책으로 보는 눈 160 : 책쉼터

 히로세 다카시 님이 1992년에 내놓은 《왜 인간은 전쟁을 하는가》(프로메테우스출판사,2011)를 읽으면서 “그렇다면 핵무기는 대체 여태껏 무엇을 미연에 방지해 왔다는 것인가? 놀랍게도 ‘핵무기는 핵전쟁을 미연에 방지해 왔다’라는 결론에 이르게 된다 … 이 믿기 힘든 사실을 전 세계 사람들은 훌륭하다고 믿고 있다. 핵무기가 없으면 당연히 핵전쟁은 일어나지 않는다(160쪽).”라는 대목에 밑줄을 긋습니다. 더없이 뻔하며 올바른 생각이지만, 오늘날 사람들은 이토록 뻔하며 올바른 생각을 제대로 살피거나 찬찬히 받아들이지 못합니다. 이쪽에 핵무기가 있으면 저쪽에서 선뜻 공격하지 못한다지만, 이쪽도 저쪽도 핵무기가 없으면 핵전쟁은 일어나지 않습니다. 이쪽에 군대가 있으면 저쪽에서 섣불리 쳐들어오지 못한다지만, 이쪽도 저쪽도 군대가 없으면 전쟁이란 터지거나 생기거나 일어나지 않습니다.

 핵무기가 있기 때문에 핵전쟁이 일어날 수밖에 없습니다. 전쟁무기가 있으니 전쟁이 일어날 수밖에 없습니다. 권력이 있기 때문에, 또 명예라는 허울이 있고 돈이라는 껍데기가 있기 때문에 수많은 다툼과 싸움이 생깁니다.

 좋은 책을 읽는 사람이 모두 좋은 삶을 일구지는 않습니다만, 스스로 좋은 삶을 바라면서 좋은 책을 읽을 때에는 좋은 삶을 일굽니다. 좋은 책을 읽는다지만, 내 이름값을 높이거나 몸값을 높이려는 뜻에서, 이른바 ‘처세·경영’이나 ‘자기계발’을 하겠다면서 좋은 책을 읽는다면 좋은 삶을 일구지 못합니다. 그저 더 돈을 벌어들이거나 더 이름값을 높이거나 더 권력을 단단히 하려고 애쓰겠지요.

 《왜 인간은 전쟁을 하는가》를 더 읽으며 “요즘의 미사일 경쟁은 규모의 우위에 서는 게 목적이 아니라 적을 순간적으로 격멸시키는 성능에 목적을 두는, 보다 잔인한 형태가 되었다(299쪽).”라는 대목에도 밑줄을 긋습니다. 그러니까, 오늘날 전쟁이란 ‘내 나라를 사랑하며 지키는 일’이 아닙니다. ‘이웃나라를 깡그리 죽여 없애는 짓’입니다. 군대란 ‘이웃나라 사람을 남김없이 죽이고 이웃나라 마을을 송두리째 없애는 짓’을 재빨리 하도록 살인훈련을 하는 데입니다.

 미국이든 러시아이든 일본이든 중국이든 새 무기를 더 만들고 새 군대를 더 키우는 데에 돈과 힘과 겨를을 들인다 하더라도, 한국이라는 나라는 새 무기나 새 군대가 아닌, 착한 사람과 참다운 누리와 아름다운 자연을 사랑하며 돌보는 데에 돈과 힘과 겨를을 들일 수 있기를 꿈꿉니다. 잘 팔리는 책만 잔뜩 쌓는 커다란 새책방보다는 마을사람 누구나 끌신을 신고 가벼운 옷차림으로 마실할 만한 작은 책쉼터가 온 나라 곳곳에 두루 자리잡을 수 있으면 좋겠다고 비손합니다.

 크고 북적거리는 책쉼터에서 다시금 베스트셀러나 스테디셀러나 자기계발 책만 들여다보는 삶이 아니라, 조그마하며 수수한 책쉼터에서 어른은 《돼지가 있는 교실》(달팽이,2011)이나 《성의 패러독스》(숲속여우비,2011) 같은 책을 읽고, 아이는 《펠레의 새 옷》(지양사,2001)이나 《미스 럼피우스》(시공주니어,1998) 같은 그림책을 읽을 수 있으면 아주 기쁘겠습니다. 착한 삶을 사랑하며 착한 이웃하고 사랑을 나누는 어여쁜 작은 마을이 그립습니다. (4344.5.13.쇠.ㅎㄲㅅㄱ)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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