빨래하고 책읽기


 빨래를 할 때에 아이는 곁에서 물놀이를 하고 싶습니다. 아버지는 아이가 물놀이를 할 때면 으레 옷을 다 적시니까 싫어하지만, 아이가 놀고 싶어 하는 데에 차마 말리지 못합니다. 가장 좋은 길이라면, 빨래를 할 때에 아이가 씻도록 하는 일이 될 테지요. 집에서 물을 마음껏 쓸 수 있는 날을 맞이해서 얼른 이처럼 빨래하며 물놀이 어린이를 바라볼 수 있는 날을 손꼽습니다.

 빨래기계를 쓰면 손빨래 일감을 크게 줄입니다. 빨래기계를 쓰면 한 시간쯤을 손빨래 일에서 벗어납니다. 하루에 한 시간 빨래하기에 들인다 하더라도 한 달이면 하루 하고도 한 나절 남짓을 빨래에 쏟는 셈입니다. 밥을 하고 치우느라 날마다 두 시간쯤 쓴다면 다달이 이틀이나 사흘쯤은 밥하기에만 보내는 셈입니다. 따지고 보면, 하루 1/3은 잠을 자는 데에 쓰니까, 이렇게 내 겨를을 헤아리는 일은 좀 부질없습니다.

 아직 집에서 빨래를 할 수 없어, 다른 집에서 물을 얻어 쓰면서 빨래를 하다가, 다른 집 씻는방에 놓은 빨래기계 돌아가는 모습을 바라봅니다. 텅텅텅 소리를 내는 커다란 빨래기계에 든 빨래감은 내 오늘 빨래감보다 적어 보입니다. 그런데 빨래기계가 빨래를 해내는 데에는 저보다 훨씬 오래 걸립니다. 아마, 기계는 사람보다 물과 전기까지 훨씬 많이 먹을 테지요.

 손빨래를 하며 곰곰이 생각합니다. 내가 빨래기계를 써서 날마다 한 시간쯤 다른 데에 내 겨를을 쓸 수 있다면, 이만 한 겨를에 나로서는 무엇을 할 수 있을까 하고. 나로서는 날마다 한 시간을 더 누리면서 물과 전기를 더 쓰는 일을 더 보람차거나 알차게 누릴 수 있을까 하고.

 손빨래를 안 하고 빨래기계 장만해서 쓴다면 집살림을 조금 더 알뜰히 돌보는 내 삶이 될까요. 빨래기계 쓸 만한 녀석을 장만하자면 거의 100만 원 가까운 돈을 장만해야 하는데, 나는 100만 원에 가까운 돈을 어떻게 무슨 일을 하면서 벌어야 할까요. 오늘날 같은 누리에서 빨래기계 안 쓰는 사람은 바보이거나 멍청이라 할 만할까요.

 어제 하루 새삼스레 찬물로 빨래를 합니다. 물을 얻어 쓰는 데에서 따신 물이 안 나왔기 때문입니다. 시골에서는 기름으로 보일러를 돌리니까, 빨래를 하며 따신 물을 쓰자면 이웃 기름을 내가 더 써야 합니다. 내 집 보일러를 돌려 따신 물을 쓰면 내 집 기름을 쓰니까 걱정스럽지 않지만, 이웃 씻는방에서 빨래를 할 때에는 되게 미안합니다. 빨래기계는 따신 물 아닌 차가운 물로 얼마든지 잘 빨아 주니까 빨래기계를 쓰면 기름을 안 먹으니까, 빨래기계가 전기랑 물을 쓰더라도 똑같은 셈 아닌가 싶기도 합니다.

 빨래를 마칩니다. 마무리지은 빨래는 물병과 함께 가방에 넣습니다. 자전거 수레 뒤쪽에 10리터들이 물통을 넣습니다. 아이를 수레에 앉힙니다. 가방을 메고 자전거를 몰아 집으로 돌아옵니다. 아이는 자전거를 타며 좋아합니다. 빨래를 하면서 아이가 곁에서 물놀이를 하도록 하거나 씻기자면 품과 겨를을 더 들여야 합니다. 그렇지만, 아이와 함께 살아가는 어버이라면, 이 몫을 마땅하면서 거뜬히 즐길 노릇이리라 생각합니다.

 집으로 돌아와 물통을 내려놓고 빨래를 넙니다. 다 마른 빨래를 걷습니다. 아이하고 빨래를 개려 했지만, 몸이 고단해 한동안 드러눕습니다. 허리를 폅니다. 책을 몇 쪽쯤 읽고 싶었지만, 눈이 따끔거려 아예 한 쪽조차 펼치지 못합니다. 책으로 태어나도록 하는 글을 쓰는 사람은 어디에서 누구하고 어떤 일을 하는 사람일까 헤아리며 까무룩 잠이 듭니다. 아이가 종알종알 노래 부르는 소리를 꿈결처럼 듣다가 햇볕이 차츰 수그러들기에 깜짝 놀라듯이 깨어납니다. 자리를 박차고 일어나서 저녁밥을 짓습니다. (4344.4.5.불.ㅎㄲㅅㄱ)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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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lanca 2011-04-05 10:14   좋아요 0 | URL
아이가 참 이뻐요. 옆에서 돌아가고 있는 세탁기 소리가 가지는 의미에 대해서 생각해 봅니다. 모든 것을 너무 당연하게 생각하지 말아야 겠습니다. 좋은 글 잘 읽고 갑니다.

숲노래 2011-04-05 13:56   좋아요 0 | URL
고마운 삶은 참으로 마땅한 나날이기에,
이 고마운 삶을 늘 고맙게 받아들이려고
오늘도 더 즐겁게 생각하며 힘을 씁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