책으로 보는 눈 159 : 도서관
모두 아홉 권으로 된 《초원의 집》은 2005년에 새롭게 한국말로 옮겨집니다. 2011년이 되어도 꾸준하게 사랑받습니다. 2005년에 새롭게 옮겨진 이 책이 2050년까지 사랑받을 수 있으면 2050년까지 이 땅에서 살아갈 숱한 어린이와 푸름이와 어른은 좋은 넋으로 좋은 터전을 일구려 하던 사람들 땀방울과 마음결을 느낄 수 있으리라 생각합니다. 그러나 이 책이 2050년까지 고이 잇지 못하면서 판이 끊어진다면, 이 책을 찾아보려면 헌책방을 누비거나 도서관을 찾아야 할 테지요. 도서관에서 아홉 권 한 질을 갖추었더라도 사람들이 오래도록 많이 찾아 읽는다면, 하루하루 낡고 닳아 더 빌려주지 못할 수 있습니다. 한 질을 알뜰히 갖추었다지만 사람들이 거의 찾아 읽지 않는다면, ‘도서관 건물을 애써 짓기는 했지만 새로 들여올 책을 넉넉히 꽂을 새 자리를 새로 늘리지 않는 한국 도서관 모습’을 돌아볼 때에, ‘대출실적 적은 책이라는 딱지가 붙으며 버려지’고 맙니다.
나는 우리 네 식구 살아가는 조그마한 집이 살림집이면서 도서관이라고 여깁니다. 어설프지만 어설픈 대로 살림을 꾸리며 지내는 집이요, 이 집에는 식구들이 서로 아끼거나 좋아하는 책을 얌전히 꽂고는 틈나는 대로 끄집어서 읽습니다. 한 번 읽은 뒤로 오래도록 그냥 꽂히는 책이 있을 테고, 열 번 스무 번 다시 끄집어서 읽는 책이 있을 테지요. 그저 한 번만 읽는 책이든, 수없이 다시 꺼내거나 들추는 책이든, 우리 식구한테는 반가운 책입니다. 고마운 ‘집 도서관 책’입니다.
이제 갓 네 살을 살아가는 아이는 제 어머니와 아버지처럼 글책을 마음껏 읽지 못합니다. 그러나 어머니와 아버지 되는 사람은 글책을 꾸준하게 장만합니다. 아이한테는 그림책을 읽히지만, 아이가 읽을 책 말고 어머니와 아버지가 읽을 책을 하나둘 갖춥니다. 아이는 제 어머니와 아버지가 책을 읽는 모습을 가만히 바라봅니다. 무얼 읽느라 이렇게 쏙 빠져들어 저랑 안 노는가 궁금해 할는지 모릅니다. 어머니와 아버지가 어떠한 책을 읽는지 저도 알고플 수 있습니다.
아이는 앞으로 이 책을 읽을 수 있고 안 읽을 수 있습니다. 아이 스스로 글을 깨우치고 나서 퍽 여러 해가 흐른 뒤에는 제 어머니와 아버지가 읽던 책을 물려받아 읽을 수 있겠지요.
아이가 스스로 글책을 신나게 읽을 때라면 적어도 열 해는 흘러야 합니다. 열 해가 흘러야 한다면 올해가 2011년이니 2021년은 되어야 합니다. 2005년에 새롭게 나온 《초원의 집》은 2021년에도 살아남을 만할까요. 2011년 4월 21일에 새로 나온 《성의 패러독스》(수전 핀커 씀,숲속여우비 펴냄) 같은 책은 앞으로 언제까지 사랑받으려나요. 이 나라 도서관 가운데 몇 군데에서 이 책을 살뜰히 사들여 알뜰히 건사하려나요. 국공립 도서관을 비롯해, 지자체 도서관이랑 초·중·고등학교 도서관, 또 대학교 도서관과 시골 작은 도서관에서는 《초원의 집》을 갖출까 궁금합니다. 《성의 패러독스》 같은 책을 갖출는지 궁금합니다. 우리 식구 살아가는 시골자락 둘레에는 도서관이 없어, 우리는 우리 집을 도서관으로 삼습니다. (4344.5.6.쇠.ㅎㄲㅅㄱ)