 마음이 넉넉해지거나 느긋해지지만, 읍내로 볼일을 보러 다녀오려고 이 찻길 녘에 나올 때면 마음이 바빠지거나 힘들어집니다. 어느 자동차이건 길을 걷는 사람을 헤아리지 않기 때문입니다. 걷는 사람들한테 바람이 날리지 않도록 한다든지, 나를 칠까 두려워 하지 않게끔 한다든지, 빠르기를 줄여 조용히 지나간다든지 하지 않습니다. 고작 몇 초 마음을 기울이는 일이 없습니다.
자동차 내달리는 두찻길을 지나 시골버스 타는 자리에 닿습니다. 시골버스 타는 자리 곁에는 우람한 느티나무가 섭니다. 어른 둘이 두 팔을 벌려 안을 만큼 굵은 느티나무입니다. 이 느티나무 굵은 둥치 둘레로는 시멘트로 빼곡하게 발라서 사람들이 걸어서 돌아다닐 때에 비오는 날에 발이 빠지는 일은 없습니다. 다만, 느티나무가 사월 끝무렵에 꽃을 피우고 오월 첫무렵에 씨를 맺을 때에, 이 느티씨가 떨어져 뿌리를 내릴 만한 흙땅 또한 없습니다.
궁금하다 여기며 느티나무 앞에 가만히 쪼그려앉습니다. 어쩌면 한두 느티씨가 이 아무 빈틈 없는 시멘트땅 한구석 어딘가에 뿌리를 내렸을는지 모르니까요. 수많은 다른 풀은 시멘트땅 어딘가 빈구석을 찾아내어 뿌리를 내리고 잎을 틔워 꽃까지 피우니까요.
참말 느티씨 몇이 용케 흙에 뿌리를 내려 살아남습니다. 굵은 둥치 가까이 아주 조금 있는 빈틈에 가느다란 뿌리를 내리고, 이 가느다란 뿌리 굵기하고 똑같이 가느다란 줄기를 올린 어린 느티나무가 몇 보입니다.
어린 느티나무 키는 어린이 손으로 한 뼘 길이쯤 될까 말까 합니다. 어린 느티나무에 달린 잎은 우람한 느티나무에 달린 잎하고 크기를 견주면 참으로 작아, 꼭 어른이 갓난쟁이를 품에 안을 때하고 같구나 싶어요. 그래도 십 센티미터가 채 안 되는 어리디어린 느티나무 가느다란 줄기를 살며시 쓰다듬으면 ‘아, 여느 풀이 아닌 참말 나무로구나.’ 하고 느낄 수 있습니다.
문득, 만화영화 〈빨간머리 앤〉 첫 이야기가 떠오릅니다. 〈빨간머리 앤〉 첫 이야기에서 앤이 고아원에서 매튜 아저씨 아주머니네로 가는 길에 ‘하이얀 능금꽃 사잇길’을 지나가는 대목이 나와요. 이 대목에서 앤은 말을 잊은 채 깊이 우러나오는 아름다운 사랑을 느낍니다. 자연이란 얼마나 아름다운가 하고 느끼는 사랑이에요. 만화영화 〈빨간머리 앤〉을 숱하게 보았으니 첫 이야기 이 대목 또한 숱하게 보았는데, 오늘 아이하고 만화영화를 다시금 보면서 새삼스레 능금꽃 고운 사잇길을 되뇝니다. ‘그래, 이 만화영화에 나오는 능금나무는 능금알을 따기 좋게 가지를 구부려 난쟁이 나무가 되도록 한 나무가 아니구나. 그러니까 이 능금나무는 무척 키가 높이 자라면서 마차가 지나가도 고개를 들려 한참 올려다보아야 볼 수 있고, 나무 숲길이 되면서, 앤이 새로운 이름을 예쁘게 붙여서 일컫고 싶어 할밖에 없구나. 그나저나, 오늘날 이 나라에는 능금나무가 저 목숨대로 싱그럽고 씩씩하게 가지를 뻗어 우람하게 자라나도록 하지 않아. 기껏 열 해를 온힘을 쥐어짜내어 열매를 맺고는 기운을 다해 죽는다고 하잖나. 어여쁜 능금나무가 예쁜 길을 이루는 데가 있을까. 충주시는 시내로 들어서는 길목에 능금나무를 심기는 했지만, 능금꽃 흐드러지는 어여쁜 꽃길이지는 않아. 사람들 누구나 능금알을 맛나게 먹는다지만, 정작 능금꽃이며 능금나무이며 고운 능금꽃 우람한 나무 사잇길이란 한 군데도 없어.’ (4344.5.27.쇠.ㅎㄲㅅㄱ)