어머니 손뜨개


 옆지기는 나한테 옆지기이지만 아이한테는 어머니이다. 아이 어머니는 둘째를 배어 힘든 몸을 가누는 동안 뜨개질을 하면서 마음과 몸을 달랜다. 다른 여느 사람이 뜨개질을 한다면 어떠할까 궁금한데, 아이 어머니는 아이 옷 하나를 뜨는 데에 퍽 오랜 나날을 들인다. 한 땀씩 천천히 뜨니까.

 내 어머니가 형과 나한테 옷을 떠 주던 어린 날을 돌이킨다. 어머니로서는 딱히 옷을 사 주기 힘들었으니까 언제나 형 옷을 내가 물려입는데, 형 몸집이 동생하고 견주어 너무 커지니까 나중에는 형 옷을 나한테 물려줄 수 없었다. 형 옷은 내가 나중에 키가 커지더라도 입기 힘들 만큼 큰 옷이어야 했고, 형 몸크기에 맞는 옷을 찾기도 만만하지 않았다. 나는 우리 어머니가 나한테 옷을 몇 벌쯤 떠 주었는지 떠올리지 못한다. 어머니한테 여쭈어도 따로 말씀해 주시지 않는다. 국민학교 사오 학년 때까지는 아무 생각 없이 잘 입었으나, 육 학년이 될 때부터는 어머니가 떠 준 옷을 부끄럽다고 여겼다고 떠올린다. 한 반에 어느 누구도 뜨개옷을 입지 않았을 뿐더러, 이웃 반에서도 마찬가지이고, 아랫학년에서도 매한가지였기 때문이다. 어머니는 퍽 오랜 나날 손뜨개로 내 몸이 꼭 맞춤한(이라기보다 조금 널널한) 옷을 지어 입혀 주었으나, 손품이 깃든 이 옷이 얼마나 사랑스러우면서 좋은가를 이 철없는 때에 말 그대로 철없이 못 느꼈다. 어쩌면, 그때에 철이 없었다기보다 오늘날까지 철없는 사람이 아닌가 싶고, 제대로 삶과 사람과 사랑을 볼 줄 몰랐으니 예나 이제나 엇비슷하지 싶은데, 아무튼, 어머니한테 뜨개옷 안 입겠다고 말했다가는 구두주걱으로 엉덩이에 불이 나도록 얻어맞으니까 말은 못하지만 뜨개옷을 입고 학교에 가야 하는 날은 잔뜩 우거지얼굴이었다. 어머니도 아셨겠지. 나는 오늘날에도 내 속내가 얼굴에 고스란히 드러나서 내가 어떤 마음인지를 다 안다고 하니까.

 그런데 이렇게 뜨개옷을 입으며 지내던 육 학년 어느 날, 우리 반에서 꽤 예쁘다 하고 집안도 가장 부자이면서 부반장이고 여러 아이들한테 사랑받던 계집아이가 저보고 내 뜨개옷이 예쁘고 부럽다고 이야기한다. ‘요년이 날 놀리나?’ 이 아이는 나보다 키가 훨씬 크고 발도 훨씬 크며 힘도 훨씬 센 터라, 나나 다른 작은 아이들은 이 아이한테 아이스께끼를 꽤 시달리는데, ‘갑자기 뭔 소리?’

 그렇지만 이 한 마디를 듣고 난 다음에는 어머니 뜨개옷을 부끄러이 여기지 않았다. 더구나, 담임 교사가 허구헌날 우리들을 몽둥이로 두들겨팰 때에, 나는 내 몸보다 헐렁하도록 크게 지은 뜨개옷을 요모조모 접어서 엉덩이에 꽤 두툼하게 걸쳐지도록 했다. 담임 교사는 엉덩이를 몽둥이로 철썩철썩 두들겨패는데, 나는 뜨개옷으로 두툼하게 걸쳐진 자리에 맞으며 하나도 안 아프지만 아픈 척하며 아슬아슬 지나가고, 새삼 이 뜨개옷이 얼마나 고마운가 하고 느꼈다.

 형이나 내가 몸이 자라면, 어머니는 우리 옷을 이웃에 주거나 버려야 했다. 집에 살림이 늘어나니까 다 건사할 수 없기 때문이다. 어머니가 손수 뜬 뜨개옷은 받으려는 데가 없다며 버리려 하셨다. 하기는, 나부터 뜨개옷을 그닥 좋아하지 않았는데, 다른 집에서도 다르지 않았겠지. 그러나, 이무렵 뜨개옷이 버려지는 일이 내키지 않았다. 어머니는 ‘이제 입을 수 없는 옷을 집에 두는 일’을 못마땅해 하셨지만 꼭 한 벌만은 남겼다. 어머니한테는, “나중에 제가 커서 아이를 낳으면 우리 어머니가 손수 떠 준 이 옷을 보여주고 싶다.”고 말하면서 한 벌만큼은 남겼다. 어머니 뜨개옷은 워낙 오래 입어 꽤 늘어나고 처져서 볼썽사납다 할 수 있지만, 이 한 벌만은 남아 옷상자에 고이 깃들었다.

 첫째 아이가 입은 뜨개옷을 둘째 아이가 물려입을 수 있겠지. 첫째 아이에 이어 둘째 아이도 제 어머니 뜨개옷을 좋아해 줄 수 있을까. 첫째 아이는 제 손뜨개 옷을 동무나 또래나 동생이나 언니 오빠 앞에서 어떻게 여기려나. 손뜨개로 지은 옷을 입으며 다니는 사람이 거의 없는 오늘날, 우리 아이는 어떤 모습 어떤 마음으로 살아갈 수 있을까. 우리 아이도 “어머, 네 옷이 참 예쁘네. 부럽구나. 좋아.” 하고 말해 줄 좋은 동무를 만날 수 있을까. (4344.4.4.달.ㅎㄲㅅㄱ)
 

 

1987년. 국민학교 6학년. 

 

첫째 아이 세 번째 뜨개옷 끝!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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